책소개
이 책에 소개된 유진 오닐의 여덟 개의 단막극은 그의 초기 작품에 속한다. <십자의 표지가 있는 곳>, <밧줄> 그리고 <몽아>를 제외하면 모두 오닐이 선원 생활에서 얻은 생생한 경험을 살려 쓴 작품들이다. 등장인물 중에는 오닐 자신 또는 오닐의 지인들이 모델이 된 경우가 많다.
단막극은 작가의 습작 시대 산물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여기 소개된 오닐 단막극은 비록 그가 장막극에 손대기 전에 쓴 젊었을 때 작품인데도 소재, 내용 그리고 주제 등이 뚜렷하며 짜임새에도 빈틈이 없다. 이근삼 선생은 미국 유학 시절 여기에 소개한 오닐의 단막극을 교재 삼아 극작을 공부했다. 소극장에서 공연하기에도 알맞아 오닐의 단막극은 한국에서도 자주 공연된다.
〈고래 Ile〉는 포경선 애틀랜틱 퀸호가 배경이다. 망망대해에 고립된 채 추위와 싸우면서 고래잡이에 대한 집념을 놓지 않는 포경선 선장 키니와 선원들, 그리고 키니를 따라나선 애니의 심리가 섬세하게 묘사된다. 〈위험 지역 In the Zone〉은 영국 부정기 화물선 글랜케언호 선원들 이야기다. 역시 긴 항해에 지쳐 점점 예민하고 날카로워져 가는 선원들의 심리 묘사가 돋보인다. 〈긴 귀향 항로 The Long Voyage Home〉에선 부둣가의 한 허름한 주점이 배경이다. 런던에 정박한 글랜케언호 선원들은 모처럼 육지에서 여흥을 즐기기 위해 주점을 찾는다. 올슨은 지겨운 선원 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갈 꿈을 꾸지만 쉽지 않다. 이 작품은 1940년 미국에서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카디프를 향해 동쪽으로 Bound East for Cardiff〉, 〈카리브 섬의 달 Moon of the Caribbees〉 역시 글렌캐언호 선원들의 이야기로 선원 생활의 애환을 담고 있다.
《유진 오닐 단막극선》에는 오닐의 해양극 외에도 〈십자의 표지가 있는 곳 Where the Cross in Made〉, 〈밧줄 The Rope〉, 〈몽아 The Dreamy Kid〉 등 오닐의 후기 장막극에서 심화되는 인간과 자연, 인간과 운명의 대립이라는 비극적 주제를 선취한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200자평
유진 오닐의 초기 단막극 8편을 엮었다. 〈원고지〉, 〈유랑 극단〉을 쓴 극작가이자 영문학자 이근삼 선생이 생전에 번역하고 해설을 붙여 1981년 탐구당에서 출간했던 것을 복간한다.
지은이
유진 오닐(Eugene O’Neill, 1888∼1953)
193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극작가다. 체호프, 입센, 스트린드베리의 사실주의 기법을 처음 미국에 도입했다.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는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과 함께 20세기 최고의 미국 희곡으로 손꼽힌다. 오닐의 희곡에 나오는 인물들은 사회 비주류에 속한다. 이들은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절망에 빠진다. 오닐의 희곡은 대부분 어느 정도 비극적이며 염세적이다. 오닐의 희곡 중 처음 출판된 것은 <지평선 너머>였다. 1920년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해 큰 성공을 거둔 이 작품은 오닐에게 첫 퓰리처상을 안겨 주었다. <황제 존스>는 오닐의 첫 흥행작으로 1920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었다. 그 밖에 오닐의 대표작으로는 <애나 크리스티>(1922년 퓰리처상 수상), <느릅나무 밑의 욕망>(1924), <이상한 막간극>(1928년 퓰리처상 수상), <상복을 입은 엘렉트라>(1931) 등이 있다. 오닐은 1953년 11월 27일 보스턴의 한 호텔에서 사망했다. 1956년 오닐 사후에 캘로타는 오닐의 자전적 작품 <밤으로의 긴 여로>를 출판하고자 했다. 이는 사후 25년간 작품의 출판을 금한 오닐의 유언을 어기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발표와 함께 비평가들의 찬사 속에 공연으로 제작되었고 1957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옮긴이
이근삼
1929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1946년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52년 동국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이어 1959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원을 졸업한 뒤 1966년 미국 뉴욕대학원에서 수학했다. 미국에서 연극을 공부한 경험을 토대로 1960년 ≪사상계≫에 단막극 <원고지>를 발표하며 등단해 리얼리즘 연극이 주를 이루던 당대 한국 연극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중앙대와 서강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1992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1992년 예술원상, 2001년 대산문학상 희곡상을 수상했다. 2003년에 사망했다. 대표작으로는 <원고지>, <국물 있사옵니다>, <유랑 극단(流浪 劇團)> 등이 있다.
차례
고래
위험 지역
긴 귀향 항로
카디프를 향해 동쪽으로
카리브 섬의 달
십자의 표지가 있는 곳
밧줄
몽아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키니 : (완고하게 턱을 버티고서) 그게 아니야, 애니. 딴 선장들은 감히 내 얼굴에 대고 조롱할 생각을 못할 거야. 누가 뭐라건 그리 문제가 아냐−그렇지만−(마음먹은 것을 표현하는 데 곤란을 느껴 주저한다.) 알겠지만−난 늘 그렇게 해 왔어−선장이 되어서 맨 처음 항해를 나온 이후부터 말이야. 늘 배에 가득 싣고−돌아왔어−그러니 그대로 돌아간다는 게−왜 그런지 어색해. 난 늘 홈포트에선 제일가는 포경선의 선장으로 이름이 났어. 그래서−내 말을 모르겠나, 애니?
27쪽, 〈고래〉 중에서
올슨 : (머리를 흔들면서) 이번엔 안 마실 테야.
코키 : (비꼬아서) 돈을 모은대나. 고향에 돌아가 자기 어머니를 만난대. 거창한 땅을 사 갖고 빌어먹을 땅을 판대나. 이걸 원한단 말이지. (귀찮다는 듯이 침을 뱉으며) 뱃놈치고는 괴짜란 말이야!
올슨 : (똑같이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내가 원하는 것도 바로 그거란 말야, 코키. 어렸을 땐 농장에서 오래 지냈다네.
드리스콜 : 저 친구는 내버려 두라니까. 이 벌레 같은 놈아, 우리 같은 바보 대신 제정신이 든 친구를 본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이라구. 내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당장이라도 이 빌어먹을 술집에서 술을 끊을걸.
코키 : (애처롭게 울기 시작하면서) 드리스콜, 제발 그런 말은 차마 들을 수 없어. 어머니를 가져 본 적이 없어. 일찍이 어머니를−
-99쪽, 〈긴 귀향 항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