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시선 이백은 당대 시단 나아가 중국 역대 시단을 통틀어 시성(詩聖) 두보와 쌍벽을 이루는 시인으로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이백에 대한 높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이태백시집≫을 제외하고는 그의 시에 대한 완역이 없어 학자들이 많이 아쉬워하고 있다. 이러한 반성에 기초해 몇몇 사람들이 뜻을 모아 ≪이백 전집≫을 역주하고 해설해 출판하려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이백의 시문집 앞머리에는 보통 ≪고풍≫ 59수가 수록되어 있다. 이 때문에 강독회에서도 이 시들을 먼저 역주하고 출판하게 되었지만, 사실 ≪고풍오십구수≫는 이백 시에서 매우 중요하고도 특수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백은 남조(南朝) 이래의 기려(綺麗)한 표현이나 성률(聲律)을 추구한 시들을 비판했으며, 시의 이상과 정통이 <대아>를 비롯한 고시에 있다고 여겼다. 따라서 그는 고시의 복원 내지 부활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다. ≪고풍오십구수≫의 창작은 이백의 이러한 시 의식 아래 이루어진 것이다.
역대로 이백의 ≪고풍오십구수≫는 완적(210∼263)의 <영회시>와 진자앙(661∼702)의 <감우시>를 계승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역대 평자들의 ≪고풍오십구수≫에 대한 평가는 포폄(褒貶)이 모두 존재한다. 명대 고병(高棅)의 ≪당시품휘(唐詩品彙)≫에서는 남송의 유극장이 “이백의 ≪고풍오십구수≫와 진자앙의 <감우> 시작(詩作)은 필력이 서로 막상막하이며, 당대의 시인은 모두 그 아래에 있다(太白古風與陳子昻感遇之作筆力相上下, 唐之詩人皆在下風)”라고 극찬한 내용이 있다. 또 청대 건륭어정(乾隆御定)의 ≪당송시순≫에서는 “이백의 ≪고풍오십구수≫는 … 시 행간에서 가리키는 일이 심오하고 감정을 말하는 것은 도탑고 진지하며 완곡히 돌고 돌아 매번 언외의 뜻이 많다. … 어찌 풍아를 계승한 소리가 아니며 시인 중의 으뜸이 아니랴!(白古風凡五十九首, … 其間指事深切, 言情篤摯, 缠綿往復, 每多言外之旨, … 豈非風雅之嗣音詩人之冠冕乎)”라고 호평한 바 있다. 반면 명대 육시옹(생졸년 미상, 1523년 전후 활약)은 ≪시경총론≫에서 ≪고풍오십구수≫에 대해 “그러나 기탁이 도리어 깊지 못한 결점이 있으며, 묘사하는 가운데에 끊이지 않고 굽이굽이 이어지는 절묘함을 다하지는 못했다(然寄托猶苦不深, 而作用間尚未盡委蛇盤礴之妙)”라는 비평을 하기도 했다.
이백의 시문집 가운데 가장 앞선 것으로는 당대(唐代)의 위호(魏顥)가 편한 ≪이한림집(李翰林集)≫과 이양빙이 편한 ≪초당집≫이 있었으나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송대에 송민구(宋敏求)가 편찬하고 증공(曾鞏)이 그 전후를 고구(考究)해 순서를 매긴 것으로 알려진 ≪이태백문집≫을 북송 시기에 다시 번각해서 간행한 ‘촉본(蜀本)’은 현재 전해지고 있다. 이후 주석을 가하거나 재분류한 선본(善本) 가운데 중요한 것으로는 송대 양제현이 집주하고 원대 소사빈이 보주한 ≪분류보주이태백시≫, 명대 이문민(李文敏)과 팽우(彭佑)가 편찬한 ≪분류이태백시(分類李太白詩)≫, 명대 이제방(李齊芳)과 이무년(李茂年)이 편찬한 ≪이한림분류시(李翰林分類詩)≫, 명대 호진형이 편찬한 ≪이시통≫, 청대의 왕기가 집주(輯注)한 ≪이태백전집≫ 등이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왕기본을 저본으로 해서 취투이위안(瞿蛻園), 주진청(朱金城)이 편찬한 ≪이태백교주≫[상하이구지출판사(上海古籍出版社), 1980]와 안치(安旗)가 주편한 ≪이태백전집편년주석≫[바수수서(巴蜀書社), 1990]이 있다. 그리고 송촉본을 저본으로 한 잔잉(詹鍈) 주편의 ≪이백전집교주휘석집평(李白全集校注彙釋集評)≫[바이화원이출판사(百花文藝出版社), 1996]과 ≪이백시전역≫[잔푸루이(詹福瑞), 류충더(劉崇德), 거징춘(葛景春) 역해, 허베이런민출판사(河北人民出版社), 1997]이 있다. 또한 일본에서도 일찍이 이백 시 편찬 작업이 이뤄졌는데 일본 구보 덴즈이(久保天隨)의 ≪이백전시집(李白全詩集)≫(국민문고간행회, 도쿄, 1928)과 오노 지쓰노스케(大野實之助)의 ≪이태백시가전집(李太白詩歌全集)≫[와세다대학출판부(早稻田大學出版部), 1980]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중요한 선본으로 꼽히고 있다.
본고는 이 가운데 이백 시의 원문과 교감은 잔잉 주편의 ≪이백전집교주휘석집평≫을 저본으로 삼았으며, 번역과 주해는 위의 각종 서적뿐만 아니라, 위셴하오(郁賢皓)의 ≪이백시전집(李白詩全集)≫[산민수쥐(三民書局), 2011], 위셴하오(郁賢皓)의 ≪이태백전집교주(李太白全集校注)≫[펑황출판사(鳳凰出版社), 2015], 쉐텐웨이(薛天緯)의 ≪이백시해(李白詩解)≫[중궈서후이커지출판사(中國社會科學出版社), 2016], 이영주 등의 ≪이태백시집≫(학고방, 2015) 등을 두루 참고하고 참작하되 때에 따라 토론을 거쳐 독자적 견해도 반영했다.
200자평
이백시문학회에서 이백 시전집 완역을 시작했다. 오랫동안 이백을 연구해 온 14명의 전문 학자가 국내외 모든 이백 관련서를 참고하고 수차례의 윤독과 토론을 거쳐 가장 완벽한 정본에 도전한다. 제1권은 <고풍> 59수를 모았다. 정확한 번역과 방대한 주석, 다양한 교감과 상세한 해설은 이백 시를 처음 만나는 사람부터 전문 연구자까지 모두에게 이백 시의 진정한 면모를 보여 줄 것이다.
지은이
시선(詩仙) 이백(李白, 701~762)의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이고 이 한림(李翰林)이라고도 부른다.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병칭되며 100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이백의 출생과 어린 시절은 명확하지 않다. 전해지는 바로는 조적(祖籍)은 지금의 간쑤성 톈수이(天水) 부근의 농서현(隴西縣) 성기(成紀)였으나, 수나라 말기에 부친이 서역으로 이사해 서안도호부 관할이었던 중앙아시아에서 이백을 낳았고, 부친이 다시 사천성 면주(綿州) 창륭현(昌隆縣) 청련향(靑蓮鄉)으로 옮겨 옴에 따라 이백 또한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725년(25세) 촉 땅을 떠나서 장강을 따라 삼협을 거쳐 강남 일대를 유람했으며 산동, 산서 등지를 떠돌며 도교(道敎)에 심취했다. 742년(42세) 도사 오균(吳筠)의 추천으로 한림공봉(翰林供奉)에 제수되었으나, 자신의 정치적 포부를 실현할 수 없자 3년 만에 관직을 버리고 장안을 떠나 다시 방랑의 길로 들어선다.
755년(55세) 안녹산이 난을 일으켰을 때 이백은 안휘성(安徽省) 선성(宣城)에 있었다. 57세에 황자(皇子) 영왕(永王) 인(璘)의 막료가 되었으나, 영왕이 권력 투쟁에서 패하고 숙종이 즉위하자 이백도 역도로 몰려 강서성 심양(尋陽)에 투옥되었다. 송약사(宋若思)가 구명해 그의 막료가 되었으나 끝내 귀주성 야랑으로 유배되었다. 야랑으로 가는 도중, 삼협을 거슬러 무산에 당도했을 때 특사를 받아 강릉으로 내려가며 <조발백제성(早發白帝城)>을 지었다.
이후 노쇠한 이백은 금릉과 선성을 오가다가 당도(當塗) 현령으로 있던 친척 이양빙(李陽冰)에게 몸을 의탁했다. 762년 병이 중해지자 이백은 자신의 원고를 이양빙에게 주고 <임종가(臨終歌)>를 짓고는 회재불우의 한 많은 한평생을 끝마쳤다. 우리에게는 당도에 있는 채석기(採石磯)에서 노닐다 장강에 비친 달그림자를 잡으려다가 익사했다는 전설이 훨씬 더 익숙하다.
이백은 굴원 이후 가장 뛰어난 낭만주의자로 꼽힌다. 그는 당시의 민간 문예뿐 아니라 진한(秦漢)과 위진(魏晉) 이래 악부 민가를 이어받아 자신만의 독특한 풍격을 형성했다. 더구나 그는 도가에 심취해서 그의 시는 인간의 세계를 초월한 환상적인 경향 또한 짙다.
옮긴이
이백시문연구회
이백의 시문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들이 모여서 이백의 시문을 전문적으로 번역하고 연구하는 모임이다. 2013년 2월 결성되었으며 온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이백 시문을 강독하고 토론하고 있다.
이동향(李東鄕)
이백시문연구회 고문. 현 고려대 명예 교수. 서울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국립타이완대에서 석사 학위를, 서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고려대 교수로 재임했다. 타이완 정치대학과 상하이 복단대학에서 방문학자로 연구했으며,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중국어대사전편찬실 실장을 지냈다. ≪이하시선≫, ≪송사삼백수≫ 등을 번역했으며 ≪중국문학사≫를 저술했다. 당시와 송사에 관한 논문 다수와 ≪가헌신기질사연구≫ 등이 있다.
김경천(金慶天)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교수.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경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특히 ≪논어≫의 성립 과정과 원의에 관심을 두고 있다. 대표 논문으로는 <고염무의 경학관> 등이 있으며, 공역으로 ≪다산의 경학 세계≫ 등이 있다.
김민호(金敏鎬)
한림대 교수.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고전 소설을 전공했으며 대표 역서로는 ≪동경몽화록≫이 있고, 대표 논문으로는 <계보학적 측면에서 접근한 백이, 숙제 고사 연구>,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 본 중국 강남 이미지−연행록과 표해록의 기록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김의정(金宜貞)
성결대 파이데이아 학부 교수. 이화여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연세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고전시를 전공했고 저역서로 ≪한시 리필≫, ≪두보 시선≫, ≪이상은 시선≫, ≪두보 평전≫, ≪중국의 종이와 인쇄의 문화사≫ 등이 있다. 대표 논문으로는 <시는 어떻게 광고가 되는가?−중국 고전시의 문학 콘텐츠 활용 방안>, <좌표를 통해서 본 두보 음주시의 정서 표현 분석> 등이 있다.
김정희(金貞熙)
한양여대 교수. 한양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타이완 중앙연구원에서 방문학자로 연구를 했으며, 상하이 푸단대학에서 박사후 과정을 이수했다. 사(詞)문학을 전공했으며, 중국 고전시와 중국 문화 연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적 저역서로 ≪베이징 이야기≫, ≪현대 중국 생활차≫, ≪한 손에 잡히는 중국≫, ≪뉴스와 중국어≫ 등이 있고, 대표 논문으로 <주방언의 청진사 연구>, <韓國‘中國詞文學硏究’評述> 등이 있다.
노은정(盧垠靜)
성신여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원. 성신여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고전시를 연구하고 중국 고전 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용재수필≫, ≪중국 문학 이론 비평사≫, ≪그림으로 읽는 중국 고전≫ 등의 번역서와 <송시에 나타난 양귀비의 형상 변화 연구>, <양성재와 이퇴계 매화시의 도학자적 심미관> 등의 논문이 있다.
서성(徐盛)
배재대 교수. 홍익대 산업도안과 및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한 후 베이징대 중문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저역서로 ≪양한(兩漢) 시집≫, ≪한시, 역사가 된 노래≫, ≪삼국지 그림으로 만나다≫, ≪대력십재자 시선≫, ≪당시별재집≫ 등이 있다.
여정연(呂亭淵)
우송대 교수. 숙명여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베이징대 중문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고전 문학 이론을 전공했으며 대표 논문으로 <위진남북조문론의 물감설 연구>가 있다.
이기면(李基勉)
배재대 교수.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고전 문학 이론을 전공했으며 대표 저서로는 ≪원굉도 문학 사상≫, 대표 역서로 ≪이욱 사선≫(공역), ≪거인의 시대 : 명 말 중국 예수회 이야기≫(공역) 등이 있고, 대표 논문으로는 <명 말 청 초 이단 문학론의 실학적 이해>, <명 말 청 초 방외 문학론의 근대 지향성 연구> 등이 있다.
조득창(趙得昌)
협성대 교수.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베이징사범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희곡을 전공했으며, 저서로는 ≪중국 문화의 즐거움≫, 편역서로는 ≪삼국연의 상·하≫, 역서로는 ≪피에로≫, ≪결혼/염라대왕 자오/오규교≫가 있다.
조성천(趙成千)
을지대 교수.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고전 문학 비평 및 시론 중 왕부지의 학술 사상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저역서로는 ≪왕부지 시가 사상과 예술론 연구≫, ≪강재시화≫, ≪인간사화≫ 등이 있고, 대표 논문으로는 <중국 시론상 흥회(興會)의 역사성과 문예 미학적 의의>, <왕부지 소식 시문 비판론 초탐> 등이 있다.
최우석(崔宇錫)
우송대 교수.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국립타이완대에서 석사 학위를, 고려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상하이 푸단대학과 베이징대학에서 방문학자로 연구를 했으며, 중국 고전 시가를 전공했다. 저서로는 ≪魏晉四言詩硏究≫(中國巴蜀書社), ≪漢韓學習詞典≫(北京大學出版社) 등이 있으며, 대표 논문으로는 <고대 사언시와 율시 속의 아정(雅正) 심미관(審美觀)>, <당대(唐代) 시격론(詩格論)과 선(禪)> 등이 있다.
홍승직(洪承直)
순천향대 교수.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순천향대 공자아카데미 원장을 지냈다. 각종 중국 문헌을 한국어로 적절하게 번역하는 것에 관심이 있으며, 태극권 수련 및 연구를 하면서 지도자로도 활동 중이다. 대표적 역서로 ≪이탁오평전≫, ≪유종원집≫, ≪용재수필≫, ≪처음 읽는 논어≫, ≪처음 읽는 대학 중용≫, ≪분서≫ 등이 있다.
홍은빈(洪銀彬)
고려대 강사.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 수료. 이백의 산수시 및 미학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대표 논문으로 <유종원 산수 기유 시문의 경계 연구>, <이백과 두보의 촉도행 기행 산수시 감상법> 등이 있다.
차례
제1수 대아가 오랫동안 흥하지 못했는데(大雅久不作)
제2수 두꺼비가 하늘에 다가가(蟾蜍薄太清)
제3수 진시황이 천하를 쓸어버릴 때(秦皇掃六合)
제4수 봉황은 한 번 날아 구천 길(鳳飛九千仞)
제5수 태백산은 어찌 그리도 푸른가!(太白何蒼蒼)
제6수 북녘의 말은 남쪽을 생각지 않고(代馬不思越)
제7수 학을 탄 신선이 있어(客有鶴上仙)
제8수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다가(莊周夢蝴蝶)
제9수 제나라에 기개가 드높은 사람 있었으니(齊有倜儻生)
제10수 황하는 동해로 내달리고(黃河走東溟)
제11수 송백은 본래 고고하며 곧은지라(松柏本孤直)
제12수 엄군평은 일찍이 세상을 버렸고(君平既棄世)
제13수 변새에는 모래바람만 가득하니(胡關饒風沙)
제14수 연 소왕이 곽외를 초빙하고는(燕趙延郭隗)
제15수 금화산의 양 치던 아이(金華牧羊兒)
제16수 천진교 춘삼월(天津三月時)
제17수 서쪽 연화산에 오르니(西上蓮花山)
제18수 예전에 내가 제나라 도읍을 노닐다가(昔我遊齊都)제19수 눈물 흘리며 벗과 이별하려니(泣與親友別)
제20수 인생은 또 얼마나 될는지(在世復幾時)
제21수 영 땅의 나그네 <백설가>를 부르니(郢客吟白雪)
제22수 진 땅의 강물이 농두산 떠날 때(秦水別隴首)
제23수 옥같이 하얀 가을 이슬(秋露白如玉)
제24수 큰 수레 내달려 먼지 날리니(大車揚飛塵)
제25수 세상과 도가 날로 서로를 잃어버리니(世道日交喪)제26수 푸른 연꽃은 그윽한 연못에서 피어나니(碧荷生幽泉)
제27수 연조 땅에 절세가인 있는데(燕趙有秀色)
제28수 그 곱던 얼굴 번개처럼 빨리 늙고(容顔若飛電)
제29수 주나라 말엽 천하는 전국으로 분열되어(三季分戰國)
제30수 태고의 순박한 기풍 변했으니(玄風變太古)
제31수 정씨 나그네 서쪽으로 함곡관에 들어가(鄭客西入關)
제32수 가을 신 욕수가 가을 기운을 싸늘하게 하고(蓐收肅金氣)
제33수 북해에 곤이라는 물고기가 있는데(北溟有巨魚) 제34수 우서(羽書)가 유성처럼 날아들자(羽檄如流星)
제35수 한 추녀가 와서 서시의 얼굴 찡그리는 흉내를 내면서(醜女來效嚬)
제36수 옥돌 안고 초나라 도성으로 들어가(抱玉入楚國) 제37수 예전에 연나라 신하 추연이 통곡하니(燕臣昔慟哭) 제38수 외로운 난초 외진 동산에서 자라는데(孤蘭生幽園) 제39수 높은 산에 올라 천하를 바라보니(登高望四海)
제40수 봉황은 굶주려도 좁쌀을 쪼아 먹지 않고(鳳飢不啄粟)
제41수 아침엔 자줏빛 바다에서 놀고(朝弄紫泥海)
제42수 너울너울 흰 갈매기 한 쌍(搖裔雙白鷗)
제43수 주 목왕은 천하 팔방을 주유할 뜻을 품었고(周穆八荒意)
제44수 푸른 소나무겨우살이 치렁치렁 우거져(綠蘿紛葳蕤)
제45수 온 세상에 거센 폭풍이 휘몰아치니(八荒馳驚飇) 제46수 개국 후 백사십 년(一百四十年)
제47수 복사꽃이 동쪽 정원에 피어(桃花開東園)
제48수 진시황은 보검을 잡고(秦皇按寶劍)
제49수 남쪽 지방에서 온 미인(美人出南國)
제50수 송나라 오대 동쪽에서(宋國梧臺東)
제51수 은나라 주왕은 나라의 기강을 어지럽혔고(殷后亂天紀)
제52수 봄은 급한 여울물처럼 흘러갔고(靑春流驚湍)
제53수 전국 시기에는 얼마나 혼란스러웠던가!(戰國何紛紛)
제54수 칼 차고 높은 대에 올라(倚劍登高臺)
제55수 제 땅 비파로 동쪽 곡조를 연주하고(齊瑟彈東吟) 제56수 월나라 사람이 야광주를 캐내어(越客採明珠) 제57수 새들은 수만 가지 종류로 태어나지만(羽族稟萬化) 제58수 무산의 물가를 지나가다가(我行巫山渚)
제59수 양주는 갈림길에서 슬피 울었고(惻惻泣路歧)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 후기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제27수 연조 땅에 절세가인 있는데
연조 땅에 절세가인 있는데
아름다운 누각은 푸른 구름까지 닿았네.
얼굴은 밝은 달처럼 고와
한 번 웃으면 온 성이 환호하네.
푸른 초목 시들까 늘 걱정하더니
가을 찬 바람에 헛되이 눈물만 흘리네.
섬섬옥수로 슬프고 원망스레 옥금을 타고
새벽에 일어나 길게 한숨짓네.
어찌해야 내 임을 만나
함께 난새 타고 짝지어 날 수 있을까?
燕趙有秀色
燕趙有秀色, 綺樹靑雲端.
眉目艶皎月, 一笑傾城歡.
常恐碧草晚, 坐泣秋風寒.
纖手怨玉琴, 清晨起長嘆.
焉得偶君子? 共乘雙飛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