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시선 이백은 당대 시단 나아가 중국 역대 시단을 통틀어 시성(詩聖) 두보와 쌍벽을 이루는 시인으로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이백에 대한 높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이태백시집≫을 제외하고는 그의 시에 대한 완역이 없어 학자들이 많이 아쉬워하고 있다. 이러한 반성에 기초해 몇몇 사람들이 뜻을 모아 ≪이백 전집≫을 역주하고 해설해 출판하려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이백이 높은 산이나 누각에 올라 시를 짓기를 좋아했던 것은 드높은 이상을 가슴에 품고 있었던 그의 성정과 매우 부합하는 것이었다. ‘태백성’의 정기를 받고 태어난 ‘적선자(謫仙子)’는 이백이 아마도 가장 믿고 싶었던 형상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하늘을 향해 높은 곳에 오른다는 것은 이백에게 자신이 있어야 할 가장 합당한 장소로 향하는 행위였을 수 있다. 이런 이유인지는 몰라도 이백 시집 중의 <등람>편은 부정적인 내용보다는 편안함을 술회하거나 자신의 드높은 이상을 토로하거나 신선의 세계를 추구하는 내용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내용은 기존의 ‘등고이부(登高而賦)’에서 주로 노래한 슬픈 정서나 고향 생각 등으로 인한 외로움 등의 정서와는 다소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이는 이백 등고시만의 특색으로 여길 수 있다. 특히 높은 산이나 누각에 오를 때면 이백은 종종 그만의 특유한 드높은 자아를 표현했다. 높은 곳에 올라 신선 세계를 흠모하는 것에는 그의 드높은 자아가 투영되고 있었으며, 현실 세계에서 공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표현하는 것 역시 그러한 드높은 자아에 대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예술 기교 측면에서 본다면, 이백의 <등람>편에는 초현실적인 과장법을 곳곳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이는 아마도 높은 곳에 올라 사물을 내려다보면 시인 스스로가 쉽게 감정이 고조되기 때문으로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마찬가지로 높은 곳에선 사물을 멀리 볼 수 있기에, <등람>편에서의 경물 묘사는 웅장한 스케일과 높은 기상의 표현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와 같이 이백의 <등람>편에는 다른 제재의 시가들과는 다소 구별되는 독특한 특색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백의 시문집 가운데 가장 앞선 것으로는 당대(唐代)의 위호(魏顥)가 편한 ≪이한림집(李翰林集)≫과 이양빙이 편한 ≪초당집≫이 있었으나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송대에 송민구(宋敏求)가 편찬하고 증공(曾鞏)이 그 전후를 고구(考究)해 순서를 매긴 것으로 알려진 ≪이태백문집≫을 북송 시기에 다시 번각해서 간행한 ‘촉본(蜀本)’은 현재 전해지고 있다. 이후 주석을 가하거나 재분류한 선본(善本) 가운데 중요한 것으로는 송대 양제현이 집주하고 원대 소사빈이 보주한 ≪분류보주이태백시≫, 명대 이문민(李文敏)과 팽우(彭佑)가 편찬한 ≪분류이태백시(分類李太白詩)≫, 명대 이제방(李齊芳)과 이무년(李茂年)이 편찬한 ≪이한림분류시(李翰林分類詩)≫, 명대 호진형이 편찬한 ≪이시통≫, 청대의 왕기가 집주(輯注)한 ≪이태백전집≫ 등이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왕기본을 저본으로 해서 취투이위안(瞿蛻園), 주진청(朱金城)이 편찬한 ≪이태백교주≫[상하이구지출판사(上海古籍出版社), 1980]와 안치(安旗)가 주편한 ≪이태백전집편년주석≫[바수수서(巴蜀書社), 1990]이 있다. 그리고 송촉본을 저본으로 한 잔잉(詹鍈) 주편의 ≪이백전집교주휘석집평(李白全集校注彙釋集評)≫[바이화원이출판사(百花文藝出版社), 1996]과 ≪이백시전역≫[잔푸루이(詹福瑞), 류충더(劉崇德), 거징춘(葛景春) 역해, 허베이런민출판사(河北人民出版社), 1997]이 있다. 또한 일본에서도 일찍이 이백 시 편찬 작업이 이뤄졌는데 일본 구보 덴즈이(久保天隨)의 ≪이백전시집(李白全詩集)≫(국민문고간행회, 도쿄, 1928)과 오노 지쓰노스케(大野實之助)의 ≪이태백시가전집(李太白詩歌全集)≫[와세다대학출판부(早稻田大學出版部), 1980]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중요한 선본으로 꼽히고 있다.
본고는 이 가운데 이백 시의 원문과 교감은 잔잉 주편의 ≪이백전집교주휘석집평≫을 저본으로 삼았으며, 번역과 주해는 위의 각종 서적뿐만 아니라, 위셴하오(郁賢皓)의 ≪이백시전집(李白詩全集)≫[산민수쥐(三民書局), 2011], 위셴하오(郁賢皓)의 ≪이태백전집교주(李太白全集校注)≫[펑황출판사(鳳凰出版社), 2015], 쉐텐웨이(薛天緯)의 ≪이백시해(李白詩解)≫[중궈서후이커지출판사(中國社會科學出版社), 2016], 이영주 등의 ≪이태백시집≫(학고방, 2015) 등을 두루 참고하고 참작하되 때에 따라 토론을 거쳐 독자적 견해도 반영했다.
200자평
이백시문학회에서 이백 시전집을 완역한다. 오랫동안 이백을 연구해 온 14명의 전문 학자가 국내외 모든 이백 관련서를 참고하고 수차례의 윤독과 토론을 거쳐 가장 완벽한 정본에 도전한다. 제2권은 <등람> 36수를 모았다. 정확한 번역과 방대한 주석, 다양한 교감과 상세한 해설은 이백 시를 처음 만나는 사람부터 전문 연구자까지 모두에게 이백 시의 진정한 면모를 보여 줄 것이다.
지은이
시선(詩仙) 이백(李白, 701~762)의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이고 이 한림(李翰林)이라고도 부른다.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병칭되며 100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이백의 출생과 어린 시절은 명확하지 않다. 전해지는 바로는 조적(祖籍)은 지금의 간쑤성 톈수이(天水) 부근의 농서현(隴西縣) 성기(成紀)였으나, 수나라 말기에 부친이 서역으로 이사해 서안도호부 관할이었던 중앙아시아에서 이백을 낳았고, 부친이 다시 사천성 면주(綿州) 창륭현(昌隆縣) 청련향(靑蓮鄉)으로 옮겨 옴에 따라 이백 또한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725년(25세) 촉 땅을 떠나서 장강을 따라 삼협을 거쳐 강남 일대를 유람했으며 산동, 산서 등지를 떠돌며 도교(道敎)에 심취했다. 742년(42세) 도사 오균(吳筠)의 추천으로 한림공봉(翰林供奉)에 제수되었으나, 자신의 정치적 포부를 실현할 수 없자 3년 만에 관직을 버리고 장안을 떠나 다시 방랑의 길로 들어선다.
755년(55세) 안녹산이 난을 일으켰을 때 이백은 안휘성(安徽省) 선성(宣城)에 있었다. 57세에 황자(皇子) 영왕(永王) 인(璘)의 막료가 되었으나, 영왕이 권력 투쟁에서 패하고 숙종이 즉위하자 이백도 역도로 몰려 강서성 심양(尋陽)에 투옥되었다. 송약사(宋若思)가 구명해 그의 막료가 되었으나 끝내 귀주성 야랑으로 유배되었다. 야랑으로 가는 도중, 삼협을 거슬러 무산에 당도했을 때 특사를 받아 강릉으로 내려가며 <조발백제성(早發白帝城)>을 지었다.
이후 노쇠한 이백은 금릉과 선성을 오가다가 당도(當塗) 현령으로 있던 친척 이양빙(李陽冰)에게 몸을 의탁했다. 762년 병이 중해지자 이백은 자신의 원고를 이양빙에게 주고 <임종가(臨終歌)>를 짓고는 회재불우의 한 많은 한평생을 끝마쳤다. 우리에게는 당도에 있는 채석기(採石磯)에서 노닐다 장강에 비친 달그림자를 잡으려다가 익사했다는 전설이 훨씬 더 익숙하다.
이백은 굴원 이후 가장 뛰어난 낭만주의자로 꼽힌다. 그는 당시의 민간 문예뿐 아니라 진한(秦漢)과 위진(魏晉) 이래 악부 민가를 이어받아 자신만의 독특한 풍격을 형성했다. 더구나 그는 도가에 심취해서 그의 시는 인간의 세계를 초월한 환상적인 경향 또한 짙다.
옮긴이
이백시문연구회
이백의 시문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들이 모여서 이백의 시문을 전문적으로 번역하고 연구하는 모임이다. 2013년 2월 결성되었으며 온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이백 시문을 강독하고 토론하고 있다.
이동향(李東鄕)
이백시문연구회 고문. 현 고려대 명예 교수. 서울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국립타이완대에서 석사 학위를, 서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고려대 교수로 재임했다. 타이완 정치대학과 상하이 복단대학에서 방문학자로 연구했으며,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중국어대사전편찬실 실장을 지냈다. ≪이하시선≫, ≪송사삼백수≫ 등을 번역했으며 ≪중국문학사≫를 저술했다. 당시와 송사에 관한 논문 다수와 ≪가헌신기질사연구≫ 등이 있다.
김경천(金慶天)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교수.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경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특히 ≪논어≫의 성립 과정과 원의에 관심을 두고 있다. 대표 논문으로는 <고염무의 경학관> 등이 있으며, 공역으로 ≪다산의 경학 세계≫ 등이 있다.
김민호(金敏鎬)
한림대 교수.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고전 소설을 전공했으며 대표 역서로는 ≪동경몽화록≫이 있고, 대표 논문으로는 <계보학적 측면에서 접근한 백이, 숙제 고사 연구>,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 본 중국 강남 이미지−연행록과 표해록의 기록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김의정(金宜貞)
성결대 파이데이아 학부 교수. 이화여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연세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고전시를 전공했고 저역서로 ≪한시 리필≫, ≪두보 시선≫, ≪이상은 시선≫, ≪두보 평전≫, ≪중국의 종이와 인쇄의 문화사≫ 등이 있다. 대표 논문으로는 <시는 어떻게 광고가 되는가?−중국 고전시의 문학 콘텐츠 활용 방안>, <좌표를 통해서 본 두보 음주시의 정서 표현 분석> 등이 있다.
김정희(金貞熙)
한양여대 교수. 한양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타이완 중앙연구원에서 방문학자로 연구를 했으며, 상하이 푸단대학에서 박사후 과정을 이수했다. 사(詞)문학을 전공했으며, 중국 고전시와 중국 문화 연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적 저역서로 ≪베이징 이야기≫, ≪현대 중국 생활차≫, ≪한 손에 잡히는 중국≫, ≪뉴스와 중국어≫ 등이 있고, 대표 논문으로 <주방언의 청진사 연구>, <韓國‘中國詞文學硏究’評述> 등이 있다.
노은정(盧垠靜)
성신여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원. 성신여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고전시를 연구하고 중국 고전 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용재수필≫, ≪중국 문학 이론 비평사≫, ≪그림으로 읽는 중국 고전≫ 등의 번역서와 <송시에 나타난 양귀비의 형상 변화 연구>, <양성재와 이퇴계 매화시의 도학자적 심미관> 등의 논문이 있다.
서성(徐盛)
배재대 교수. 홍익대 산업도안과 및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한 후 베이징대 중문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저역서로 ≪양한(兩漢) 시집≫, ≪한시, 역사가 된 노래≫, ≪삼국지 그림으로 만나다≫, ≪대력십재자 시선≫, ≪당시별재집≫ 등이 있다.
여정연(呂亭淵)
우송대 교수. 숙명여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베이징대 중문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고전 문학 이론을 전공했으며 대표 논문으로 <위진남북조문론의 물감설 연구>가 있다.
이기면(李基勉)
배재대 교수.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고전 문학 이론을 전공했으며 대표 저서로는 ≪원굉도 문학 사상≫, 대표 역서로 ≪이욱 사선≫(공역), ≪거인의 시대 : 명 말 중국 예수회 이야기≫(공역) 등이 있고, 대표 논문으로는 <명 말 청 초 이단 문학론의 실학적 이해>, <명 말 청 초 방외 문학론의 근대 지향성 연구> 등이 있다.
조득창(趙得昌)
협성대 교수.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베이징사범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희곡을 전공했으며, 저서로는 ≪중국 문화의 즐거움≫, 편역서로는 ≪삼국연의 상·하≫, 역서로는 ≪피에로≫, ≪결혼/염라대왕 자오/오규교≫가 있다.
조성천(趙成千)
을지대 교수.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고전 문학 비평 및 시론 중 왕부지의 학술 사상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저역서로는 ≪왕부지 시가 사상과 예술론 연구≫, ≪강재시화≫, ≪인간사화≫ 등이 있고, 대표 논문으로는 <중국 시론상 흥회(興會)의 역사성과 문예 미학적 의의>, <왕부지 소식 시문 비판론 초탐> 등이 있다.
최우석(崔宇錫)
우송대 교수.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국립타이완대에서 석사 학위를, 고려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상하이 푸단대학과 베이징대학에서 방문학자로 연구를 했으며, 중국 고전 시가를 전공했다. 저서로는 ≪魏晉四言詩硏究≫(中國巴蜀書社), ≪漢韓學習詞典≫(北京大學出版社) 등이 있으며, 대표 논문으로는 <고대 사언시와 율시 속의 아정(雅正) 심미관(審美觀)>, <당대(唐代) 시격론(詩格論)과 선(禪)> 등이 있다.
홍승직(洪承直)
순천향대 교수.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순천향대 공자아카데미 원장을 지냈다. 각종 중국 문헌을 한국어로 적절하게 번역하는 것에 관심이 있으며, 태극권 수련 및 연구를 하면서 지도자로도 활동 중이다. 대표적 역서로 ≪이탁오평전≫, ≪유종원집≫, ≪용재수필≫, ≪처음 읽는 논어≫, ≪처음 읽는 대학 중용≫, ≪분서≫ 등이 있다.
홍은빈(洪銀彬)
고려대 강사.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 수료. 이백의 산수시 및 미학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대표 논문으로 <유종원 산수 기유 시문의 경계 연구>, <이백과 두보의 촉도행 기행 산수시 감상법> 등이 있다.
차례
제1수 금성 산화루에 올라(登錦城散花樓)
제2수 아미산에 올라(登峨眉山)
제3수 대정고(大庭庫)
제4수 선보현 도소부의 반월대에 올라(登單父陶少府半月臺)
제5수 천태산의 새벽 조망(天台曉望)
제6수 이른 아침 하늘가 노을을 바라보며(早望海霞邊)
제7수 초산에서 멀리 송요산을 바라보다(焦山杳望松寥山)
제8수 두릉에 올라(杜陵絶句)
제9수 태백봉에 올라(登太白峯)
제10수 한단의 홍파대에 올라 술상을 차려 놓고 출정하는 병사를 보다(登邯鄲洪波臺置酒觀發兵)
제11수 광무성 옛 전쟁터에 올라 회고하다(登廣武古戰場懷古)
제12수 신평루에 올라(登新平樓)
제13수 노자 사당에 참배하며(謁老君廟)
제14수 가을날 양주 서령탑에 올라(秋日登揚州西靈塔)
제15수 금릉 야성 서북쪽 사안의 돈대에 올라(等金陵冶城西北謝安墩)
제16수 와관각에 올라(登瓦官閣)
제17수 매강 언덕에 올라 금릉을 바라보며 족질인 고좌사의 중부 스님에게 주다(登梅崗望金陵贈族姪高座寺僧中孚)
제18수 금릉의 봉황대에 올라(登金陵鳳皇臺)
제19수 여산의 폭포를 바라보며. 첫째 수(望廬山瀑布 其一)
제20수 여산의 폭포를 바라보며. 둘째 수(望廬山瀑布 其二)
제21수 여산의 오로봉을 바라보다(望廬山五老峯)
제22수 강가에서 환공산을 바라보다(江上望皖公山)
제23수 황학산을 바라보며(望黃鶴山)
제24수 앵무주(鸚鵡洲)
제25수 중양절 날 파릉에 올라 술상 차려 놓고 동정호의 수군을 바라보다(九日登巴陵置酒望洞庭水軍)
제26수 가을날 파릉에 올라 동정호를 바라보다(秋登巴陵望洞庭)
제27수 하십이와 악양루에 올라(與夏十二登岳陽樓)
제28수 파릉의 개원사 서쪽 누각에 올라 형악에 있는 방외 스님에게 쓰다(登巴陵開元寺西閣贈衡嶽僧方外) 제29수 가 사인과 더불어 용흥사에서 오동나무 가지를 쳐 내고 옹호를 바라봄(與賈舍人於龍興寺剪落梧桐枝望㴩湖)
제30수 강 위에서 돛을 걸고 달을 기다리다 감회가 생기다(掛席江上待月有懷)
제31수 금릉에서 멀리 한수를 바라보다(金陵望漢江) 제32수 가을날 선성의 사조 북루에 올라(秋登宣城謝眺北樓)
제33수 천문산을 바라보며(望天門山)
제34수 모과산을 바라보며(望木瓜山)
제35수 경정산 북쪽 이소산을 오르다. 나는 이때 손님을 전송하다가 최 시어를 만나 함께 이곳에 올랐다(登敬亭北二小山余時客逢崔侍御並登此地)
제36수 최팔장의 물가 정자에 들르다(過崔八丈水亭)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 후기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제20수 여산의 폭포를 바라보며. 둘째 수
향로봉에 햇빛 비쳐 자색 안개 일어나고,
멀리 폭포 보이나니 긴 냇물이 하늘에 걸렸구나.
날아서 삼천 자를 곧장 떨어지니
마치 하늘에서 은하수가 내려오는 듯하구나.
望廬山瀑布 其二
日照香爐生紫煙, 遙看瀑布挂長川.
飛流直下三千尺, 疑是銀河落九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