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수필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수필을 대표하는 주요 수필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나림 이병주는 결코 잊혀서는 안 될 작가다. 그처럼 역사와 문학의 상관성을 도저한 문필로 확립해 놓은 경우를 발견할 수 없으며, 문학을 통해 우리 근·현대사에 대한 지적 토론을 가능하게 한 경우를 만날 수 없기에 그렇다. 한국 문학에 좌익과 우익의 사상을 모두 망라한 작가, 더 나아가 문·사·철(文·史·哲)을 아우르는 탁발한 교양의 세계를 작품으로 수렴한 작가, 소설의 이야기가 작가의 박람강기(博覽强記)와 더불어 진진한 글 읽기의 재미를 발굴하는 작가가 바로 이병주다. 그의 문학에는 우리 삶의 일상에 육박하는 교훈이 잠복해 있고, 그것은 우리가 어떤 관점과 경륜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유력한 조력자로 기능한다. 때로는 그것이 어두운 먼바다에서 뭍으로 돌아오게 하는 예인 등대의 불빛이 되기도 한다.
이병주의 수필은 그 소재적 차원에서 바라볼 때 역사, 사상과 철학, 문학, 성(性), 작가의 체험 등 인생사와 세상사의 여러 부면에 걸쳐져 있다. 모두 3부로 엮은 이 책은 각 부별로 일정한 주제에 따라 분류된 작품들로 묶여 있다. 1부로 되어 있는 다섯 편의 글은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독서를 통해, 또 그렇게 만나는 문학과 역사와 법률 등의 요목을 통해 인간다운 삶이 지향하는 가치에 대해 다루고 있다. 2부로 분할된 다섯 편의 글은 사상과 이데올로기와 문학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를 전개한다. 그 어의의 개념과 역사적 학문적 전개 그리고 독자적인 해석에 이르기까지, ‘인문의 향연’이라 할 만한 재기가 넘치는 글들이다. 그리고 3부의 두 편은 모두 문학 속에 담긴 인간, 삶 가운데 잠복한 사상에 대해 담담하지만 확고한 어조로 써 내려간 글이다.
여기에 수록된 글들을 통해 그가 문학, 역사, 사상, 인간에 대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을 어떻게 표현했는가를 유추하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그는 인간의 모든 정신적 활동, 그것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문학이 인간 또는 인간다움과 어떤 상관성을 갖고 있는가에 대한 추구 및 천착으로 일관한 작가다. 비단 문학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상대역으로 만나는 학문이나 예술의 분야가 무엇이든 간에, 인간이 도외시된 주의나 주장은 그의 세계에서 효용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역사도 사상도 법률도 다 그렇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그가 이와 같은 주장의 전개를 딱딱하게 굳은 학구적인 자세로 일관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의 굴절, 박학다식한 독서 체험과 더불어 매우 부드럽고 친숙하게 들려준다는 데 있다. 그 또한 이병주 산문이 가진 또 다른 매혹이다.
200자평
<소설·알렉산드리아>를 시작으로, ‘우리 시대의 정신적 대부’라 불릴 만큼 보기 드문 문학적 형상력을 이루어 내고 엄청난 대중적 수용성을 보인 작가 이병주. 그의 수필은 소재 차원에서 바라볼 때 역사, 사상과 철학, 문학, 성(性), 작가의 체험 등 인생사와 세상사의 여러 부면에 걸쳐 있다. 소설보다도 더욱 사실적이고 진솔한 산문은 글을 읽는 사람이 절로 손바닥을 들어 무릎을 치게 만들 만큼 흡인력과 설득력이 넘친다.
지은이
나림(那林) 이병주(李炳注)는 1921년 3월 16일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에서 아버지 이세식과 어머니 김수조 사이에서 태어났다. 1941년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전문부 문예과를 졸업하고, 이어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불문과에 진학해 재학 중 학병으로 동원되어 중국 쑤저우(蘇州)에서 지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귀국해 1948년 진주농과대학, 혜인대학(현 경남대학)에서 영어, 불어, 철학 강의를 했다.
등단하기 이전인 1954년에는 ≪부산일보≫에 소설 ≪내일 없는 그날≫을 연재했다. 이 작품은 당시 부산일보 논설위원이었으며 훗날 문화방송 사장을 지낸 황용주와 편집국장 이상우가 합심해 지방 신문 소설을 육성하기 위한 방편으로 쓰게 한 것으로, 그가 중앙 문단 데뷔 전 쓴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1955년부터는 ≪국제신보≫ 편집국장 및 주필로서 활발한 언론 활동을 전개한다. 그러나 1961년 5·16 군사 정변으로 인한 필화 사건으로 혁명 재판소에서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2년 7개월 후에 출감했다. 그 뒤 외국어대학과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65년 중편 <소설·알렉산드리아>를 ≪세대≫에 발표하면서부터다. 계속해서 <매화나무의 인과>, <마술사>, <쥘부채>, ≪관부연락선≫ 등을 발표했고, 그중 ≪관부연락선≫은 일제 강점기부터 6·25 전쟁까지의 한국 지식인들을 역사적 방법으로 다룬 점에서 문제작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그 뒤에도 그는 죽을 때까지 한 해도 빠짐없이 중·단편 소설을 발표하거나 신문, 잡지 등에 장편 소설을 연재했다. 뿐만 아니라 그사이 펴낸 소설집만도 60권이 넘는다.
이 밖에도 ≪지리산≫, ≪산하≫, ≪행복어사전≫, ≪그해 5월≫ 등 기록할 만한 많은 작품이 있다. 그의 작품은 역사와 시대, 정치와 사회 전반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일제 강점기와 광복 후 좌우익의 대립, 4·19 혁명, 5·16 군사 정변으로 이어지는 현대사는 거의 지식인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지리산≫의 이데올로기 문제와 비극적 인간들, ≪변명≫의 젊은 지식인들이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했던 역사를 위한 변명들이 그 대표적인 예이며, 미완의 작품인 ≪별이 차가운 밤이면≫의 일본 유학생들도 그 예가 될 수 있다.
그는 1977년 장편 소설 ≪낙엽≫과 중편 소설 ≪망명의 늪≫으로 한국문학작가상과 한국창작문학상을 수상했다.
엮은이
김종회는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88년 ≪문학사상≫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문단에 나온 이래 활발한 비평 활동을 해 왔으며 ≪문학사상≫ ≪문학수첩≫ ≪21세기문학≫ ≪한국문학평론≫ 등 여러 문예지의 편집위원을 맡아 왔다. 현재 한국문학평론가협회 및 한국비평문학회 회장이다.
김환태평론문학상, 김달진문학상, 편운문학상, 유심작품상, 한국문학평론가협회상, 시와시학상, 경희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평론집으로 ≪문학과 예술혼≫ ≪디아스포라를 넘어서≫ ≪문학에서 세상을 만나다≫ ≪문학의 거울과 저울≫ 등이 있고 ≪한국 소설의 낙원 의식 연구≫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 등의 저서와 ≪글에서 삶을 배우다≫ 등의 산문집이 있다.
사단법인 일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 사무총장, 통일문화연구원 원장 등을 맡은 경력과 관련해 북한 문학과 해외 동포 문학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많으며 그 결과로 ≪북한 문학의 이해≫(전 4권) 및 ≪북한 문학 연구 자료 총서≫(전 4권)와 ≪한민족 문화권의 문학≫(전 2권) 및 ≪해외 동포 문학 전집≫(전 24권) 등을 엮은 바 있다.
차례
1부
지적 생활의 즐거움
백장미와 2월 22일
≪역사를 위한 변명≫
법률과 알레르기
도스토옙스키의 범죄 사실
2부
사상과 이데올로기
이데올로기와 문학
문학이란 무엇인가
유머론 서설
≪죄와 벌≫에 관해서
3부
긴 밤을 어떻게 새울까
오욕의 호사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지적인 생활이란 언제나 최고를 선택하는 생활이다. 사상의 최고, 행동의 최고, 취미의 최고. 불행의 시궁창 속에 빠져 있어도 인간의 위신을 지킬 줄 알고 보다 아름다운 것, 보다 착한 것을 지향할 줄 아는 생활을 뜻한다. 비록 철인이 될 수는 없어도 철학의 은총 속에 살고, 비록 예술가가 될 수는 없어도 예술의 향기 속에 살 수 있는 비리(秘理)가 지적 생활엔 있는 것이다.
<지적 생활의 즐거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