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현재, 일본의 시 장르는 크게 셋으로 분류할 수 있다. 기본 음수율이 5·7·5·7·7음인 단가(短歌), 5·7·5음인 하이쿠(俳句), 자유율의 자유시가 그것이다. 단가 시인은 가진(歌人), 하이쿠 시인은 하이진(俳人), 자유시는 시진(詩人)이라 칭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다쿠보쿠는 가진이며 시진이지만, 본 역서에서는 한국어로 편의상 통칭해 시인으로 번역했다. 일본에서 다쿠보쿠는 시진보다 가진으로서 평가가 높다.
다쿠보쿠가 남긴 단가집으로는 ≪한 줌의 모래(一握の砂)≫와 ≪슬픈 장난감(悲しき玩具)≫이 있다. 이 단가들을 일본 근대 문학사에서는 보통 생활파 단가라 한다. 일반적으로 단가는 연애 감정이나 풍경 등을 주요 소재로 했는데, 다쿠보쿠가 처음으로 일상을 소재로 삼았던 것이다. 도시 서민의 일상적 빈곤이 소재가 되었고, 아내와 자식, 가족 간의 갈등이 소재가 되었다. 단가의 영역이 일상으로 확대되었다는 평가를 받는 까닭이다. 이러한 서민적 감성은 특히, 일본이 패전한 후 경제 복구를 위해 고생한 세대들에게 더욱 사무치게 느껴졌다. 고생한 세대들에게 다쿠보쿠의 단가는 시적 문학적 표현 능력이 부족한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현대적 의미에서 대중가요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애호가들이 많았다. 후술하지만 다쿠보쿠의 시는 시대를 아우르는 감흥을 느끼게 해 준다. 다쿠보쿠가 국민 시인이라 불리는 이유다.
다쿠보쿠의 작품에는 시대를 아우르는 매력이 있다. 젊은이들의 경제적 애환을 표현한 시, 무주택 도시민의 소박한 꿈을 표현한 시, 사회주의 문학의 선구적 사상을 표현한 시, 자본주의가 집적된 비인간적인 도시의 속성을 표현한 시, 가난하고 평범한 생활 환경 속에서 인내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서정적 긴박감을 표현한 시, 일본의 과거사를 반성하게 하는 시 등은 오늘날의 독자가 봐도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삶의 진솔함이 배어 있는 작품들이다.
200자평
일본에서 생활시를 처음 유행시킨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시와 단가를 함께 엮었다. 그가 노래하는 것은 어려운 형이상학이나 덧없는 사랑이 아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며 느낀 슬픔, 희망, 고통, 즐거움을 소박한 일상 언어로 노래했다.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으로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깊은 공감과 위로를 준다.
지은이
이시카와 다쿠보쿠는 1886년(메이지 19) 일본의 동북 지역인 이와테현(岩手県)에서, 승려의 아들로 태어나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다(일본의 승려는 일반적으로 대처승으로 가족이 있다). 모리오카(盛岡)중학교 시절부터 문학적 재능을 보이며 시작(詩作) 활동을 활발히 했으며, 조숙하게도 후일 아내가 되는 세쓰코(節子)와 연애에 열중하기도 했다. 졸업을 반년 앞두고 중학교를 중퇴해, 학력 사회가 되어 가는 근대 일본 사회에서 불리한 인생길을 걷게 된다. 중학교를 중퇴한 다쿠보쿠는 문학적 재능을 입신의 기회로 삼고자 시, 문학 서평 등을 분주히 발표한다.
그러나 다쿠보쿠의 아버지가 호토쿠사(宝徳寺) 주지직을 파면당하면서, 이후 그는 생활고와 싸우며 문학의 길을 걸어야 했다. 1905년 20세 때, 시집 ≪동경(あこがれ)≫를 발간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기도 했으나, 그것이 생활에 보탬이 되지는 않았다. 당시는 글을 써서 생활할 수 있는 소위 프로 작가들이 탄생하기 전이었고, 그나마 신문이나 상업 잡지 등에서 관심을 보인 것은 소설류였기 때문이다.
1907년 22세 때, 다쿠보쿠는 생활의 패턴을 바꾸어 보고자 홋카이도에 건너가 임시 교원, 신문 기자 등을 하며 생활인으로서 동분서주해 나름대로 안정을 찾는다. 그러나 생활인으로서의 안정은 곧바로 문학으로부터 동떨어져 있음을 자각시켰고, 약1년여의 홋카이도 생활을 뒤로한 채 다쿠보쿠는 상경 길에 오른다. 마지막으로 문학적 인생을 추구하고자 한 것이다. 상경 후, 다쿠보쿠는 생활비를 마련하고자 열심히 소설을 쓴다. 당시는 자연주의 문학이 성행하던 시기로 리얼리즘이 소설의 중요한 요소였는데, 다쿠보쿠의 소설은 낭만주의적 성향의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다쿠보쿠 자신의 생활이나 발상이 다분히 현실적이지 못하고 낭만적 성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의 소설은 팔리지 않았고, 다쿠보쿠는 문학적 좌절과 생활고에 허덕여야 했다. 다쿠보쿠는 많은 수의 단가를 지으며 현실적 고뇌를 잊기 위해 몸부림쳤다. 이 무렵 쓴 단가들은 후일 그의 대표 가집인 ≪한 줌의 모래(一握の砂)≫에 수록된다.
1909년 3월 24세 때, 다쿠보쿠는 생활을 위해 고향 선배의 도움으로 도쿄아사히신문사 교정 직원으로 취직하게 된다. 그리고 홋카이도의 가족을 맞이해 비로소 일가 단란의 기회를 얻게 된다. 그것도 잠시, 그해 가을 생활고와 고부간의 갈등을 참지 못한 아내 세쓰코가 딸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출하는 일이 벌어진다. 얼마 후 아내는 돌아오는데, 이 일을 계기로 대단한 충격을 받은 듯, 다쿠보쿠는 친우에게 보낸 편지에 ‘나의 사상은 급격히 변했다(僕の思想は急激に変化した)’라고 쓰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그의 평론에 잘 나타나고 있다. ‘생활의 시(食ふべき詩)’에서는 공상적 시인의 발상을 버리고 현실적 감각에 의한 문학 추구를 주장한다. ‘가끔씩 떠오르는 느낌과 회상(きれぎれに心に浮んだ感じと回想)’에서는 국가 권력을 강권으로 이해한 면모가 드러나 있다. 당시 국가의 실체를 강권으로서 인식한 문학자는 매우 드물었다. 이러한 국가 인식은 다음 해에 쓴 <시대 폐쇄의 현상(時代閉塞の現狀)>의 하나의 기반이 된다.
25세 때인 1910년 초여름, 대역 사건이라 칭하는 사회주의자 탄압 사건 일어나게 된다. 다쿠보쿠는 여기에 큰 관심을 보이며 사회주의 사상에 대해 공부를 하고 관심을 기울인다. 이러한 배경 아래 그해 8월, <시대 폐쇄의 현상>을 집필하게 된다. 이것은 메이지 제국주의 사회 모순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당대 최고의 평론이라 할 수 있다. 그해 12월 다쿠보쿠는 일본 근대 문학사에 그의 이름을 각인한 단가집 ≪한 줌의 모래(一握の砂)≫를 간행한다. 이 단가집에 담긴 대부분의 단가들은 1910년에 쓴 것으로, 도시 생활의 애환을 그린 것과 추억을 회상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후세의 문학 연구가들은 이 단가집의 단가를 평해서, 다쿠보쿠식 단가 또는 생활파 단가라 칭했다.
이듬해 다쿠보쿠는 점점 병약해져 대학 병원에 입원하기 까지 했다. 그러는 가운데 문학적 의지를 보이며 시 노트 ‘호르라기와 휘파람(呼子と口笛)’을 작성한다. 혁명에 대한 동경과 생활인으로서의 꿈이 그려져 있어 분열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 시 노트는 시집 발간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었으나 다쿠보쿠 생전에 빛을 보진 못했다. 다쿠보쿠의 병세는 더욱 악화해 더 이상 집필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마침내 1912년 4월 13일 27세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옮긴이
윤재석은 1964년에 태어나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일본 메이지대학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밭대학교 일본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이시가와 다쿠보쿠 소설 ≪구름은 천재다≫考−반권력적 텍스트로서−>, <石川啄木における伊藤博文暗殺事件ー新聞報道資料を中心にー> 등 다수가 있다.
차례
제1부 시(詩)
제1장 호루라기와 휘파람(呼子と口笛)
끝없는 토론 후(はてしなき議論の後)
코코아 한 스푼(ココアのひと匙)
격론(激論)
서재의 오후(書斎の午後)
묘비명(墓碑銘)
낡은 가방을 열고(古びたる鞄をあけて)
집(家)
비행기(飛行機)
제2장 심상 연구(心の姿の硏究)
여름 거리의 공포(夏の街の恐怖)
잠에서 깨지 말렴(起きるな)
불길한 봄날 저녁(事ありげな春夕暮)
버들잎(柳の葉)
주먹(拳)
제3장 시 6장(詩六章)
길가의 풀꽃(路傍の草花に)
휘파람(口笛)
편지(手紙)
꽃비녀(花かんざし)
아, 정말로(あゝほんとに)
어제도 오늘도(昨日も今日も)
제4장 도시(都市)
무제(無題)
잠든 도시(眠れる都)
네거리(辻)
기마순경(騎馬の巡査)
제2부 단가(短歌)
제1장 한 줌의 모래(一握の砂)
1. 나를 사랑한 시(我を愛する歌)
2. 연기(煙)
3. 가을바람의 상쾌함(秋風のこころよさに)
4. 잊을 수 없는 사람들(忘れがたき人人)
5. 장갑을 벗을 때(手套を脫ぐ時)
제2장 슬픈 장난감(悲しき玩具)
해설
지은이에 대해
지은이 연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일해도
일을 해도 여전히 내 생활 나아지지 않네
물끄러미 손바닥 바라보네
はたらけど
はたらけど猶わが生活樂にならざり
ぢつと手を見る
고향 사투리 그리워
기차역 인파 속으로
사투리 들으러 간다
ふるさとの訛なつかし
停車場の人ごみの中に
そを聴きにゆ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