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왕자는 실비아와 결혼하고 싶어 그녀를 납치한다. 하지만 실비아는 얼굴도 모르는 왕자의 구혼을 완강하게 거부한다. 고향에 있는 연인 아를르캥 때문이다. 이때 플라미니아가 왕자를 위해 조력자로 나선다. 그녀의 계략으로 실비아와 아를르캥은 서로 변심하고 실비아는 궁정 시종에게, 아를르캥은 플라미니아에게 새로운 사랑을 느낀다. 궁정 시종은 실비아의 사랑을 확인한 뒤 자신이 왕자라는 사실을 밝힌다.
‘이중의 변심’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주제는 ‘사랑의 불충실함’이다. 그러나 젊은 연인이 첫사랑을 지키지 못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는 것에 대해 마리보는 도덕적인 잣대로 비판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애에 바탕을 둔 인간 심리의 어쩔 수 없는 측면으로 받아들인다. ‘변심’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습작 수준에 그쳤던 초기작과 달리 그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최초의 작품을 초역으로 소개한다.
200자평
프랑스 연극계에서 마리보의 대표작으로 인정받는 작품은 단연 <사랑과 우연의 유희>다. 그다음으로 많이 알려진 작품이 바로 <이중의 변심>이다. 연극 공연이나 영화로 각색된 빈도에서 그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 이 작품이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았던 까닭에 국내 연극계에선 공연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 역서의 출간으로 프랑스 희곡에 관심 있는 독자, 연극 관계자에게도 마리보의 또 다른 대표작을 발견하는 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지은이
마리보는 보마르셰와 함께 18세기 프랑스 희극을 대표하는 작가다. 본명은 피에르 카를레 드 샹블랭, 1688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오라토리오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학교를 다니며 고대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문학에 입문했다. 1710년 파리로 상경해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지만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관심을 문학으로 돌린다. 프레시오지테 경향을 반영한 장편 연애소설 ≪호감이 주는 놀라운 효과≫를 발표한 데 이어 ≪진창에 빠진 마차≫, ≪변장한 일리아드≫ 등의 소설을 연이어 발표하며 문필가로서 명성을 얻는다. 1716년부터 집 근처에 있는 길 이름에 착안해 마리보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다. 1730년대 그를 후원했던 탕생 부인의 도움으로 경쟁자 볼테르를 물리치고 1742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피선된다. 이후 몇 차례 연설문을 집필한 것을 제외하고 무대에서 공연될 만한 성공작을 더 이상 발표하지 못하고 위축된 노년을 보내다 1763년 파리에서 사망한다.
옮긴이
이경의는 1962년 인천에서 태어나 부평에서 초·중·고 교육 과정을 이수했다. 서강대학교에서는 불어불문학을 전공하며 연극 장르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파리 4대학에서 본격적으로 프랑스 고전극의 연구를 시작하여 몰리에르 연극에 관한 연구로 석사과정과 박사준비과정을 이수한 데 이어 1994년 <17세기 프랑스 희극에 등장하는 바르봉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6년부터 경북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프랑스 문학사를 비롯하여 프랑스 연극과 영화에 관한 강의를 맡고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제1막
제2막
제3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작품 연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43~144쪽
실비아: 제가 궁정 여자들에게 복수해 주려고 했던 것 잘 아시죠? 그런데 이제 그런 생각이 없어졌어요.
플라미니아: 그럼 아가씨는 본래 복수심이 없는 분이셨군요.
실비아: 제가 아를르캥을 좋아했죠?
플라미니아: 그랬던 것 같아요.
실비아: 그런데 이젠 그 사람을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플라미니아: 그렇다고 크게 잘못된 일은 아니지요.
실비아: 크게 잘못된 일이라도 어쩌겠어요? 제가 그 사람을 좋아했을 땐 사랑이 저를 찾아왔던 거고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 지금은 그게 가 버린 거예요. 제 뜻과 무관하게 사랑이 찾아왔다가 마찬가지로 가 버렸으니 제가 비난받을 일은 없지요.
플라미니아: (첫마디는 방백으로) 잠시라도 웃지 않을 수 없군. 저도 거의 비슷한 생각입니다.
실비아: (흥분해서) 거의 비슷하다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완전히 동감한다고 해야지요! 그게 사실이거든요. 내가 아는 사람들은 꼭 이렇게 이랬다저랬다 한다니까!
플라미니아: 그런데 왜 그렇게 흥분하세요?
실비아: 흥분하는 게 당연하지요. 진솔하게 의견을 구하는데 ‘거의 비슷하게’라고 사족을 달면 어떡해요!
플라미니아: 칭찬하는 의미로 농담한 걸 모르세요? 그래 아가씨가 좋아하는 분이 궁정 시종인가요?
실비아: 그럼 그분 말고 누가 있단 말이에요? 아직 좋아한다고 인정할 순 없지만 결국엔 그렇게 될 거예요. 항상 ‘예스’를 기대하는 사람에게 꼬박꼬박 ‘노’라고 대답하면서 그 사람이 슬퍼하고 한탄하는 걸 보며 그의 고통을 계속 위로하는 것도 견디기 힘든 일이잖아요? 차라리 그런 짓을 그만두는 게 낫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