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의 ‘초판본 한국소설문학선집’ 가운데 하나. 본 시리즈는 점점 사라져 가는 명작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이 엮은이로 나섰다.
이태준의 서정성이 잘 드러나는 단편소설로는 <달밤>, <가마귀>, <복덕방>이 있다. 이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인생의 패배자’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타락한 세태에서는 볼 수 없는 순수성과 선량성을 가진 인물이다. 작가는 이들 삶에 나타나는 짙은 허무와 패배주의적 의식을 드러냄으로써, 식민지의 타락한 근대적 삶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달밤>은 문안에서 살던 ‘나’가 문밖 성북동으로 이사 온 후 황수건이라는 인물을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황수건은 둔하고 천진한 품성을 가진, ‘못난이’이자 ‘반편’이다. 우둔한 행동으로 하는 일마다 잘 안 풀리지만 그래도 낙천적인 모습을 보인다. 작가는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외려 우둔하고 천진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사람다운 삶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가마귀>는 서사성보다는 분위기 묘사에 치중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음습한 별장에 대한 묘사, 불길한 까마귀 울음 소리에 대한 묘사, 폐병 환자인 여인에 대한 묘사 등이 어우러져 어둡고 침침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특히 까마귀 울음의 표현은 작품의 애상성을 한층 강조하고 있다. 이태준 단편소설의 서정적 진수를 가장 잘 나타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복덕방>은 복덕방에서 소일하는 세 노인을 통해 급변하는 사회상과 물질 만능 주의, 개인주의적 명예욕을 비판한다. 전직 대한제국군이었던 서 참의는 국권피탈 이후 복덕방을 시작한다. 부동산 투기 열풍을 타고 사업이 잘되자 그는 긍정적인 인생관을 갖게 된다. 반면 안 초시는 하는 일마다 실패하는 사람이다. 우연히 어떤 정보를 듣고 땅 투기를 감행하지만 크게 실패, 자살하고 만다. 안 초시 장례식에 간 서 참의와 박희완 영감은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하나도 마음에 안 드는 꼴을 보며 답답함을 느낀다.
<농군>은 이태준 작품 중 특이한 편에 속한다. 이 소설은 실제 일어났던 1931년 완바오 산 사건을 다루고 있다. 완바오 산 사건은 만주 토착민과 조선에서 이주한 농민 사이의 갈등이 크게 번진 일이었다. 그런데 일제는 이 사실을 왜곡하여 중국인들의 일방 테러로만 보도함으로써, 한때 조선에서는 중국인 배척 운동이 심하게 일어났다. 이 작품은 역사적 사실에서 기본 골격을 빌려 왔지만, 상당 부분 사실을 왜곡·변형시켰다. 이는 당대의 검열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작가의 소박한 현실 인식도 왜곡에 한몫했다.
<토끼 이야기>는 이태준의 자전적 요소가 깊은 작품이다. 조선어 신문들이 폐간되자 전직 기자인 주인공 현은 토끼를 길러 생계를 삼으려 한다. 그러나 사료가 귀해지자 토끼 40여 마리를 얼른 죽여야 할 판이 된다. 현은 토끼를 도축할 용기가 없다. 대신 임신한 아내가 그것을 실행한다. 이를 보고 현은 ‘펄석 주저앉을 듯’한 심경이 된다. 이 심경은 시대 상황에 억눌려 모든 것을 체념한 당대 지식인의 태도를 대표한다.
<해방 전후> 역시 이태준의 1943∼1945년 당시 삶이 노출되어 있다는 점에서 자전적 성격이 강한 작품이다. 문인보국회 소속 작가인 현은 서울 집을 그냥 그대로 둔 채 친지가 있는 강원도 산골로 소개(疏開)를 간다. 그곳에서 소일하다가 해방을 맞아 상경, 해방 후 막 생긴 문학 관련 단체에 관계하게 된다. 현은 이념 이상의 민족적 단결과 통합을 기대하면서, 독단적 행태를 보이는 공산주의 문인들을 나무란다. 이 작품은 해방 공간에서 일어난 문인들의 이념 갈등을 반영하고 있다.
200자평
‘단편소설의 정련화’와 ‘장편소설의 실패’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는 근대 작가 이태준의 중·단편 여섯 작품을 모은 책. <달밤>, <가마귀>, <복덕방>, <농군>, <토끼 이야기>, <해방 전후>를 통해 그의 서정성·현실 인식·인생·이념을 알 수 있다.
지은이
이태준(李泰俊, 1904∼1970?)은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산명리에서 1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블라디보스토크에 갔다가 1909년에 아버지를, 1912년에 어머니를 잃고 고아가 되었다. 1918년 고향으로 돌아와 친척집에 기거하면서 어렵게 철원 봉명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어려운 가정 상황으로 인해 방황을 하다가, 1921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다가 1924년 동맹휴교 주모자로 낙인찍혀 5년제 과정 중 4학년 1학기에 퇴학을 당했다. 퇴학의 아픔을 위무하면서 상허는 일본 유학길을 떠나, 1927년 도쿄 조치대학(上智大學) 예과에 입학했다가 1928년 중퇴한다. 1925년에 단편 <오몽녀>를 ≪조선문단≫에 투고하여 입선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29년 ≪개벽≫에 입사한 후 ≪학생≫, ≪신생≫ 등의 잡지 편집에 관여했고, ≪어린이≫에 수필과 소년 독본을 발표하였다. 1933년에 ‘구인회’에 참여하면서 서정성이 농후한 작품을 발표하였고, 이화여전 등에 작문 교사로 출강하였다. 1939년에는 ≪문장≫지를 창간하여 일제 말기 문학을 지탱해 나갔으며, 1941년 제2회 조선예술상을 수상했다.
해방 후 좌익 계열의 문학 단체에 가담했으며, <해방 전후>로 조선문학가동맹이 제정한 제1회 해방 기념 조선문학상을 수상했다. 1946년 7∼8월경 월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해 10월경 조선문화사절단의 일원으로 소련을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북한에 머물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종군작가로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온 것으로 전해진다. 1952년부터 사상 검토를 당하다가 1956년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후의 행적은 자세하지 않고 사망 연도도 불확실하다.
엮은이
문흥술(文興述)은 1961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 국문과에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인간주체의 와해와 새로운 글쓰기>가 당선되어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자멸과 회생의 소설문학≫(1997), ≪작가와 탈근대성≫(1997), ≪시원의 울림≫(1998), ≪모더니즘 문학과 욕망의 언어≫(2000), ≪한국모더니즘 소설≫(2003), ≪존재의 집에 이르는 지도≫(2004), ≪형식의 운명, 운명의 형식≫(2006), ≪문학의 본향과 지평≫(2007) 등을 썼고, 장편소설 ≪굴뚝새는 어디로 갔을까≫(2000), 편저 ≪운수 좋은 날≫(2001), ≪태평천하≫(2002), ≪상록수≫(2003), 공저 ≪소설 신라열전≫(2001) 등을 펴냈다. 2006년 김달진 문학평론상을 수상하였으며, 서울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차례
달밤
가마귀
복덕방(福德房)
농군(農軍)
토끼 이야기
해방 전후(解放前後)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여보? 어디 게슈?”
하는 안해의 찾는 소리가 난다. 내다보니 얼굴이 종이짱처럼 해쓱해진 안해는 두 손이 피투성이다.
“응!”
“물 좀 떠 줘요.”
“웬 피유?”
안해의 표정을 상실한 얼굴은 억지로 찧끼여 우슴을 짓는다. 피투성이 두 손은 부들부들 떤다. 현의 안해는 시칼을 가지고 어떻게 잡았는지, 토끼 가죽을 두 마리나 벗겨 놓은 것이다. 현은 머리칼이 쭈뼛 솟았다.
“당신더러 누가 지금 이런 짓 허래우?”
“안험 어떻허우? 태중은 뭐 지냇수? 어서 손 싯게 물 좀 떠 놔요.”
하고 안해는 토끼털과 선지피가 엉키인 두 손을 쩍 벌려 내여민다. 현의 머리속은 불현듯, 죽은 닭의 눈을 신문지로 가려놓고야 썰던 안해의 그전 모습이 지내친다. 콧날이 찌르르하며 눈이 어두어졌다.
피투성이의 쩍 버린 열 손가락, 생각하면 그것은 실상 자기에게 물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였다. 현은 펄석 주저앉을 듯이 먼 산마루를 쳐다보았다. 산마루엔 구름만 허-옇게 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