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책은 ≪인생길의 여러 단계≫ 중에서 실존의 윤리적 단계를 결혼에 빗대 묘사하고 있는 <결혼에 관한 약간의 성찰: 반론에 대한 응답, 유부남 씀(Adskilligt om Ægteskabet mod Indsigelser. Af en Ægtemand)>(SV. VI, 85∼161쪽)을 옮긴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단계라는 말보다 실존이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지만, 단계는 간단히 말해서 인간이 영위하는 여러 삶의 형태들을 의미한다. ≪인생길의 여러 단계≫에서는 삶의 형태가 심미적 단계, 윤리적 단계, 종교적 단계의 세 가지로 보다 세분화되어 있다. 윤리적 단계는 여러 사람이 갈 수 있는 좁은 길이지만 종교적 단계는 한 사람, 즉 단독자만이 갈 수 있는 좁은 길이다. 따라서 윤리적 단계에서는 개개인의 소통 가능성과 인생길의 보편성이 확보되지만, 종교적 단계에서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종교적 단계에서는 개개인의 소통 가능성과 인생길의 보편성은 신앙의 걸림돌이 될 뿐이다. 키르케고르는 인생이 헤겔의 ≪논리학≫에서처럼 직접적 단계, 중간적 단계, 양자의 통일과 같은 추상적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종교적 단계까지 아우르는 작품을 저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키르케고르에게 인생은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선택하는 실존적 운동의 과정이다. 이런 운동에서 견인차의 역할을 하는 것이 결단이다. 그런데 결단이 가장 돋보이는 단계가 바로 종교적 단계인 것이다. 따라서 여러 인생길을 예시하면서 종교적 단계를 빠뜨린다는 것은 본론을 생략하는 격이다. 그렇게 볼 때 ≪이것이냐 저것이냐≫가 서론에 해당하는 작품이라면 ≪인생길의 여러 단계≫는 본론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이런 점에서 ≪인생길의 여러 단계≫는 키르케고르의 실존의 3단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200자평
실존의 윤리적 단계를 결혼에 빗대 묘사한다. 화자로 등장하는 유부남 판사는 독단적이라고 할 만큼 결혼을 예찬하고, 결혼하는 것만이 최고이자 최선의 ‘결단’이라고 말한다. 즉, 결혼은 순간의 ‘결단’이라고 말하는데 결혼하지 않는 소극적인 결단을 내리는 자는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고, 결혼하는 것만이 적극적인 결단이며 행복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 것일까? 결혼한, 혹은 결혼을 생각하는 독자들의 ‘결단’이 필요하다.
지은이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코펜하겐의 성공한 상인 미카엘 키르케고르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독실한 그리스도교 신자였던 미카엘은 쇠렌에게 엄격한 그리스도교 교육을 베풀었다. 쇠렌은 누구보다 아버지를 따랐고, 그의 암울한 성격, 신앙심, 가르침에 영향을 많이 받으며 자랐다. 쇠렌의 암울한 성격과 어떻게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가라는 평생의 문제의식은 그로부터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코펜하겐 대학 신학부에 입학했으나 한동안 방탕한 생활을 하며 그리스도교는 광기라고 말할 정도로 그리스도교에서 멀어진다. 그의 파멸의 시기는 1836년 자살 미수 사건으로 절정에 이르게 되지만, 이후 점차 안정을 되찾는다. 아버지와 화해한 뒤 그리스도교로 다시 돌아온다. 그리스도교는 역설이라는 신념으로 철저히 무장하고, 레기네 올센과의 약혼을 파기하면서까지 당시 덴마크 지성계를 지배하고 있던 합리주의의 전형인 헤겔주의를 공격하는 데 몰두한다. 이런 공격의 일환으로 1843년에 내놓은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필두로 그는 10여 년에 걸쳐 수십 편에 달하는 작품들을 쏟아낸다. ≪반복≫, ≪두려움과 떨림≫, ≪불안의 개념≫, ≪철학적 조각들≫, ≪철학적 조각들에 대한 결론으로서의 비학문적 후서≫, ≪사랑의 역사≫, ≪그리스도교적 강화집≫, ≪죽음에 이르는 병≫ 등이 이 시기에 나온 키르케고르의 대작들이다.
그는 세속에 물든 덴마크 국교회와 치열하게 싸우다 1855년 마흔넷의 나이로 외롭게 세상을 떠난다. 세상을 떠나며 폭탄이 터져 불을 지를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의 예언대로 그의 사상은 현대 실존주의 철학과 변증법적 신학에 불을 댕겼다. 이제 그의 사상을 빼고 현대 실존주의 철학과 변증법적 신학은 말할 것도 없고, 이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현대 철학을 논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옮긴이
고려대학교 철학과와 동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1992년에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논문 〈키에르케고어의 자기의 변증법〉은 키르케고르 실존철학의 핵심인 실존의 3단계의 변증법적 구조를 다루고 있다. 또한 그는 키르케고르 실존철학에 관한 논문을 여러 편 썼으며, 저서로는 《헤겔에서 리오타르까지》(공저, 지성의샘, 1994), 《공간 물질, 시간 정신, 그리고 생명 진화》(공저, 북스힐, 2007) 등이 있다. 역서로는 《니체》(지성의샘, 1993), 《반철학으로서의 철학》(공역, 지성의샘, 1994), 《직업윤리》(공역, 군산대학교 출판부, 1995), 《하이데거》(지성의샘, 1996), 《스칸디나비아 철학》(공역, 지성의샘, 1996), 《라틴아메리카 철학》(공역, 지성의 샘, 1996), 《불안의 개념》(한길사, 1999), 《키에르케고르》(시공사, 2001), 《철학의 거장들 3》(공역, 한길사, 2001), 《유혹자의 일기》(공역, 한길사, 2001), 《키에르케고르, 코펜하겐의 고독한 영혼》(한길사, 2003), 《카사노바의 귀향》(신아출판사, 2006), 《죽음에 이르는 병》(한길사, 2007), 《주체적으로 되는 것》(공역, 지식을만드는지식, 2008), 《키르케고르》(웅진지식하우스, 2009), 《두려움과 떨림》(지식을만드는지식, 2009), 《인생길의 여러 단계, 그중 결혼에 관한 약간의 성찰》(지식을만드는지식, 2024) 등이 있다. 현재 군산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다.
차례
인생길의 여러 단계, 그중 결혼에 관한 약간의 성찰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
결혼을 찬양할지며, 결혼에 경의를 표하는 발언을 하는 모든 이를 찬양할지어다. 만일 초심자에게도 촌평이 허용된다면, 나는 그것이 그렇게 놀라운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모든 것이 사소한 것들, 결혼의 신성한 요소가 어쨌든 기적을 통해 믿는 이에게 매우 뜻 깊은 것으로 바꾸어놓는 그런 사소한 것들 중심으로 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겠다.
2.
신부로서 여성은 처녀보다 훨씬 아름답다. 어머니로서 여성은 신부보다 더 아름답다.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여성은 때맞춘 좋은 소식이며, 해가 거듭할수록 더 아름답게 된다. 젊은 처녀의 아름다움은 많은 사람에게 분명하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