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책은 구성 체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역≫을 바라보는 성이심의 관점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흔히 64괘의 발생 과정을 태극(太極)-양의(兩儀)-사상(四象)-8괘-64괘의 순서로 설명한다. 이것은 단지 64괘의 발생 순서만이 아니라 우주 만물의 생성 과정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그러나 성이심은 이를 온전히 마음의 현상에 견주어 설명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그는 이를 ‘의의설(擬議說)’, 즉 ‘견주어 보고서 논의하는 글’로 설명하고 있다. 견주어 보아 논의한다는 것은 이러한 도식을 마음의 문제에 견주어 논의한다는 의미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역≫의 64괘에 나온 괘상, 괘사, 효상, 효사 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려 하지 않고, 각 괘의 특성에 맞는 마음을 각 괘에 견주어 배치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소성괘인 8괘에서는 경건함[敬]을 곤(坤)괘에 배치하고, 사랑[愛]을 건(乾)괘에 배치했으면서도, 대성괘인 건(乾)괘에는 인(仁)을 배치하고, 곤(坤)괘에는 의(義)를 배치했다. 64괘는 모두 이러한 인간의 감정들을 견주어 논의하고 있다.
그의 문인 이뢰가 말하듯이 성이심은 “사람들이 하늘과 사람이 하나의 이치임을 깨닫고, 안과 밖이 합치함을 보며, 역의 도에 근본이 있음을 알고, 스스로를 수양하고 어그러질 때의 길흉을 살피게 하기” 위해서 이 책을 지었던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하늘이라는 자연의 법칙과 인간이라는 도덕의 세계는 하나의 이치일 뿐이기 때문에 상수와 의리가 배척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국 철학사에서 최초로 역학의 새로운 사유를 개척했다는 점에서 성이심의 ≪인역≫을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200자평
≪인역≫은 ≪주역≫에 대한 새로운 해석 체계다. ≪주역≫은 텅 빈 집과 같다. 성이심은 거기에 인간의 마음을 채워 넣었다. 역의 이치로 인간의 마음과 감정을 이해하려 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인간의 마음에 대한 연구서이며 감정에 대한 백과사전이라 할 만하다.
≪인역≫의 의의도설(擬議圖說)과 전체 5권 가운데 권1, 문자회(文字膾) 1권을 번역했다.
지은이
성이심이 살던 시대는 숙종(肅宗), 경종(景宗), 영조(英祖) 세 명의 왕이 통치한 시기였다. 그는 세상을 등지고 학문에만 매진했던 은둔거사였으며, 명시적으로 드러난 학맥(學脈)은 없었다. 그의 문인인 이뢰(李磊)가 쓴 <반곡성선생행장(盤谷成先生行狀)>에 따르면 휘(諱)는 이심(以心)이고 자(字)는 덕성(德盛)으로 그 선친은 창녕(昌寧) 사람이다. 그래서 본관은 창녕이고 검교공파(檢校公派) 화천부원군(花泉府院君) 후손으로 시조로부터 20세손이다.
나주(羅州) 금안동(金鞍洞)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총명했으나 18세에 일찍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로 빈곤하게 살면서 공부에 매진했다. 1722년 41세 때 고부(古阜) 반용곡(盤龍谷)에 옮겨 와 살았는데 함께 살았던 사람이 일곱 명이 되어 사람들이 그 마을을 ‘처사촌(處士村)’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학문은 우계(牛溪) 선생을 따랐다고 한다. 우계란 성혼(成渾, 1535∼1598)을 말한다. 성혼은 율곡 이이와 사칠론(四七論)을 전개했고, 평생 친구로 지냈으며 함께 서인으로 분류되지만, 또한 노론의 시조는 율곡 이이이고 소론의 시조는 우계 성혼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이로 보아 성이심은 노론 계열보다는 소론 계열에 속한 사람이 아닐까 추측한다.
죽기 한 해 전인 1738년 7월에 부인과 아들을 불러 “꿈에 내가 죽는 날짜에 대한 고함이 있었다(夢有告我死期)”고 하고, 그날로부터 병이 깊어져 한 해를 지내고 1739년 11월 12일 반곡(盤谷)의 청화재(淸和齋)에서 죽었으니, 향년 58세였다. ≪인역≫ 외에도 ≪광망록(狂妄錄)≫, ≪남강정해몽설(南崗亭解蒙說)≫, ≪선비고몽기(先妣考夢記)≫, 서찰(書札), 소초(疏草), 시고(詩稿) 등을 남겼다고 하지만 전해지지는 않는다.
옮긴이
심의용은 숭실대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정이천의 ≪주역≫ 해석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에 관심을 두고 있고 있으며, 조선조 문헌에까지 관심을 넓혀 가고 있다. 고전번역연수원 연수과정을 수료하고 국사편찬위원회 고전연구위원을 지냈으며 현재 성신여대 연구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 ≪귀곡자 교양강의≫, ≪주역과 운명≫, ≪주역, 마음속에 마르지 않는 우물을 파라≫, ≪세상과 소통하는 힘≫, ≪못 말리는 아인슈타인에게 말 걸기≫(공저), ≪문화, 세상을 콜라주하다≫(공저)가 있고, 옮긴 책으로 ≪중국 지식인과 정체성≫, ≪장자 교양강의≫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초월로의 충동과 씨알에 의한 자치(自治)>, <북송 사대부들의 변화와 정이천 철학의 특성>, <서양인이 바라본 도가(Daoism)>, <정이천 철학에서 행위 방식으로서의 의리의 특징> 등이 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반곡선생(盤谷先生) 인역(人易) 의의도설(擬議圖說)
견주어 보고서 논의하는 도표(擬議圖)
견주어 보고서 논의하는 글(擬議說)
문답의 프롤로그(問答張本)
문자회 범례(文字膾凡例)
반곡선생(盤谷先生) 인역(人易) 1권
문자를 잘게 회 치다(文字膾) 1권
1. 인역(人易)
2. 천명(命)
3. 모습(貌)
4. 마음(心)
5. 몸과 마음(身心)
6. 말(言)
7. 들음(聽)
8. 봄(視)
9. 사려(思)
10. 기쁨(喜)
11. 분노(怒)
12. 슬픔(哀)
13. 두려움(懼)
14. 사랑 혹은 아낌(愛)
15. 미움 혹은 증오(惡)
16. 욕심(欲)
17. 경건함 혹은 공경함(敬)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견주어 보고 논의하는 것은 인역(人易)이다. 첫째는 ‘명(命)’이니 태극이고, 그다음 ‘용모와 마음’은 양의(兩儀, 陰陽)이고, 그다음 네 가지 일은 사상(四象)이고, 그다음 일곱 가지 감정과 경건함[敬] 한 가지는 소성괘(小成卦)인 8괘다.
-32쪽
물었다. “≪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길함을 추구하고 흉함을 피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인역’도 길함을 추구하고 흉함을 피할 수가 있습니까?”
답했다. “길흉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길함이란 이로움을 길함이라 하고, 흉함이란 해로움을 흉함이라 하는데, 나는 이러한 이해득실의 길흉을 추구하고 피하는 것을 보지 못했으니, … 내게 있는 것은 형체요 소리이며, 밖에 있는 것은 그림자이고 메아리이니, 길흉의 형체와 소리를 추구하고 피하지 못하면서, 길흉의 그림자와 메아리를 어떻게 추구하고 피할 수 있겠습니까? 길흉의 그림자와 메아리를 피하고 추구하고자 하면, 마땅히 먼저 길흉의 형체와 소리를 추구하고 피해야 할 것입니다.”
-56~5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