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페미니스트의 교실, 페미니즘과 교육이 만나는 자리
페미니스트는 다르게 가르치고 배운다. 페미니스트는 보다 평등하고 포용적인 지식을 향해 투쟁한다. 그래서 페미니스트 교실에서는 새로운 지식이 만들어진다. 주변부로 밀려났던 사람들의 경험은 지식의 원천이 되며, 그들이 교실로 가져온 질문과 욕구는 배움의 중요한 재료가 된다. 학문의 세계에서 억압당하고, 간과되고, 하찮은 존재로 여겨졌던 모든 부류의 사람들은 다초점적·다차원적 지식을 구성하는 주체가 된다. 이 책은 이러한 방식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페미니스트들, 페미니즘과 교육이 만나는 자리에 선 이들, ‘페미니스트 페다고지’를 수행하는 이들의 모습을 조명한다.
젠더·인종·계급의 매트릭스에서 배우고 가르치기
페미니스트의 교실은 젠더·인종·계급의 매트릭스 위에 놓여 있다. 교수자와 학습자는 각자의 젠더·인종·계급·성 정체성과 지향성에 따라 서로 다른 몫의 권력과 특권을 쥐게 되고, 그에 따라 가르치고 배우는 모습이 달라진다. 페미니스트 교실의 배경이 되는 학교의 특성도 이에 영향을 미친다. 페미니스트 교수자인 두 저자는 동료 페미니스트 교수자들의 교실로 들어가 치밀한 관찰과 심층적인 인터뷰를 통해 젠더·인종·계급과 그에 따른 권력의 역동을 세밀하게 그려 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수집한 자료, 숙련·목소리·권위·위치성 개념을 중심으로 한 분석, 통찰력 있는 해석, 주요 교육학 이론과의 연결 등도 돋보인다.
3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유효한 질문들
이 책의 원서 초판은 미국에서 1994년에 출간되었고, 개정판은 2001년에 출간되었다. 페미니스트 페다고지가 본격적으로 실천에 옮겨지기 시작하던 때였다. 초판이 나온 지 3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책 속의 질문들은 오늘날 한국의 교실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혹자는 성평등이 이미 달성되었고, 성평등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와 교실에서 혐오, 차별, 불평등의 흔적은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이 책이 던지는 질문들, 저자들이 그려 낸 페미니스트 페다고지의 출발점, 연구 참여자들이 보여 주는 페미니스트 페다고지의 지향점이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다. 더 나은 교실을 그리기 위한, ‘오래된 새로움’의 시각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200자평
페미니스트는 어떻게 배우고 가르치는가? 페미니즘과 교육이 만나는 지점에서 젠더, 인종, 계급, 권력 등을 둘러싸고 어떤 문제와 딜레마들이 생겨나는가?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교실 현장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형태의 지식을 만들어 내는 이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페미니스트 교실, 즉 페미니스트 페다고지의 실천 현장을 조명해 이 질문에 답한다.
지은이
프랜시스 마허
미국 휘턴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다.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 현장을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바라보는 페미니스트 페다고지 연구와 실천에 집중해 왔다. 『학술 세계에서 권력과 다양성(Privilege and diversity in the acaᐨdemy)』, 『젠더, 그리고 가르치는 일(Gender and teaching)』의 공저자이자, ≪여성학회지(Women’s Studies Quarterly)≫의 페미니스트 페다고지 특집호 편집위원이며, 대학 내에서 여성학을 다양한 여러 개론 과목과 통합하는 성평등 교육과정 프로젝트의 기획자이기도 하다.
메리 테트로
루이스앤드클라크대학교,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교수직을 거쳐 포틀랜드주립대학교 학장을 지냈다. 명예교수로 은퇴하기까지 다양한 성격의 미국 대학에서 겪은 여성학자로서의 경험을 세밀하게 분석한 책 『모든 것이 달라지는 세상에서 살아가기: 학문 세계에서 내 삶(Living when everything changed: My life in academia)』으로 주목받았다. 첫 번째 저서 『미국의 여성들: 역사의 절반(Women in America: Half of history)』, 마허와 함께 집필한 『학술 세계에서 권력과 다양성』, 『젠더, 그리고 가르치는 일』을 통해 교육과 연구 현장에 대한 페미니스트 통찰력을 발휘했다.
옮긴이
전제아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교육철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교육정책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교육에서의 정의(正義)를 주제로 연구하는 학자이자, 이화여자대학교·상명대학교·가톨릭대학교에서 교육철학과 평생교육을 가르치는 교수자이자, 『모방사회』(2015)·『대학 혁신, 마케팅으로 승부하라』(2007)·『비폭력』(2007), 『자유로운 어린이: 서머힐 교육』(1998) 등의 번역자다.
차례
서문
역자 서문
1장 다시 한 번 환상을 깨기
연구의 시작과 전개
연구 방법의 진화
백인성이라는 기준은 교실에서 어떻게 지식을 형성해 가는가?
페미니스트 페다고지: 천진난만한 성공담인가, 지식의 사회적 구성을 인식하라는 촉구의 소리인가?
결코 사라지지 않는 이분법
네 가지 주요 테마
2장 만화경 만들기: 여섯 학교의 초상화
애리조나대학교: 학문과 교육과정에서 여성의 자리를 확보한 학교
토슨주립대학교: 교육과정 변형하기, 주변부에서 페미니스트 페다고지 만들기
루이스앤드클라크대학교: 남녀공학과 인종 다양성 다시 생각하기
휘턴대학교: 여성과 남성에게 ‘성평등한’ 환경 만들기
스펠먼대학교: 흑인 여성의 입장에 서서 반대 항의 지식 생산하기
샌프란시스코주립대학교: 유색인종 여성의 관점에서 여성학 보기
3장 숙련
페미니스트 시각에서 학문 재구성하기
간학문적이며 페미니스트적인 해석
학술 지식의 경계 확장하기
해석으로서 숙련: 결론
4장 목소리
목소리와 개인적 발달: 여학생 사례
남성의 성 정체성: 남학생 사례
침묵 깨기
인종과 젠더, 여학생과 남학생 사이의 긴장
섹슈얼리티와 교실
의사소통, 폭로, 침묵
성적 의사소통에 대한 공개 담론
5장 권위
학생들을 학문적 권위자 위치에 놓기
가부장적 권위에 도전하기
내러티브 권위와 텍스트
교수의 권위에 공공연하게 도전하기
서로에게 권위자가 되어 주기
6장 위치성
타자 이미지: 차이 다루기
미국 사회의 풍경: 계급의 역할
다중적인 위치에 서서 지식 구성하기
7장 위치성 페다고지를 향하여
위치성 페다고지의 몇 가지 광경
학문 영역의 인식론, 학술 기관의 인식론
사회 구조, 그리고 학교의 인종 분리
8장 어둠 속에서 배우기
사회 계급으로서 백인, 그리고 남성
개인화된 기준으로 백인성 구성하기
백인성, 섹슈얼리티, 여성성
백인성과 지적 지배에 대한 저항
지적 지배에 저항하기: 백인 저자와 흑인 독자
결론
9장 과거를 돌아보며, 미래를 내다보며
해석할 권위를 확대하기
다중적 정체성 대면하기
대학 차원의 현상 유지와 변화
고등교육의 현재와 새로운 세대의 페미니스트
미주
참고 문헌
찾아보기
책속으로
우리 연구의 핵심은 모든 여성, 유색인종 남성, 그 밖에 이제까지 학계가 간과하거나 하찮게 여겼던 모든 부류의 사람들의 역사, 경험, 열망 등을 연구함으로써 어떻게 페미니스트 교수자들과 페미니스트 학생들이 되고자 하는 “뭔가 다른 존재”가 만들어지는지 밝혀내는 일이었다. 이 책에서 우리가 몰두했던 작업은 그런 사람들의 관점이 밖으로 드러나도록 이끌어 내는 것, 또 그런 관점이 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지식의 사회적 구성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밝히는 것이었다.
– 2쪽
애리조나대학교 정년 보장 교수의 90퍼센트 이상이 남성이었고, 남자 교수들은 “‘능력주의(meritocracy)’의 후견인이자 수혜자라는 지위”를 누리면서 교육과정 개발이나 지식 구성 요소에 대한 합의 과정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 50쪽
여성의 지식이 해석의 세계로 들어갈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페미니스트의 교실은 여성의 삶에서 나온 새로운 통찰력을 풍부하게 해 준다. 우리는 첫째로 페미니스트 교수자들이 연구 주제와 테마의 범위를 확장하고 전통적인 자료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는 방법을 택함으로써 학문적 지식의 정의를 바꿔놓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둘째로는 전문성이 새롭게 분배되고 권위의 원천이 확장되는 것을 보았다. 지식은 오로지 학술적 훈련을 받은 사람들, 전문가, 교수자들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학생을 비롯해 모든 사회 구성원에 의해서도 만들어질 수 있다.
– 95쪽
“여학생들은 뒤에 앉아만 있고 남학생들이 수업을 장악하게끔 내버려 두는 것을 지켜보면 진짜 재미있어요. 제 얘기는, 우리가 페미니스트 이론에 대해서 얘기하는 중인데 그 대화를 남자들이 장악하게 놔뒀다는 뜻이에요.”
– 168쪽
“만일 주관적인 경험에 대한 페미니스트 이론을 기초로 삼으면서 다양성을 포용하지 않는다면 … 배타적인 관점 하나로 끝나고 말 겁니다. … 결국에는 잘못된 ‘우리’로 끝날 거예요. 어떤 사람들의 주관성은 완전히 배제해 버리는 것으로 말이지요.”
– 179쪽
“주류 문화에서 통용되는 정치적 언어를 배우는 것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어요. 주류 문화의 언어를 배워야 핍박받는 집단으로서 자기 자신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일단 그 언어나 그것으로 의사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나서 자기 자신의 언어, 자신의 정체성, 자신의 문화로 돌아가는 게 필수예요. … 한편에서는 주류 문화의 언어로부터 자율적인 상태가 되어 정체성을 형성하고 재평가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그 언어로 의사소통 가능한 상태여야 하는 거예요.”
– 182쪽
벅슨 교수는 가르치는 일에 페미니즘이 미친 영향을 깊이 성찰하고 이렇게 말했다. “일단 시작하고 나면 당신은 끝없이 나아갈 것이고, 이제까지 가르쳤던 모든 것, 이제까지 배운 모든 것, 스스로 모델로 삼아 온 모든 것에 대해 얼마나 큰 갈등을 느낄지 알 수 없습니다.”
– 214쪽
교수자가 학생들에게 권위를 부여하고자 노력할 때, 그 과정에서 ‘인종, 계급, 문화에 기반을 둔 지배와 복종의 사회적 위계질서’가 재생산될 위험 부담이 있다. 달리 노력하지 않고 부전승으로 지배 집단에 들어간 학생들을 다른 학생들에 대한 권위자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 263쪽
페미니스트의 교실은 학습자와 교수자가 상호 합의해서 권위를 공유하는 상황을 만듦으로써 배움의 여러 원천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 주고, 이는 전통적인 ‘일련의 지식이나 철학’에 의해 억압되었거나 분열되었던 ‘자아들’이 새로운 해석들을 형성할 수 있게 해 준다.
– 266쪽
웨이드게일즈 교수의 수업에서 이뤄진 토론은 교실이 ‘타자’를 다루는 법과 그것을 교육하는 법을 분석할 수 있는 별개의 독립된 실험실이 아니라는 점, 오히려 사회관계의 그물망 자체가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 장이라는 점을 무엇보다도 뚜렷하게 깨닫게 해 주었다.
– 290쪽
전통 학문은 특권을 가진 남성들의 이야기를 인간 경험의 기본으로 만들어 놓고, 여성들의 이야기는 특별한 예외로 만들어 왔다. 그리고 모든 것을 포괄하는 보편적 이론을 찾는 꾸준한 시도 자체가 이런 구분을 영구히 지속하게 만들었다.
– 343쪽
교실은 지배 문화의 이데올로기적 틀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주입하기도 하지만, 그런 틀을 폭로하고 조사하는 실험적 공간을 보호하는 곳이기도 하다. 한 가지 희망은 학생들(그리고 교수자들)이 특정 이슈나 맥락에서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연구 주제로 삼으면서 서로에게 권위자가 되어 주는 것이다.
– 39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