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책은 서구 문명의 도전이라는 시대 상황에서 낡은 전통의 틀에 안주하면서 정체된 불교를 어떻게 개혁할 것이며,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담은 것이다.
한용운은 1, 2장에서, 불교는 미신이 아니라 종교적, 철학적 성질을 갖고 있으며, 불교가 표방하는 평등과 구세의 이념은 문명의 시대에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이어 3∼15장에서는 불교계의 구체적인 개혁 방안을 제시한다. 승려에 대한 교육, 사원의 위치, 주지 선거법 등을 논하는 한편, 염불당을 폐지하고 각종 소회를 철폐할 것, 의식을 간소화할 것 등을 주장한다.
이러한 개혁론의 내용은 문명론의 틀, 곧 미개(야만)-문명이라는 구도가 반영된 것이다. 미개-문명 인식의 연장에서 바라본 한용운의 불교계 비판은 적지 않은 문제점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불교의 유산인 염불당을 폐지하자는 주장, 각종 소회를 철폐하자는 방안, 각종 의식을 간소화하자는 내용 등은 그것이 미신, 곧 미개한 종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일정한 의미는 있지만 결국 전통 불교를 미신이라는 시선에서 바라본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반대로 승려의 교육, 포교, 사원의 위치, 승니결혼론 등은 문명에 적합한 종교라는 방향을 반영한 개혁안이다. 교육과 참선 등에 대한 이해는 문명의 시각, 곧 이성과 근대적 인식이라는 시선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사원의 경제 활동 권장, 사원의 위치, 승려의 결혼 문제 등은 서구 근대문명론을 의식한 불교 근대화 노선이다.
200자평
한용운이 불교계의 개혁과 근대화론에 대한 구상을 체계적으로 저술한 책이다. 조선 불교가 가진 문제점을 직시하고, 불교계를 개혁하기 위한 방책을 다각도로 제시한다. 그가 수용한 근대지(近代知)의 맥락에서, 시인이나 민족운동가가 아닌 승려로서 한용운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다.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 역시 우리에게 깨달음을 준다.
지은이
한용운은 선승으로서 불교계의 개혁과 근대화에 노력했으며, 또한 일제에 저항하는 민족운동가로 활약하는 등 식민지 시기의 불교계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속명은 유천(裕天)이며, 계명은 봉완(奉玩)이다. 만해(萬海)는 법호이고, 용운(龍雲)은 법명이다. 3·1운동에 백용성과 함께 불교계를 대표하는 민족 지도자로서 참여했고, 신간회 중앙집행위원, 초대 경성지회장으로 활동했다. 아울러 일제 말기 지식인 대부분이 변절, 전향할 때도 끝까지 지조를 지켰다.
또한 잡지 ≪불교(佛敎)≫의 편집인, 발행인으로서 불교의 근대화를 위한 언론 활동을 했다. ≪조선 불교 유신론≫ 외에 ≪불교대전≫, ≪십현담주해≫ 등이 대표적인 불교 관련 저술이다. 또한 시 <님의 침묵>을 비롯해 다수의 문학 작품을 남겼다.
옮긴이
조명제는 부산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일본학술진흥회의 초청으로 고마자와대학(駒澤大學) 불교학부에서 2년간 박사 후 과정을 이수했다. 교토대학, 도쿄대학 등에서 연구 활동을 했으며, 현재 신라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전공은 한국 사상사이며, 근래에는 동아시아 근대지의 수용 과정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주요 논저로 ≪고려 후기 간화선 연구≫, <수선사의 선문염송집 편찬과 설두 7부집>, <백암성총의 불전 편찬과 사상적 경향>, <근대불교의 지향과 굴절> 등이 있다.
차례
머리말
서론
1. 불교의 성질을 논함
2. 불교의 주의를 논함
3. 불교의 유신은 마땅히 파괴로부터 시작함을 논함
4. 승려의 교육을 논함
5. 참선을 논함
6. 염불당의 폐지를 논함
7. 포교를 논함
8. 사원의 위치를 논함
9. 불교에서 숭배하는 소회를 논함
10. 불교의 각종 의식을 논함
11. 승려의 인권 회복은 반드시 생산에서 비롯됨을 논함
12. 불교의 미래가 승니의 결혼과 관련됨을 논함
13. 사원 주지의 선거법을 논함
14. 승려의 단결을 논함
15. 사원의 통할을 논함
결론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이 유신론을 써서 스스로 경계하면서, 동시에 이를 승려 동지들에게 알리는 바다. 이 유신론은 문명국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실로 무용지물일 것이다. 그렇지만 조선의 승려가 나아갈 방향을 생각하면 반드시 채택할 만한 것이 조금 있을 것이다.
-8쪽
조선 불교가 유린된 원인은 세력이 부진하기 때문이며, 세력이 부진한 것은 가르침을 포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르침은 종교의 의무이며, 세력이 함께 나아가는 원천이다. 외래 종교가 조선에 들어와 모두 끊임없이 포교를 의무로 삼고 있는데, 누가 종교인의 의무가 스스로 이와 같지 않다고 하겠는가? 본래부터 그렇다고 할 수밖에 없다.
-61쪽
조선 불교의 백 가지 법도가 거론할 만하지 않아 하나도 볼 게 없는데, 그중에서도 재공양(齋供養)의 의식과 제사, 예절 등에 이르러서는 번잡하고 혼란해 질서가 없고, 비열하고 뒤섞여 끝이 없다. 이것을 모두 도깨비의 연극이라고 이름 붙이면 거의 사실에 가까울 듯하니, 지금 말하는 것은 부끄러워 변론도 할 수 없다. 그 나머지 일상 예식도 혼란해서 참된 모습을 잃었으니, 대소 어떤 예식을 막론하고 일체 소탕해 하나의 간결한 예식을 세워 시행하면 충분하다.
-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