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의 기본 골격은 콕토의 극에서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아폴론의 신탁에 따라, 오이디푸스가 아버지 라이오스를 살해하고 어머니 이오카스테와 근친상간을 범하게 되고, 이오카스테는 자살하고 오이디푸스가 스스로 자신의 눈을 자해한다는 줄거리는 소포클레스의 극과 맥을 같이한다. 그럼에도 소포클레스의 극과 비교해 볼 때, 콕토의 고대 비극의 현대화 노력은 다양한 각도에서 진행된 듯 보인다.
콕토의 혁신은 오이디푸스 신화를 해석하는 그의 관점에 있다. 그것은 극의 제목에서부터 드러난다. ‘지옥의 기계(la machine infernale)’는 이중의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인간의 수학적 전멸’을 겨냥하는 운명의 가차 없는 기계와 같은 작동 원리를 내포하고, 다른 하나는 시한폭탄과 같은 폭발적 위험 물질을 일컫는다. 콕토의 오이디푸스는 음험하고 폭력적인 운명의 작동 원리에 의해 필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속절없이 무너진 비극적 영웅의 측면과 함께, 자신의 내적 동기(다시 말해 자기 자신의 인격적, 도덕적, 지적 결핍과 빈곤)로 인해 스스로 파경의 나락으로 뛰어든, 그리고 주변까지도 파탄으로 몰아넣은 시한폭탄의 측면을 겸유하고 있다. 따라서 현대의 오이디푸스는 운명과 신이라는 절대 권력에 의해 희생되는 인간의 나약함과 무력함만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다소나마 실존적 차원에서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이 주어진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200자평
20세기 전반 시인, 소설가, 희곡작가, 에세이스트, 영화감독 등으로 다양한 예술 장르에 발자취를 남긴 장 콕토가 고대 비극 <오이디푸스 왕> 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버전으로 만든 작품이다.
지은이
장 콕토(Jean Cocteau, 1889∼1963)는 시인, 소설가, 희곡작가, 에세이스트, 데생작가, 영화감독으로 20세기 전반부에 실로 다양한 예술 장르에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장르를 넘나드는 화려한 예술적 역량은 한 장르 안에서도 갖가지 시도와 실험으로 다채로운 색채를 보여주고 있다. 희곡 장르만 하더라도, 동시대 예술가들[피카소(Picasso), 마티스(Matisse), 미요(Milhaud), 사티(Satie), 스트라빈스키(Stravinski), 디아길레프(Diaghilev) 등]과 협업하여 초현실주의를 표방하는 발레극, 오페라극(<퍼레이드>, <지붕 위의 황소>)을 시도하였고, 신화를 재해석하여 새로운 버전으로 발표하였으며(<오르페우스>, <지옥의 기계>, <안티고네>),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미학적 수술을 감행하여 새로운 셰익스피어를 선보였고(<로미오와 줄리엣>), 부르주아 연극과 낭만주의 연극, 자연주의 연극(<쌍두 독수리>, <성스런 괴물들>, <무서운 부모들> 등)을 시도하는 등 다양한 연극적 경험들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지칠 줄 모르는 전향과 변신 속에서 콕토가 줄곧 유지한 연극적 신념은 ‘연극에서의 시’를 ‘연극 시’로 환원시키는 것이다. 즉 한 편의 연극을 상징적 이미지들로 치환시키는 작업이다. 이러한 신념은 자연스레 무대 언어에 대한 관심으로 귀결되어, 무대 장식, 의상, 조명, 음악을 통해 무대적 상상력을 구축하려는 의지로 이어진다. 그래서 콕토의 작품 속에서 이들 무대 언어들은 극 행동의 진행 속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고, 극의 의미를 해독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되기도 한다. 그가 전 생애를 통해 보여 준 연극적 예술혼은 당대의 예술가들에게 직간접으로 영향을 끼쳐 현대 연극의 새로운 경향을 구축하는 데 발판을 마련해 준 것으로 보인다.
옮긴이
이선화는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프랑스 소르본대학에서 박사과정(DEA)을 수료하고,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영남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역서로는 ≪핑퐁≫(연극과 인간, 2006), ≪지옥의 기계≫(지식을만드는지식, 2008), ≪현대 프랑스 연극(1940-1990)≫(지식을만드는지식, 2011)이 있고, 공저로는 ≪프랑스 문학과 여성≫(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3), ≪현대 프랑스 문학과 예술≫(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6)이 있다. 논문으로는 <장 콕토의 ‘지옥의 기계’에 나타난 여성적 이미지>, <아르튀르 아다모프, 신경증 환자들의 가족 소설>, <한태숙 ‘서안화차’에 나타난 공간성 연구>, <이오네스코의 셰익스피어 다시 쓰기-‘막베트’를 중심으로>, <장 주네의 ‘하녀들’에 나타난 여성성과 여성적 글쓰기>, <야스미나 레자의 ‘아트’에 나타난 고전적 극작술의 현대적 변용>, <프랑스 현대극에 나타난 다시 쓰기의 미학-메테를링크의 ‘조아젤’과 세제르의 ‘어떤 태풍’을 중심으로> 등 다수가 있다.
차례
헌사·····················3
나오는 사람들·················5
제1막 유령··················11
제2막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의 만남·······57
제3막 신혼 초야···············105
제4막 오이디푸스 왕(17년 뒤)·········149
해설····················171
지은이에 대해················184
옮긴이에 대해················186
책속으로
양치기: 당신은 당신의 부인인 이오카스테와, 삼거리 갈림길에서 당신에게 살해당한 라이오스의 아들이외다. 근친상간에다 친부 살해이지만 신들은 당신을 용서할 겁니다.
오이디푸스: 나는 그래서는 안 될 사람을 죽였고, 그래서는 안 될 여자와 결혼했다. 나는 그래서는 안 될 일들을 계속해 온 것이다. 진실이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