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집≫은 시마자키 도손(島崎藤村)의 자전소설로, 1898년 여름부터 1910년 여름까지 12년 동안 벌어진 일상을 다룬다. 저자의 나이 26세에서 38세까지 고뇌로 점철된 그의 청장년기의 삶을 예술화해서 기록한 것인 만큼, 등장인물은 대부분 실재 인물을 설정하고 단지 이름만 바꾸었다.
작품은 스물여섯 청년 시인 고이즈미 산키치가 누님이 시집간 기소 후쿠시마의 하시모토 집에 놀러 가 여름 한철을 지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산키치의 매형이자 하시모토가의 주인인 다쓰오는 젊었을 때 구가의 중압감에서 벗어나고자 고향을 떠났지만 결국 실패하여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한때 기소 제일의 인재로 주목받았으나 지금은 한낱 범속한 시정인에 불과하다. 그의 아들 쇼타는 산키치보다 세 살 아래로, 주위에서 그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따라서 일찍부터 구가의 중압감이 젊은 쇼타를 숨 막히게 했다. 쇼타도 마침내 아버지의 전철을 밟게 되면서, 흔들림 없이 서생으로 살아가는 젊은 외삼촌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쇼타의 눈에 자유로워 보이는 산키치도 결코 남에게 부러움을 살 정도로 평탄한 삶을 사는 청년은 아니었다. 산키치 역시 구가의 중압감이, 막내인 그의 어깨를 가차 없이 짓눌렀다. 더구나 아직도 존재하는 하시모토가에 비해 고이즈미가는 완전히 유명무실해졌다.
≪집≫은 한편으로는 근대정신과 생활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몰락해 가는 구가(舊家)로 인해 고뇌에 휩싸이는 작가의 체험 속에서 탄생되었다. 영락해 가는 구가로 인한 중압감에는 당사자 외에는 알 수 없는 뼈저린 고통이 감춰져 있다. 작가는 구가를 지켜야 하는 중압감이 인간성에 미치는 악영향을 남김없이 파헤친다. 인재를 범속한 시정인으로 바꿔 버린 그 엄청난 압력은 주인공 산키치의 형들을 불쌍한 희생자로 만들었다. 그들은 어질고 착한 탓에 남에게 이용당하고 실패를 반복한 나머지 퇴폐의 길을 걷게 되었다. 모든 것이 구가의 욕망, 체면이 초래한 비극이다. 개인적인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제도가 초래한 구가의 의식 문제다.
이 외에도 이 작품에는 ‘신(新)’과 ‘구(舊)’의 대조, 남녀평등을 기반으로 하는 부부 관계가 유지되는 새로운 집의 구성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도손이 “내 스스로도 우울한 작품”이라 말한 것처럼, ≪집≫에 깔린 ‘어두움’은 독자를 고통의 늪으로 끌어들인다. 이는 당시 일본이 품고 있던 어두움−전통적 인습과 새로운 시대정신의 상극 간에 생긴 비극이 그대로 투영된 어두움이다. 일본 메이지 사회의 한 단면이 여실히 드러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200자평
자연주의 작가 시마자키 도손의 자전소설이다. 1898년 여름부터 1910년 여름까지 12년 동안, 고뇌로 점철된 자신의 청장년기 삶을 예술화해서 기록했다. 작가는 구가를 지켜야 하는 중압감이 인간성에 미치는 악영향과 당사자가 겪는 뼈저린 고통을 파헤쳤고, 그로 인해 작품에는 당시 일본의 인습과 새로운 시대정신의 상극 간에 생긴 비극이 투영된 어두움이 깔려 있다. 일본 메이지 사회의 단면이 여실히 드러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지은이
시마자키 도손(1872∼1943)의 본명은 시마자키 하루키(島崎春樹)다. 나가노 현(長野縣)에서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열 살이 되던 1881년 봄, 도쿄로 상경해 학교에 다녔다. 이 시기에 서양 문학에 심취하는 한편, 평생 스승으로 존경한 마쓰오 바쇼(松尾芭蕉)나 사이교(西行) 등 일본 문학도 섭렵하며 문학의 꿈을 키웠다. 졸업하던 해에 메이지여학교 교사가 됐다. 이듬해, 시인 기타무라 도코쿠(北村透谷)와 함께 잡지 ≪문학계≫를 창간해 동인으로 극시와 수필을 발표하며 문학가로 나섰다. 1896년 도쿄를 떠나 센다이 도호쿠학원 교사가 됐다. 당시 센다이의 자연을 벗 삼아 시 창작에 전념했다. 시집 ≪새싹집≫은 근대인의 감정과 사고를 대변하는 일본 근대시의 모태가 되었고, 이후 그는 ≪일엽편주≫, ≪여름풀≫을 잇달아 발표해 메이지 낭만주의 시인으로 명성을 떨쳤다. 1901년 마지막 시집 ≪낙매집≫을 끝으로 ‘시에서 산문’으로 전향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일본 문단을 새롭게 장식한 장편 소설 ≪파계≫(1906)를 계기로 도손은 자연주의 소설가로 인정받게 됐다. 곧바로 장편 소설 ≪봄≫(1908)과 ≪집≫(1910)을 잇달아 발표했다. 이후 ≪신생≫(1918)은 넷째 딸의 출산 후유증으로 죽은 부인을 대신해서 집안 살림을 도와주던 조카딸과의 불륜을 소재로 해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1943년 8월 ≪동방의 문≫을 쓰다가 뇌출혈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옮긴이
김남경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 문학을 전공했고 <시마자키 토오송(島崎藤村)의 수필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명지전문대학 일본어과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대표 논문으로는, 산문시에서 수필을 시도한 <시마자키 도손의 <7일간의 한담> 고찰>과 장르 의식의 변화를 살펴본 <시마자키 도손의 <수채화가>론>, 그리고 만년의 감상 수필에 나타난 아포리즘을 분석한 <시마자키 도손의 인생철학>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 ≪지쿠마 강 스케치≫가 있다.
차례
집
해설
지은이에 대해서
옮긴이에 대해서
책속으로
그는 결혼한 후의 자신이, 결혼하기 전의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에 아연해졌다. 유서 깊은 큰 절에 가면 안내하는 어린 중이 오래된 벽에 걸린 그림 앞으로 참배객을 데리고 가 승려의 일생을 설명해 주는 것처럼, 산키치 육체에서 일어나는 고통은 여러 기억 속으로 그의 마음을 이끌어 갔다. 결혼한 해에는 이런 일이 있었고, 3년째는 저런 일이 있었지 하며 평소 잊고 있던 것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속삭이며 들려줬다. 그것은 뛰어난 승려의 일대기와는 전혀 다르다. 모두 여자와 관련된 마음의 그림이다. 감추고 싶은 기억뿐이다. 산키치는 스스로에게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353쪽
산키치 자신도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오슌과 마주 보면 자신도 모르게 도덕가 같은 어조로 변하는 게 심히 부끄러웠다. 그리고 말하는 것이 왠지 위선처럼 자기 귀에 울리는 것 같아 괴로웠다. 자기 스스로도 그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오슌의 결혼에 관해서도, 조금 더 여유 있는 마음으로 이렇게 하면 좋을지 저렇게 하면 좋을지 이런저런 말도 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묘하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단지… 작은어머니가 집에 안 계실 때 작은아버지가 제 손을 잡았어요−라고 남들에게 말할 것만 같아 오슌의 얼굴을 보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떤 도움되는 말을 해 준다 한들, 모든 게 이 한마디로 비난당할 것만 같았다. 산키치는 걱정하며 마련해 둔 돈을 꺼냈다. 괴로워하는 짐승 같은 표정으로 그것을 조카딸 앞에 내놓았다.
−4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