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참령 바바라>는 백만장자의 딸이자 백작의 손녀로 사회적 부와 지위를 모두 타고났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구세군 일원이 되어 빈민 구제에 앞장 서는 여성 바바라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그녀의 이상은 죄지은 이웃들을 회개의 길로 인도해 영혼을 구제하는 데 있다. 하지만 절도와 폭력, 음주와 도박의 죄악이 ‘빈곤’ 가운데서 더욱 만연한 현실 앞에 바바라는 딜레마에 빠진다. 이웃의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선 이들을 먼저 가난에서 구제해야 하고, 가난을 물리치기 위해선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며, 막대한 자본은 ‘전쟁’이라는 크나큰 죄악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경도되어 직접 좌파 단체인 페이비언 협회를 설립하기도 했던 버나드 쇼는 극 중 언더샤프트에 자신의 사회, 정치적 관점을 투영하며 참령 바바라의 이상주의를 거세게 뒤흔든다. 언더샤프트의 말대로라면 “가난이야말로 가장 큰 죄악”이다. 죄에 빠진 영혼을 구하기 위해 필요한 건 기도가 아니라 풍족하게 먹을 음식과 안전한 집이다. 그리고 군수업자 언더샤프트에겐 모두에게 음식과 잘 곳을 제공할 수 있을 만큼 막대한 재산이 있다. 끔찍한 전쟁으로 벌어들인 돈이다. 언더샤프트가 깨우쳐 준 무자비한 현실 앞에 바바라의 신념은 속수무책 무너지기 시작한다.
<참령 바바라>는 선과 악을 구분하는 기준을 흔들고 종교와 낡은 도덕 관념에 교묘히 가려져 있던 현대사회의 속성을 보여 준다. 비록 현실과 타협해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영혼의 고귀함과 인간 존엄을 믿고 바라는 우리 모두에게 <참령 바바라>에 비친 쇼의 냉소주의는 더욱 차갑게 와닿는다.
이 책에는 작품 전체 분량에 맞먹는 길고 긴 서문이 실려 있다. <참령 바바라>를 향한, 나아가 쇼를 향한 세간의 비판과 오해를 잠재우기 위한 글이지만 여기서 우리는 아일랜드 극작가로서 쇼의 뿌리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쇼는 자신을 굳이 유럽의 사상가, 작가와 연결지으려는 비평가들의 시도를 열거한 뒤 자신의 뿌리가 유럽 대륙이 아닌 아일랜드에 있음을 밝힌다. 자신에게 붙는 ‘입센주의’라는 수식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이어 후반부엔 <참령 바바라>의 사상적 배경이 되는 유물론 관점을 직접 강설한다. 작품에 대한 작가 자신의 해설인 셈이다. 쇼와 그 작품을 이해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텍스트다.
비평가, 정치적 활동가, 논객으로서 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그러나 극작가로서 그에 대한 평가는 확고하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그것을 깨부수고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는 의미에서 영문학사상 그의 서열은 셰익스피어 다음이다.
200자평
“현존하는 극작가 중 가장 뛰어난 사람은 누구인가?” 한 기자의 물음에 쇼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그야 물론 나지.” 그 자신만만함에는 근거가 있었다. 1925년 스위스 한림원은 “시적이고 아름다운 문체, 재기발랄한 풍자로 이상주의와 인도주의 사이에 놓인 그의 작품을 기리며” 쇼에게 노벨상을 수여했다. <참령 바바라>는 쇼의 작가적 역량이 가장 원숙했던 시기에 발표되었다. 현실과 이상, 신구 세대의 갈등을 고도의 상징을 통해 보여 준다.
지은이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는 1856년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태어난 극작가이자 비평가, 그리고 활발한 정치적 활동가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부모는 런던으로 이주했으나 정작 그는 초등학교 졸업 수준의 교육밖에 받지 못했다. 그의 놀라운 박식함은 대부분 독학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서른 즈음에 그는 이미 연극과 음악 분야에서 인정받는 비평가가 되었으며, 카를 마르크스에 심취해 점진적 사회주의자가 된 뒤 영국 페이비언 소사이어티의 일원이 되어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그는 60여 편의 극작품을 썼는데, 사회 현실에 대한 풍자와 역사적 비유로 20세기를 대표하는 영국의 극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우생학과 알파벳 개혁을 지지했고 백신 접종과 조직적 종교를 반대했으며, 일차세계대전 때는 양측을 모두 비난하여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1925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1938년에는 직접 대표작 ≪피그말리온(Pygmalion)≫의 영화 대본을 써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1964년에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라는 뮤지컬로 대중에게 많이 알려졌다. 한편 그의 정치·사회적 견해는 점차 과격해졌고 독재자인 무솔리니와 스탈린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그는 1950년 94세의 나이로 죽기 직전까지 활발한 저술 활동을 했으며 국가가 수여하는 훈장 등 모든 상을 거절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쇼에 대한 학자들과 비평가들의 평가는 매우 다양한 것이 사실이지만, 극작가로서 그의 위치는 확고하며, 종종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위대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의 이름을 딴 쇼비언(Shavian)이라는 어휘가 사전에 등재될 정도로 후대에 미친 그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옮긴이
임성균은 서강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캐나다 사이먼 프레이저대학교에서 영문학 석사, 미국 루이지애나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숙명여자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한국밀턴학회와 한국셰익스피어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학술 논문 55 편과 저술(번역 포함) 16권을 발표했으며, 2012년에는 에드먼드 스펜서의 ≪선녀여왕≫을 완역했다.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부 명예교수다.
차례
서문 : 비평가들을 위한 응급조치
나오는 사람들
1막
2막
3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백만장자인 언더샤프트를 통해 나는 우리 모두가 끔찍해하고 부정하지만 거절할 수 없는 자연적 진실에 대해 지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한 인물을 그렸다. 그 진실이란 바로 가난이야말로 가장 큰 죄악이고 가장 나쁜 범죄이기에, 우리의 최우선 과제, 즉 이를 위해 다른 모든 고려 사항이 희생되어야 하는 과제는 가난해지지 않는 것임을 아는 것이다. “가난하지만 정직하다”거나 “존경스런 가난뱅이” 또는 이와 비슷한 말들은 “주정뱅이지만 귀엽다”거나 “사기꾼이지만 저녁 식사 후에 즐거운 대화 상대”라거나 “멋진 범죄자” 같은 표현처럼 비도덕적이고 견딜 수 없는 것들이다. 우리에게 가장 위험한 가난의 위협이 모든 사람들의 머리 위를 맴돌고 있거나, 소위 폭력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켜 주는 것이 오로지 경찰이 우연히 주변에 있다는 사실 뿐이라면, 문명의 가장 큰 허상인 안전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18쪽, ‘서문’ 중에서
바바라 : 멈추세요. (언더샤프트는 쓰기를 멈춘다. 모두가 놀라서 그녀를 돌아본다.) 베인스 부인, 정말 이 돈을 받으실 건가요?
베인스 부인 : (깜짝 놀라며) 왜 안 받아요?
바바라 : 왜 안 받냐니요! 제 아버지가 뭐 하는 분인지 아세요? 색스먼담 경이 위스키 만드는 봇저라는 걸 잊으셨어요? 그가 봇저 위스키라고 쓴 불꽃 글자를 하늘에 쓰는 걸 막아 달라고, 그래서 강둑에 있는 불쌍한 술주정뱅이들이 하늘에 쓰인 사악한 신호 때문에 죽음의 갈증을 느끼지 않고 잠에서 깰 수 있게 해 달라고 우리가 시의회에 얼마나 간절히 탄원했는지 기억하세요? 아시나요, 제가 여기서 싸워야 했던 최악의 상대는 악마가 아니라, 바로 그 봇저, 봇저, 봇저, 그의 위스키와 그의 양조장과 그의 직영 술집이었다는 걸? 우리 숙소를 그의 또 다른 직영 술집으로 만들고 저보고 지키라고 하실 건가요?
빌 : 그건 골 때리는 썩은 위스키이기도 하지.
베인스 부인 : 사랑하는 바바라. 색스먼담 경도 우리 중 어느 누구와 마찬가지로 구원받아야 할 영혼이 있어요. 하나님이 그의 돈을 선하게 쓸 방법을 찾았다면 우리가 기도의 응답을 반대하고 나서야만 할까요?
-208-2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