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수필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수필을 대표하는 주요 수필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최신해는 1919년 경상남도 울산 병영에서 최현배(崔鉉培)와 어머니 이장연(李長連)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경기고보와 세브란스의과대학을 거쳐 일본의 야마구치의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에 우리나라 최초의 정신병원인 ‘청량리 뇌병원’을 설립하고 원장으로 재직한 정신과 의사이자 수필가이다. 그는 1943년 ≪조광≫지에 <탐라 기행>을 발표하면서 수필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대동아 전쟁이 막바지에 치닫던 당시에 ≪조광≫지는 국문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유일한 잡지였다. 1919년생인 최신해는 모국어 대신 일본어를 배우고 해방 이후에 외국어 배우듯이 모국어를 학습하는 고충을 안고 있는 소위 “이중 언어 세대”에 속한다. 그러나 최신해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드물게도, “자기의 생각을 한국말로 적을 수 있는 사람”으로서 ‘중간 독물(中間讀物)’을 써 달라는 잡지사의 청탁을 받고 글을 쓰게 되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연산군의 마지막 소원≫ 머리말).
아버지 최현배 선생은 최신해가 수필가가 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의학을 하려다가 여의치 않아서, 일본으로 건너가서 교육학·철학 등으로 시작해 한글학에 종착역을 발견한 부친(최현배 씨)과, 문학과 사상에 관한 책만 탐독하던 사형(최영해 씨)의 두 사람이 나의 인생관 형성에 끼쳐 준 무언의 영향력은 컸을 것이다”(<외인부대의 마당에서>)라고 썼다. 저명한 정신과 의사면서도 1959년 첫 수필집 ≪심야의 해바라기≫를 낸 이래 ≪문고판 인생≫, ≪내일은 해가 뜬다≫, ≪제3의 신≫, ≪태양은 멀다≫, ≪외인부대의 마당≫, ≪의학 속의 신화≫, ≪연산군의 마지막 소원≫ 등 무려 33여 권에 달하는 수필집(선집 포함)을 낼 정도로 그는 의사로서의 삶 못지않게 문학인으로서의 삶에 큰 애정을 가지고 수필에 열정을 바친 작가였다. 이러한 삶의 궤적은 아버지와 형으로부터 이어 내려온 인문학적인 열정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하겠다.
≪심야의 해바라기≫나 ≪문고판 인생≫을 위시한 수많은 작품집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수필은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아 왔다. 정신과 의사를 하면서 만난 다양한 환자들의 삶을 수필로 써서 독자들의 흥미를 끄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수필이 “생각해 보면 내 글의 출발은 순수 수필이 아니라, 중간 독물”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는 그의 수필이 예술성이 강한 서정 수필적 성격보다는 인생의 보편적인 문제나 사회 현실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지적인 수필로서의 특성을 지니는 동시에, 의학적 식견을 알기 쉬운 언어로 전달해 주는 대중적인 성격도 지니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는 우리나라 의학 에세이의 첫 문을 연 수필가로서, 수필을 진정한 의미의 대중적 장르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했다. 즉, 수필 속에 풍부한 의학적 지식을 녹여내어 수필을 정통적인 문학인만의 전유물에서 전문적인 에세이스트의 장으로 확대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200자평
외솔 최현배의 아들로도 유명한 최신해는 정신과 의사이자 수필가로 활동했다. 그는 인간을 마치 한 편의 책을 읽듯이 관찰· 분석하고 서사를 입혀 우리 앞에 내보인다. 그의 글은 ‘이렇게 불행하면서도, 자기 모순적이지만 동정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 아니겠는가?’라고 독자에게 묻는 듯하다. 그가 정신 의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인간이야말로, 영원히 해독되지 않은 채로 서가에 꽂힌 명작처럼, 이해 불가하면서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유일한 존재가 아닐까.
지은이
최신해는 1919년 4월 경남 울산에서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崔鉉培)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926년 부친이 연희전문학교 교장으로 취임하자 서울로 이주한 후 1937년 경성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교)를 졸업하고 1941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현 연세대 의대)를 졸업했다. 1942∼1945년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 경성대학 의학부 신경정신과에서 연구 생활을 했다. 1943년에는 당시 유일한 한국어 잡지였던 ≪조광≫지에 <탐라 기행>을 발표하면서 수필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1945년에 이혜자(李惠子) 여사와 결혼했으며 부친 최현배 선생은 함흥 형무소에서 풀려나왔다. 그해 청량리 뇌병원을 설립하고 원장으로 취임했다. 1951년 한국 전쟁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하고 1952년에는 金星 花郞 훈장을 받았다. 1956년 미국 국무성 초청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학교 부속 매사추세츠 종합 병원에서 1년의 연수 과정을 거쳤으며 1961년 일본 야마구치대학교 의과대학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45∼1956년에 걸쳐 연세대학교, 서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한양대학교 등에 외래교수로 출강했다. 1965년에는 의료 문인 단체인 ‘수석회’와 ‘박달회’를 만들어 회장으로 취임했으며 1971년에는 대한 신경정신 의학회 27대 회장을 지냈다. 1973년에는 의료 문화상을 수상하고, 1977년에는 대통령 표창장, 1984년에는 국민 포장을 받았다. 1991년 3월 24일 작고했고, 화랑 무공 훈장을 수여받았다.
1961년에 나온 첫 수필집 ≪심야의 해바라기≫는 3만 부 이상 팔렸고, 1975년에 다른 글들을 보충해서 재출간되었다. 1963년 출판된 두 번째 수필집 ≪문고판 인생≫도 그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여기에 실린 수필은 정신 분석학적 입장에서 인간의 무의식과 정신적 고뇌와 갈등, 현대인의 문명에 따른 병적인 노이로제 등을 날카롭게 분석해 쉽고 재미있게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밖에 ≪제3의 신≫(1964), ≪내일은 해가 뜬다≫(1965), ≪외인부대의 마당≫(1966), ≪태양은 멀다≫(1968), ≪물가에 앉은 철학≫(1977), ≪국보 찾아 10만 리≫(1985)(부인 이혜자 여사와 공저) 등 33권의 수필집을 간행했으며 의학 관련 저서 ≪노이로제의 치료≫(1965), ≪의학 속의 신화≫(1970) 등을 간행했다. 2011년 시사출판에서 ≪최신해 수필 전집≫(전9권)이 발간되었다.
엮은이
김경인은 1972년 서울 출생이다. 가톨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 국어국문학과에서 석·박사를 받았다. 2001년 ≪문예중앙≫ 시부문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시집으로는 ≪한밤의 퀼트≫, ≪얘들아, 모든 이름을 사랑해≫가 있다. 현재 한양대학교 에리카캠퍼스 창의융합교육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차례
三月의 낚시
文庫版 人生
慶尙道 대구알젓
外人部隊의 마당에서
나의 중학 시절
청량리 뇌병원 야화
태양은 멀다
흑자 시대(黑字時代)의 수필
내 생애 최고의 날
붕어의 시각
내일은 해가 뜬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유언
여정旅情
耽羅 紀行
봄 잔디같이 부드러운 손길
兄을 죽인 정신병자
深夜의 해바라기
낚시의 精神 分析
돌아온 도장
三十 年이란 歲月
외디프스 컴프렉스(Oedipus Complex)
한국인의 행복
나의 座右銘
군밤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人生은 책이런가, 책은 人生이런가.
인생도 책과 같아, 큰 것, 작은 것, 두꺼운 것, 얇은 것, 가지각색인 모양이다.
향수로 목욕을 하고, 다이어를 지고 다니는 ‘豪華版’ 인생이 있는가 하면, 형무소 內 死刑囚 구치감에는 形 執行만 기다리는 ‘限定版’ 人生도 있다.
남의 學說을 자기 學說인 양 고대로 떠들어 대는 ‘海賊版’ 人生이 있는가 하면, 남의 說에 조금 色칠만 하는 ‘飜案版’ 人生도 있다.
양복만을 입는 ‘洋裝版’ 인생은 明洞에 흐르지만, 대다수의 국민은 한복을 좋아하니 ‘韓裝版’인가 보다.
살아 있는 ‘古典’ 人生도 있고, 改心했노라는 ‘訂正版’ 인생도 활개를 치며 돌아다닌다. 내 몸을 사 주시오 하는 ‘덤핑版’이 있는 반면에는, 비싸게 구는 ‘稀罕本’도 눈에 뜨인다.
平生 대통령을 해 먹어야겠다는 ‘重版’ 人生도 있었고, 그런 건 一生에 한 번 하면 足하지 않은가 하는 ‘初版’主義 人生도 있는 모양이다.
甲이나 乙이나 구별 없이 執權만 하면 아양을 떨고 꼬리치는 ‘大衆廉價版’도 있고, 무엇이든지 아는 척하는 百科事典식 ‘全集’ 인간도 있다.
속셈을 보여 주지 않는 ‘케이스入’도 있지만, 보다도 볼란서式 ‘假綴本’에 더 구수한 人間味를 느낀다.
‘出版文化賞’을 줄 만한 인생이 있는 반면에는, 차라리 出版되지 않았더라면 하는 人間이 더 많으니 탈이다. 애교 있는 ‘誤植’투성이 人間은 재미가 있고, 틀린 점을 지적하면
“아 참 그렇군요.”
하고 卽席에서 고치는 사람은, 마치 ‘誤植·亂丁’은 언제나 바꿔 주겠다는 ‘良心版’ 같기도 하다.
<文庫版 人生>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