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우리나라 고전소설사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나,
아직까지 소개된 적 없는 《칠미인연유기》를 처음으로 소개한다.
중국이 아닌 우리나라를 이야기하는 이상소설
《칠미인연유기》는 주인공 장옥선이 영웅적 활약을 벌이면서 천정배필인 일곱 미인을 만나 아름다운 인연을 맺고 인간으로서 이루기 힘든 부귀영화를 누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편으로는 주인공의 영웅적인 투쟁과, 또 한편으로는 남녀 간의 사랑을 이루어 가는 과정을 서로 균형 있게 서술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중세인들이 꿈꾸었던 이상적인 삶을 형상화한다.
이처럼 남자 주인공이 일부다처(一夫多妻)로 지극한 복락을 누리는 이상적인 삶을 그린 일군의 소설들을 우리는 ‘이상소설(理想小說)’이라고 부른다. 이상소설을 대표하는 작품으로는 《구운몽》이 있으며, 《육미당기》와 《옥루몽》 등의 작품이 이러한 유형에 속한다. 특히 《칠미인연유기》는 《구운몽》과의 유사성이 두드러진다. 양소유가 팔선녀와 인연을 맺어 복락을 누리는 것처럼, 《칠미인연유기》의 장옥선은 일곱 명의 미인과 인연을 맺어 부귀영화를 누린다.
그러나 《칠미인연유기》는 《구운몽》과 달리 중국(당나라)이 아닌 우리나라, 구체적으로는 고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하다. 《구운몽》을 포함한 대부분의 이상소설이 중국을 공간 배경으로 설정한 것이 많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칠미인연유기》가 보여 준 새로운 시도는 매우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적 현실과 풍토에 더욱 근접한 ‘우리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고전소설의 완결된 서술 체제
《칠미인연유기》는 내용뿐만 아니라 서술 체제에서도 매우 특별하다. 그 첫째가 ‘등장인물 소개란’이다. 《칠미인연유기》는 두 면에 걸친 등장인물 소개로 시작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19명의 주요한 인물들을 밝히고 있으며, 특히 뒷면에는 이른바 ‘칠미인(七美人, 일곱 미인)’을 따로 소개하고 있다. 현대의 소설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체제이지만 우리나라의 고전소설 가운데 《칠미인연유기》처럼 등장인물 소개로 시작하는 작품은 매우 드물다. 두 번째는 작품을 창작하게 된 동기에 대해 매우 자세한 ‘서문’을 수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문은 보통 한문소설에 잘 나타나는 특징인데 국문 소설 가운데 서문을 수록하고 있는 작품은 《칠미인연유기》 이외에 찾아보기 어렵다. 남자 주인공 장옥선이 인간으로서 오복을 온전히 누리고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인생을 살았다고 평하는 서문은 작가가 어떠한 의식으로 《칠미인연유기》를 창작했는지 살필 수 있는 흥미로운 텍스트다. 마지막 특징은 ‘필사기(筆寫記)’다. 필사기는 작품을 필사한 사람이 필사를 마친 날과, 필사의 경위에 대해 간단히 밝힌 글을 말한다. 특히 필사기 마지막에 있는 “빌려다 보신 후 곧 임자에게로 돌려주십시오”라는 기록을 통해 이 책이 세책점(貰冊店, 예전에 값을 받고 책을 빌려주던 책방)에서 유통됐던 작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등장인물 소개-서문-본문-필사기를 온전히 갖춘 작품은 매우 드물다. 《칠미인연유기》는 서술 체제 면에서도 조선 후기 필사본 소설의 완결된 형태를 매우 잘 보여 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200자평
우리나라 고전소설 《칠미인연유기》를 초역으로 소개한다. 옮긴이 허원기 교수가 유일본을 소장하고 있는 이 소설은 주인공 장옥선이 영웅적 활약을 벌이면서 천정배필인 일곱 미인을 만나 아름다운 인연을 맺고 인간으로서는 이루기 힘든 부귀영화를 누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주인공의 영웅적인 투쟁과, 남녀 간의 사랑을 이루어 가는 과정을 균형 있게 서술하며 중세인들이 꿈꾸었던 이상적인 삶을 형상화한다. ‘이상소설(理想小說)’이라는 점에서 《구운몽》과 유사하지만, 중국 당나라를 배경으로 한 《구운몽》과 달리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매우 특별하다.
옮긴이
허원기(許元基)는 남한강이 보이는 충청북도 충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건국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한국 고전문학을 공부했다. 조동선의 이류중행 사상과 관련해 《삼국유사》의 구도 이야기를 분석한 논문을 써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신명풀이로 판소리의 서사구조와 미의식을 분석한 논문을 써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오랫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의 연구원으로 왕실 고문헌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일을 했으며, 한동안 다산학술문화재단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다산학사전》 편찬 작업을 담당했다.
현재는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부에 재직하며 고전 서사문학과 스토리텔링을 연구하며 가르치고 있다. 우리 서사문학의 본령을 찾아서 그 사상과 미학을 탐구하는 작업을 줄곧 수행해 왔으며 이와 관련된 논문들을 다수 발표했다. 이와 함께, 《판소리의 신명풀이 미학》, 《고전서사문학의 사상과 미학》, 《고전산문자료연구》, 《고전문학과 인성론》, 《고전서사문학의 계보》, 《우리 고전의 서사문법》, 《충주, 옛 문학과 민속의 풍경》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다. 한편으로 《낙성비룡》, 《정수정전》, 《홍백화전》, 《화문록》, 《영이록》, 《양문충의록》, 조선 시대 한글간찰 등 여러 고전 작품의 번역 주석 작업을 수행했다.
동서의 문사철을 융합하는 인문고전학의 길을 탐색하며, 그 융합의 지점에서 서사적 이야기를 발견했다. 틈틈이 헬라어, 라틴어, 산스크리트어와 같은 고전어들을 공부하며 보편적 융합학문으로서 이야기 인문학의 길을 조심스럽게 탐색하고 있다. 때로는 강호의 선지식을 찾아다니면서 구도 이야기를 수집하기도 한다. 이야기의 사상사와 글쓰기의 사상사를 정리하는 것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고 있다.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부분 대체하게 될 새로운 시대에는, 대중이 모두 고전어로 성인의 말씀을 읽으며 저마다 심신을 수양해, 대중이 모두 성인이 되는 시대가 와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차례
등장인물
칠미인연유기
제1장 기러기 자리에서 영화로움을 하례하고, 곰의 꿈이 좋은 징조임을 점치다
제2장 흥이 다하니 슬픔이 오고, 어진 신하가 귀양을 가다
제3장 호방에 높이 이름을 걸고, 여피로 또 인연을 만나다
제4장 세 번 싸워 도적의 진을 격파하고, 오야에 또 미인을 얻다
제5장 한 합에 도적의 당류를 멸하고, 8년 만에 비로소 부친을 뵈도다
제6장 또한 공주를 상으로 내리고, 일곱 미인과 크게 연희하다
원문
칠미인연유기 권지일
칠미인연유기 권지이
칠미인연유기 권지삼
해설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대 고려조의 삼군대원수 장옥선은 만고의 역적 주육, 철강에게 글을 지어 보내노라. 난신적자가 어느 때에 없겠는가마는 너희 놈들은 천은을 망극하게 입어 직위가 높은 놈들이다. 밤낮을 생각해도 천은 갚을 겨를이 없을 것이거늘 무도한 너희 놈이 감히 불측한 마음을 먹어 황제의 자리를 도모하고자 하도다. 이제 너의 죄상을 헤아리건대 다섯 가지가 있다. 네가 천은을 무겁게 입어 갚기는 고사하고 도리어 반역할 마음을 먹으니 그 죄 하나요, 천하의 군사를 모아 임금을 겁박해 도적에게 항복하라 해 종묘사직이 위태하고 백성이 도탄에 빠지니 그 죄 두 가지요, 네가 뜻을 방자히 해 무죄한 충신들을 먼 곳으로 쫓으니 그 죄 세 가지요, 네가 철강과 함께 도모해 군사를 보내어 우리 모자를 해하고자 하니 그 죄 네 가지요, 이제 내가 황제의 명을 받아 군사를 거느리고 이 땅에 임했는데도 네가 빨리 나와 항복하지 아니하니 그 죄 다섯 가지다. 너의 한 몸에 천지간의 다섯 가지 큰 죄를 입고서 어찌 살기를 바라겠는가? 빨리 나와 목숨을 바쳐라. 내 이미 상방참마검(尙方斬魔劍)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노라.
주육이 글을 보고 노기가 하늘을 찌를 듯해 말하기를,
“요망한 아이놈이 감히 어른을 욕하니 그 죄상은 만 번 죽어도 아깝지 않으리라.”
하고 곧 황렵을 불러 말했다.
“내 이제 개돼지 같은 아이 놈에게 더할 것 없는 욕을 당했으니 장군은 급히 나가 옥선의 머리를 창끝에 꽂아 설욕하라.”
– 제4장 〈세번 싸워 도적의 진을 격파하고, 오야에 또 미인을 얻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