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책에서는 카프카의 작품 중 카프카의 문학 세계를 잘 보여 줄 수 있는 다섯 단편을 골라 실었다.
첫 작품 <선고(Das Urteil)>는 카프카의 문학 역정에서 첫 ‘돌파구’에 해당하는 소설로 호평받았을 뿐 아니라 이후 카프카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요소들이 들어 있어 가장 많이 읽히면서 아울러 가장 다양한 해석이 시도되는 소설이다. 둘째 작품 <변신(Die Verwandlung)>은 카프카가 시민사회와 글쓰기 사이에서 갈등하며 실존적인 위기를 겪었던 1912년 11월에 쓰인 소설로 카프카의 대표적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셋째 작품 <시골 의사(Ein Landarzt)>와 넷째 작품 <학술원에 보내는 보고서(Ein Bericht für eine Akademie)>는 1917년에 쓰인 것으로 모두 중기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다섯째 작품 <단식 광대(Ein Hungerkünstler)>는 1922년, 그러니까 말기에 쓰인 소설이다.
시민적인 삶에 안주하지 못하고 이 세상에서 불편을 느낀 카프카가 남긴 작품들은 독자들을 사로잡으면서도 쉽게 접근을 허용하지 않아 흔히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1945년 이후에 나온 엄청난 분량의 연구서들과 저작들 그리고 다양한 방향에서 이루어진 해석 시도들이 이를 말해 준다. 이러한 난해함은 어쩌면 지극히 평범하고 구체적인 묘사에도 불구하고 서술된 내용이 일반적으로 일상적이고 경험적인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 같은 인상, 다시 말해 서술의 냉철함과 서술된 내용 사이의 간극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카프카의 작품들은 따라서 개방적이면서 동시에 폐쇄적이다. 여기에는 20세기의 환상성이라고 불릴 수 있는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요소들이 내재되어 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마치 꿈의 세계를 헤매는 것 같은 착각을 갖게 하는 것도 한몫을 한다. 이에 따라 그의 작품에 대해 작품 내재적인 해석 외에도 정신분석학적, 철학적(실존주의적), 사회학적, 전기적, 종교적 해석 등 다양한 해석이 시도되어 왔다. 또 유대주의가 끼친 영향도 카프카의 작품 이해에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어쩌면 카뮈나 아도르노가 지적했듯이 한편으로 해석을 촉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해석을 거부하는 매력이 바로 카프카 작품의 위대함일 수 있다.
작품에 나타난 세계가 독자의 눈에는 비현실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카프카로서는 자신이 보는 ‘현실’을 기록한 것이다. ‘비현실’로 보이는 세계는 실은 카프카가 독자들에게 ‘진짜 현실’을 볼 수 있게 제시한 환상의 세계인 것이다. 예를 들어 <변신>에서 거대한 갑충으로 변한 주인공의 운명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 내의 가정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극단적 소외를 즉물적으로 보여 준 카프카의 문학적 착상이다.
카프카가 이러한 ‘현실’의 세계를 형상화하고 있다는 것은 그가 구스타프 야누흐와 나눈 대화에서도 나타난다. 프라하에서 개최된 피카소 전시회를 관람하고 돌아오는 길에서 야누흐가 카프카에게 “피카소는 방자한 데포르마시옹(변형, 왜곡)의 화가”라고 말하자, 이에 대해 카프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피카소)는 우리들의 의식 속에 들어와 있지 않은, 아직은 형체를 갖추고 있지 않은 것을 묘사하고 있다. 예술은 하나의 거울이다. 예술은 때로는 시계와도 같이 ‘앞서 가는’ 것이다.” 피카소의 그림 속에 나타난 기형화 내지 데포르마시옹은 카프카의 비현실적인 묘사와 동일한 맥락에서 읽힐 수 있으며, 이러한 언급은 카프카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하나의 열쇠가 될 것이다. 피카소는 기형화된, 추악한 그림 속에 진실을 담고 있으며, 카프카는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세계를 통해 진짜 현실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들의 예술은 대상물(경험적 현실)의 단순한 모방에서 벗어나 주관적인 현실을 재현하고자 하는 서구 모더니즘 예술 추세에도 부응한다고 볼 수 있다.
200자평
대표작 <변신>을 비롯해 <선고>, <시골 의사>, <학술원에 보내는 보고서>, <단식 광대> 등 모두 다섯 작품이 실렸다. 카프카의 많은 작품들이 여러 번역서로 나와 있다. 하지만 이 책과 다른 번역서의 결정적 차이는, 카프카를 전공한 역자가 방대하고 자세한 해설을 통해 카프카의 드넓은 문학 세계와 정교한 작품 분석의 사례를 보여 준다는 점이다. 카프카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보면 된다.
지은이
프란츠 카프카는 1883년에 체코 프라하에서 유대계 부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대학 시절인 1904년에 첫 작품 <어느 투쟁의 기록>을 집필할 만큼 삶의 의미를 문학 창작에 두었으나 아버지의 강한 영향으로 법학 공부를 하였다. 졸업 후 프라하의 국영 보험회사 ‘노동자 산재보험 공사’에서 14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밤에는 글 쓰는 것을 병행했다. 자수성가한 상인으로 기골이 크고 독선적이었던 그의 아버지 헤르만은 아들 카프카에게 “나는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이만큼 해냈는데, 부족한 게 없는 너는 왜 그렇게밖에 못하느냐”며 몰아붙였다. 카프카는 수모감에 사로잡혔다. 그런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고자 세 번이나 결혼을 통한 독립을 시도했으나 결혼이 가져오는 속박에 묶이지 않기 위해 생애의 대부분을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1917년 폐결핵 진단을 받고 1922년 보험회사에서 퇴직한 후 , 1924년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결핵 요양소에서 사망하였다. 프라하에서 태어난 카프카는 체코어에 유창했다. 그러나 그는 프라하 독일어로 저술했는데, 보헤미아의 수도인 그곳의 유태인과 비주류인 기독교인들이 쓰는 언어였다. 그는 프라하 독일어가 고지독어 (High German) 보다 진실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프라하 독일어를 잘 사용하므로써 그는 그의 작품을 완전히 그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독일어로 글을 쓰면서 아주 긴 문장을 쓸 수도 있었다. 카프카는 마침표 바로 앞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문장의 박력을 종종 주기도 했다. 그런 박력은 의미와 강조점을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카프카는 생전에 단지 몇 편의 단편을 발표했다. 이는 그의 작품 중 일부이다. 그의 대부분 작품은 미완성이다.(아마 예외는 <변신>일 것이다.) 그의 작품은 그가 죽을 때가지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그는 임종 시 친구인 막스 브로트에게 원고, 일기, 편지 등을 모두 불태워 없애 달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막스 브로트는 카프카의 작품과 문서 등을 상당 부분 편집, 출판하여 그의 문학 세계를 대중에게 알렸다. 한편, 그의 연인 도라 디아만트는 부분적으로 그의 바람대로 집행하였다. 사실 그녀는 20편의 노트와 35편의 편지를 비밀리에 숨겨가지고 있었으나 1933년 게슈타포에 압수당했다. 이 유실된 원고에 대한 국제적인 조사가 진행 중이다. 한 작가의 삶이 물론 그의 문학 창작에 경우에 따라서는 큰 역할을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카프카의 길지 않은 삶의 여정은 그의 문학 세계의 섬세한 면을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그의 문학 창작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을 대충 간추려 본다면 가족관계, 특히 아버지상, 그의 약혼녀 펠리스 바우어, 유대인의 주체의식 등을 들 수 있겠다. 문학비평의 측면에서는 자주 거론된 “삶의 의미 추구”에 관한 문제를 여기서 짧게 손꼽을 수 있겠다. 주요 작품으로는 <성>, <변신>, <실종자>, <판결>, <유형지에서> 등이 있다.
옮긴이
권혁준은 인천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 서울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독문학을 전공했다. 독일 쾰른대학교에서 독문학, 영문학, 철학을 전공하고 카프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카프카 단편집≫, ≪소송≫,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등이 있다.
차례
선고
변신
시골 의사
학술원에 보내는 보고서
단식 광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그레고르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침대에서 한 흉측스러운 갑충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철갑처럼 단단한 등껍질을 대고 누워 있었다. 머리를 약간 쳐드니 활 모양의 여러 각질로 나뉘어 있는 배가 갈색으로 불룩하게 솟아 있는 것이 보였는데, 그 둥그스름한 배 위에 이불이 금방이라도 미끄러져 내릴 듯 가까스로 걸쳐져 있었다. 그의 눈앞에서 몸뚱이에 비해 형편없이 가느다란 여러 다리들이 무력하게 버둥거리고 있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는 생각했다.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