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펜테질레아(Penthesilea)≫는 비극적이고 잔혹한 결말로 발표 당시 독일 문학계에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문제작이다. 특히 괴테는 펜테질레아를 ‘낯선 영역에서 활동하는 기이한 종족 출신의 여인’이며 ‘친해질 수 없는 여인’이라고 거부감을 나타냈다. 이 희곡은 작가 생전에 공연되지 못하다가 1876년에야 무대에 오르는데 초연은 검열을 의식한 원작 수정으로 평단의 혹평을 감수해야 했다. 클라이스트 서거 100주기가 되는 1911년 공연에 이르러서야 이 작품은 비로소 ‘무대에 적합한 극작품’으로 평가받게 된다. 트로이전쟁을 배경으로 아킬레우스, 펜테질레아, 오디세우스 등 여러 신화적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야기는 아마존 여인족의 개입으로 전쟁이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전령의 보고로 시작된다. 무대 연출이 불가능해 보이는 몇몇 장면에서는 ‘전령의 보고’를 통해 사건을 전말을 알 수 있게 하는 등의 장치를 이용하고 있다.
광란하는 펜테질레아
파리스가 헬레네를 납치한 일이 전쟁으로 비화했다. 그러나 그리스 대 트로이의 전쟁이 아마존 여인족 군대의 개입으로 혼란에 빠진다. 맹렬한 기세로 전쟁터에 발을 들인 이들 아마족족은 그리스군과 트로이군을 동시에 공격하고 있다. 그녀들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아마존족을 이끄는 여왕 펜테질레아가 전장에서 아킬레우스를 마주하자 얼굴이 붉어졌다는 사실이 의문을 더욱 증폭시킬 뿐이다. 펜테질레아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전세가 불리한 상황에서 계속해 아킬레우스를 공격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아킬레우스에 대한 그녀의 집착은 ‘광기’와 ‘혼란’으로 비쳐질 뿐이다.
내가 전쟁터에서 싸움으로
그의 환심을 사려고 해야만 되는 것이 내 죄인가?
그러나 이유를 알 수 없는 펜테질레아의 이런 광란에도 사연이 있다. 벡소리스가 이끄는 군대에 종족의 남자들이 몰살당하자 남겨진 여인들은 피의 복수를 계획한다. 정복자들이 남겨진 여인들을 전리품으로 취하려는 순간 여인들은 숨겨든 칼을 빼들어 정복자들의 심장을 찌른다. 이렇게 해서 여인족이 탄생했고, 그녀들은 종족을 유지하기 위해 독특한 풍습을 갖게 되었다. 마르스가 정해 준 종족과의 전쟁을 통해 신랑감을 구하는 것이다. 장미 축제를 열어 이들을 대접한 뒤에는 치장한 말에 태워 돌려보내며 후에 태어나는 아이가 오직 여자아이일 경우에만 종족으로 받아들인다.
여인족의 여왕이었던 오트레레가 죽기 직전 딸인 펜테질레아에게 아킬레우스를 짝으로 점지해 준다. 펜테질레아는 전쟁에서 승리해 아킬레우스를 정복함으로써만 그를 짝으로 맞이할 수 있는 운명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단 한 달만 그녀가 갈망하는 것을 들어주려고 한다네.
펜테질레아로부터 여인족 탄생에 얽힌 비화를 모두 전해들은 아킬레우스는 새로운 결심을 한다. 펜테질레아와 전장에 맞서 그녀에게 정복당함으로써 그녀의 짝이 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펜테질레아를 전장에 불러들이는 아킬레우스의 도전이 그녀에게는 배신으로 비쳐진다. 걷잡을 수 없이 거세진 그녀의 광기가 극을 잔혹한 결말로 이끈다.
200자평
2011년 서거 200주기를 맞는 독일의 극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희곡이다. 비극적이고 잔혹한 결말 때문에 발표 당시 문인들로부터 격렬한 반응을 이끌어 낸 문제작이기도 하다. 트로이전쟁을 배경으로 아킬레우스와 펜테질레아의 대립과 갈등, 화해와 사랑이 역동적으로 묘사된다. 어렵고 난해한 문체 때문에 국내에서는 번역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던 클라이스트의 문제 희곡을 우리말로 만나 볼 수 있다.
지은이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는 독일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사이의 시기에 활동한 개성이 강한 천재 극작가이며 산문작가, 서정 시인이다. 그러나 그는 동시대에는 이해되지 못했고 작가로서의 성공도 거두지 못했다. 희곡의 경우에도 일곱 편의 완성된 희곡 중 <슈로펜슈타인 가족>, <깨어진 항아리>, <하일브론의 케트헨> 등 세 편만이 공연되었을 뿐이다. 괴테 등에 의해 정서적으로 혼란스러운 작가로 거부당했던 그는 죽은 뒤에야 비로소 주목받기 시작해 오늘날에는 독일문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그의 희곡 작품은 지금도 끊임없이 공연되고 있는데, 특히 독일의 현대 작가들은 그에게서 분열되고 상처 입은 현대인의 자화상을 발견해 내곤 한다. 클라이스트는 지금도 여전히 수수께끼 같은 존재로, 그리고 가까우면서도 먼 존재로 각인되고 있다. 때문에 독자들은 그의 생애와 작품을 접하면서 친숙한 낯섦, 낯선 친숙함을 느끼게 된다. 클라이스트는 1777년 10월 18일 오더 강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연대장이었던 프리드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전통적인 군인 가문의 자손으로서 15세에 입대해 마인츠 전투, 라인 원정 등에 참가했으며 20세에 소위로 임관되었다. 1799년 전역할 때까지 7년에 걸친 군 생활은 작가에게 시간을 낭비한 것으로 여겨질 만큼 부정적이었다. 전역 후 프랑크푸르트 오더 대학에 입학해 철학, 물리학, 수학 등을 공부하면서 칸트의 인식론을 접하고는 그때까지 이성론에 근거했던 인생관 및 세계관에 큰 충격을 받는다. 그는 1800년 초 지역 사령관의 딸이었던 쳉게(Wilhelmine von Zenge)와 약혼한다. 그는 짧은 생애 중 여러 차례 여행을 하는데, 그 첫 번째 주목할 만한 여행이 1800년 8월에서 10월까지의 뷔르츠부르크 여행이다. 그는 이 여행에서 자신의 소명이 문학임을 의식하고 창작 활동을 시작한다. 1801년에는 이복 누이 울리케와 함께 드레스덴을 거쳐 파리를 여행한다. 1802년에는 스위스 툰 호수 근처 아레 강에 있는 한 섬에 머물게 되는데, 이때 뷔르츠부르크 여행 때와는 다른 상황이 벌어진다. 그는 속세의 명예와 영화를 포기하고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 농부가 되고자 한다. 그러나 약혼녀인 쳉게가 그의 뜻을 따르지 않아 그는 그녀와 파혼한다. 1802년부터 1807년까지 클라이스트는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생애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에 봉착한다. 1802년의 파혼에 이어 1803∼1804년 미완성 희곡 <로베르 기스카르>의 실패로 말미암은 광기에 가까운 행동과 자살 시도로 심신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다. 국가적으로는 프로이센이 1806년 나폴레옹과의 전투에서 패배한다. 1807년 1월 30일 클라이스트는 베를린에서 프랑스군에 의해 간첩 혐의로 체포돼 같은 해 7월까지 프랑스 감옥에 구금된다. 하지만 클라이스트의 생애에서 가장 위기였던 이 5년 동안 역설적으로 그의 작품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다. 이 시기에 독일 희극의 금자탑으로 일컬어지는 <깨어진 항아리>가 완성되었고, 이성으로는 더 이상 제어할 수 없는 디오니소스적 열정으로 아폴로적 조화를 추구하는 독일 고전주의의 규범을 완전히 깨뜨린 비극 <펜테질레아>가 프랑스 감옥에서 집필되기 시작해 석방 후 드레스덴에서 완성되었다. 그리고 또한 인간이 처한 극단적 한계상황을 엄밀하면서도 율동적이고 응축된 언어로 표현한 불후의 단편인 <미하엘 콜하스>, <O… 후작부인>, <칠레의 지진> 등이 집필되기 시작했다. 그 뒤 클라이스트는 아담 뮐러와 공동 발행한 잡지 <푀부스>의 실패와 직접 운영하던 <베를린 석간>의 폐간 등으로 생애 마지막 여행을 하게 된다. 1811년 11월 21일 클라이스트는 불치의 병에 걸린 헨리에테 포겔과 동반 자살을 감행한다. 반제 호숫가에서 클라이스트는 먼저 31세인 포겔의 심장을 쏘았고, 이어서 34세인 자신의 머리를 쏘았다. 두 사람은 두 개의 관에 입관되어 하나의 무덤에 합장되었다.
옮긴이
이원양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독어독문학과와 같은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문학박사). 독일 괴테인스티투트디플롬을 받았고 쾰른 및 함부르크 대학교에서 독문학을 연구했으며 뮌헨 대학교 연극학연구소에서 연극학을 연구했다. 한국브레히트학회 회장, 한국독일어교육학회 회장, 한국독어독문학회 회장 그리고 한양대학교 문과대 학장을 역임했으며, 독일연방공화국 정부로부터 1등십자공로훈장을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이며 한국브레히트연극연구소(Bertolt-Brecht-Zentrum Korea) 소장이다. 지은 책으로는 ≪브레히트 연구≫(1984), ≪독일어 기초 과정≫(1995), ≪우리 시대의 독일 연극≫(1997), ≪독일 연극사≫(2002), ≪만나 본 사람들, 나눈 이야기≫(2006), ≪이원양 연극 에세이≫(2010)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한국의 봉함인≫(2005), ≪베르톨트 브레히트≫(2007) 등이 있다. 번역 희곡으로는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2006), <서푼짜리 오페라>(2006), <아르투로 우이의 출세>(2008), 크뢰츠의 <거세된 남자>(1987), <수족관>(1988), 슈트라우스의 <재회의 3부작>(1997), 브라운의 <베를린 개똥이>(2007), 실러의 <간계와 사랑>(2008), <빌헬름 텔>(2009), <발렌슈타인>(2012), 호르바트의 <빈 숲 속의 이야기>(2009), 클라이스트의 <펜테질레아>(2011), 폰 마이엔부르크의 <못생긴 남자>(공역, 2011) 등이 있다. 2010년 7월 밀양연극촌에서 <햄릿> 공연 사진전 <햄릿과 마주보다>를 가졌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나오는 사람들 해설
나오는 사람들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제6장
제7장
제8장
제9장
제10장
제11장
제12장
제13장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
그녀는 그의 갑옷을 찢어 버리고,
그의 흰 가슴을 물어뜯습니다,
그녀와 개들은 앞을 다툽니다,
옥수스와 스핑크스는 오른쪽 가슴을,
그녀는 왼쪽 가슴을 물어뜯습니다. 내가 나타나자,
그녀의 입과 손에서는 피가 뚝뚝 흘러내립니다.
2.
내가 전쟁터에서 싸움으로
그의 환심을 사려고 해야만 되는 것이 내 죄인가?
내가 그에게 검을 들이대면 무엇을 원하는 것인가?
내가 그를 지하 세계로 보내 버리려는 것인가?
나는 다만 그를, 영원한 신들이시여,
이내 품속으로 끌어당기려는 것이다!
3.
누가 그렇게 사악하게 나와 사랑의 경쟁을 했는지,
그것이 알고 싶다!
누가 산 사람을
때려죽였는지 묻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영원한 제신들에게 걸고서!
그는 나에게서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간다.
누가 나의 죽은 사람을 죽였는지 묻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나에게 대답을 하라, 프로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