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수필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수필을 대표하는 주요 수필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허세욱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식민지와 한국 전쟁, 그리고 급격한 산업화를 체험한 작가로, 그의 수필에는 이러한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그는 전북 임실의 외진 고장(작가의 말에 의하면 “높은 적설량으로 이름을 얻는다. 때로는 강원도나 전방을 제치고 건방지게 앞자릴 차지하곤… 중략… 그만큼 쓸모없는 두메”(<서적굴 디딜방아>)에서 자라서인지 혹은 그의 집안이 어느 정도 재력을 담보하고 있었던 덕분인지, 그가 겪은 한국 전쟁의 체험은 일반적인 전쟁 체험과는 거리가 있다. 산업화와 관련한 그의 추억도, 그 거대한 물결에 휩쓸리며 소외된 사람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따라서 그런 아픈 역사적 맥락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처연함이나 처참함 등이 그의 수필의 본류는 아니다. 오히려 그는 그 속에서 어떤 서정을 끌어올린다. 그렇기 때문에 어찌 보면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큰 어려움 없이 지낸 양반집 도련님의 소박한 읊조림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의 수필이 울림을 주는 것은 작가의 순수한 성정 때문일 것이다. 그는 싱가포르와 페낭에서 묵은 객실 밖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울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의 수필 세계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본인 스스로가 자신의 수필에 대해 “내 수필의 제재는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회복이요, 고향의 연민”이라거나 “내 수필이 우려먹는 뼈다귀는 회향과 유랑, 그리고 반문명”이라고 언급하고 있듯이, 허세욱의 수필에는 고향과 관련한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이 많다. 현재의 어떤 모습을 보고도 바로 과거의 고향 이야기로 건너간다. 그리고 그것은 훼손되지 않은 세계에 대한 그리움을 부른다. 그러면서 작가의 마음은 언제나 그 속에서 “窓가에 번지는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200자평
자신의 체험을 통해 삶을 되돌아보는 ‘안으로 열린’ 시각의 작가 허세욱. 그의 수필은 현대 사회에서 고향이 사라지고 인정이 메마르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한다. 아픈 역사적 현실을 반영하지만 처연함이나 냉소로 흐르지 않고 순수한 서정을 드러내는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저도 모르게 함께 따뜻한 웃음을 짓게 된다.
지은이
허세욱(1934∼2010)은 전북 임실군에서 태어나서 이리(현 익산시)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한국 전쟁이 발발해 학교를 중단하고 아버지가 차리신 서당에서 2년간 한문 수업을 받았다. 이때의 체험이 중문학을 연구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듯하다. 1959년에 한국외국어대학교 중어과를 졸업하고 대만국립사범대학교에서 유학했다. 대만에 체류하는 동안 허세욱은 ≪한국시선≫(1964)과 ≪춘향전≫을 번역해 발간함으로써, 한국 문학을 소개했다. 그가 번역 소개한 한국 시인은 서정주, 박목월, 정지용 등이다. 1968년에는 2개월간 ≪한국 문학 산론≫을 신문에 연재하기도 했다. 대만에서 석사(1963), 박사 학위(1968)를 받고, 귀국해 한국외국어대학교 중어과에 조교수로 부임했다. 한국의 문학을 대만에 소개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문학을 한국에 번역해 소개하기도 했다. ≪중국 고대 문학사≫(법문사, 1986)와 ≪중국 현대 시선≫(을유문화사, 1976), ≪중공 현대 대표 시선≫(전예원, 1987) 등이 그런 작업에 해당한다. 또한 <중국 수필의 전통>을 1978년 1월부터 1979년 8월까지 ≪수필문학≫에 연재하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들 때문에 허세욱은 대만뿐 아니라 중화권에서 널리 인정을 받은 듯하다. 2003년에 베이징에서 있었던 ‘허세욱 중문 수필 세미나’는 이례적으로 외국인 작가를 초청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한국외대 도서관장, 한국외대 동양어대학장, 한국 중국 현대 문학학회 회장, 중국 어문 연구회 회장, 한국 수필 문학 진흥회의 부회장,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 중국 연구소 객좌 연구원, 고려대학교 중문과 교수, 고려대 중문과 학과장 및 대학원 주임 등을 역임했으며, 중국 문예협회에서 제정한 ‘중국 문학상’(1970)과 한국 수필 문학 진흥회가 제정한 제6회 ‘현대 수필 문학상’(1987), 임실 문학 대상(2000) 등을 수상했고, 2010년에는 대만 지산 문화 예술 훈장(鷄山文化藝術勳章)을 받았다. 유학한 대만뿐만 아니라 미국(아이오와대, 버클리대, 캘리포니아대, 스탠포드대), 유럽, 중국, 필리핀, 홍콩, 소련(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등을 방문해 강연하거나 연구했다.
지금까지는 주로 허세욱의 학자로서의 면모를 살펴보았다면, 다음으로는 문예인으로서의 면모를 살펴보고자 한다. 허세욱은 1956년 대학 3학년 재학 중에 <레일의 대화>로 제1회 전국 대학생 시 콩쿠르에서 입상을 할 정도로 일찌감치 문예에 소질을 보였다. 그런데 졸업과 동시에 유학길에 올랐기 때문에 그의 문필 활동은 대만에서 시작되었다. 1961년에 대만에서 중문 시(<이름>, <소원>)를 ≪현대문학≫지에, 중문 수필(<한 그루의 나무>, <피난>)을 ≪작품≫지에 각각 추천받음으로써 문필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작품집은 1969년에 한국에서 처음 발간되었다. 첫 작품집은 시집 ≪청막≫(일지사)이었다. 그러나 이 시집 발간 이후로는 주로 수필을 쓰는 것에 집중했다. 그리하여 1976년에 첫 수필집 ≪움직이는 고향≫(범우사)을 출판한 이래, ≪태양제≫(오거서, 1981), ≪달이 뜨면 꽃이 피고≫(범우사, 1983), ≪인간 속의 흔적≫(보성사, 1990), ≪돌을 만나면 비켜 가는 물처럼≫(화동출판사, 1994), ≪임대 마차≫(세손출판사, 2002, ≪송정 다리≫(수필과비평사, 2008) 등 7권의 수필집과, 대표작을 모은 4권의 수필선을 출간했다. 중문 수필집도 3권 펴냈다. 이 작품집들에 실린 수필은 총 400여 편에 달한다. 기행집까지 아우르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난다. 분량에서는 수필에 미치지 못하지만, 시 창작도 꾸준히 해서 한글 시집 2권과 중문 시집도 출간했다.
이렇듯 허세욱은 학자, 시인, 수필가, 번역가로서 다방면에서 활약했고, 그 범위도 한국을 넘어 대만을 중심으로 중화권 양쪽에 널리 걸쳐 있다. 이 책에서 집중하고 있는 수필의 경우, 허세욱은 고향이나 부모님에 대한 진솔한 감정이나 현대 문명에 대한 반성적 사유를 보이는 수필을 주로 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엮은이
이정선은 경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최인훈 소설 연구 : 내용과 형식의 상관 관계를 중심으로>(1999)로 석사 학위를, <중앙아시아 고려인 소설 연구>(2011)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논문으로 <사할린 고려인 한글 소설의 주제 양상 고찰>, <역사 소재 희곡 작품에 나타난 고려인의 현실 인식 일고찰>, <탈북 디아스포라 고려인 소설 연구> 등이 있고, 공저로 ≪한민족문학사≫, ≪키워드로 읽는 아프리카 소설≫ 등이 있다.
차례
노을에 띄운 사연들
움직이는 故鄕
초승달이 질 때
피곤한 東洋
“버스” 속에서
문을 잠그고
城砦와 풀잎 사이
까치집
물어봅시다
흙 한 줌
묶이며 놓으며
무작정
너도 가고 나도 가고
훌륭한 사람과 그리운 사람
고향은 존재의 확인
지팡이 소리
달빛 재실
그림자
산이 거꾸로 누울 때
임대 마차
서동(書童) 시절
여행론
굴비 한 토막
탈출과 돌파
도강渡江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오늘따라 새봄이 깊어 간다 해서 라디오에선 “고향의 봄”이 물결치지만, 웬지 내가 뛰놀던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가 한창일 고향에 대한 절실한 그리움은 잃어 가고 있는 거다. 가만히 생각하면, 지금 그곳엔 백양목 흰 두루마기 아버님도 세상을 뜨셨고, 메주를 끓이시던 어머님도 고향 아닌 타관에 계시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지난가을에도 그러했었다. 어머님이 둘째 아우를 따라 大邱에 계셨을 때였다. 그 가을이 저무는 어느 날 나는 고향에 간다는 마음으로 기차를 탔는데 기차는 낯설은 秋風嶺을 향하고 있었다.
때로는 全州가, 때로는 大邱가, 때로는 태생지가 고향으로 여겨진다. 그런데도 막상 어머님이 내 집에 계실 때면 서울이 고향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또 무슨 모순일까?
<움직이는 故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