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의 ‘초판본 한국 근현대소설 100선’ 가운데 하나. 본 시리즈는 점점 사라져 가는 명작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이 엮은이로 나섰다.
현덕은 1930년대 후반 신세대 작가로 문단에 등장했다. 밀도 있는 문장과 치밀한 묘사로 식민지 현실 문제를 예리하고 세련된 형식으로 포착한 그는 현실에 대한 사실적 형상화와 고도의 예술성 모두를 성취한 신예 소설가로 평가받았다. 공동체의 해체와 모럴의 상실을 통해서 타락하고 병든 현실에 주목한 그의 소설은 1930년대 후반 한국문학의 가능성을 보여 주는 수작이다. 현덕의 소설은 주로 유년의 가난 체험을 근간으로 하여 궁핍한 식민지 현실을 배경으로 삼고 있으며, 그 속에서 훼손 일로로 치닫는 불구적이고 속악한 세계의 현실을 어린아이의 시선을 통해 비판적으로 조망하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현덕이 해방 이전에 발표한 소설(<남생이>, <경칩>, <층>, <두꺼비가 먹은 돈>, <잣을 까는 집>, <녹성좌>)에는 동일하게 어린아이가 등장한다. 어린아이가 등장하는 현덕의 소설은 모두 농촌 공동체가 해체되고, 인물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의 변두리와 빈민촌으로 이주하는 몰락의 과정을 그린다. 이로써 1930년대 후반의 식민지 현실을 가장 사실적이고 적나라하게 나타냈다. 현덕의 소설에서 아이의 시선은 어른들의 세계가 얼마나 몰가치적인 세계이며 타락한 세계인가를 비판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쓰인다.
현덕 소설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또 다른 하나는 병약한 아버지 또는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모티프다. 아버지는 더 이상 가장으로서의 위엄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아이들과 동등하거나, 심지어는 아이들이 돌봐줘야 하는 병약하고 불쌍한 인물로 그려지기 일쑤다. 당연히 아이들은 그런 아버지의 존재를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며, 바로 이 위계의 전도가 아이들에게 혼란의 경험을 가져다준다. 이러한 아버지들의 경제적 무능력을 통해서 현덕은 경제적인 능력의 파산이 결국 모든 가치의 타락과 파멸을 불러오는 원인임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현덕의 소설에 등장하는 병든 아버지들이 실상은 자본주의에서 소외된 자들이며, 근대 자본주의 안에서 더 이상 가치를 획득하지 못한, 소멸되어 가는 상징적인 질서의 체현자임을 깨달을 수 있다. 현덕의 소설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가부장적 권위가 아니라 동정적이고 인간적인 관계로 그려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덕의 소설에서 아버지의 죽음과 기존 질서의 붕괴는 교묘하게 연동되어 있다.
한편 도시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소설에는 대부분 어린아이가 등장하지 않는다. 이들 소설에서 아이가 사라진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는 것은 타락한 어른들과 무기력한 지식인이다. <남생이>에서 아버지의 죽음과 노마의 성장이 교묘하게 교차되고 있는 것처럼, 현덕의 소설에 등장하는 아이들에게는 일말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에서는 이런 일말의 긍정성도 찾기 어렵다. 농촌과 달리, 생존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 도시 공간에서 ‘아이’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 인식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0자평
현덕은 1930년대 후반 문단에 등장했다. 밀도 있는 문장과 치밀한 묘사로 식민지 현실 문제를 예리하고 세련된 형식으로 포착한 그는 현실에 대한 사실적 형상화와 고도의 예술성 모두를 성취한 신예 소설가로 평가받았다. 공동체의 해체와 모럴의 상실을 통해서 타락하고 병든 현실에 주목한 그의 소설은 1930년대 후반 한국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수작이다.
지은이
현덕은 1909년 2월 15일 서울 삼청동에서 현동철(玄東轍)과 전주 이씨의 3남 2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현경윤(玄敬允)이고 본관은 연주(延州)다. 제일고보 학적부에는 아버지의 직업은 상인이고, 출신 성분은 양반이며, 본적은 경성부 통의동 38번지로 기록되어 있다. 현덕의 조부 현흥택은 민영익의 수행인 자격으로 1883년 최초의 대미 외교 사절단 보빙사에 참여했고, 1895년에는 시위대 연대장에 임명된 바 있다. 또한 그는 정동구락부의 일원으로 독립협회에도 참여했다. 현덕이 쓴 <자서 소전>에는 출생 당시 집안 형편이 나쁘지 않았으나, 그의 출생 후 가세가 기울어 사글세를 면하지 못했고, 부모님은 불화했던 것으로 나와 있다.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사업의 꿈을 포기할 줄 몰랐던 아버지 탓에 살림은 어머니가 도맡아야 했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 이사 횟수가 이십여 회에 달했으며, 가족이 각자도생으로 헤어지길 수삼 회였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집안 형편 때문에 인천 가까운 대부도(大阜島)의 친척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현덕은 1923년 인천의 대부공립보통학교에 들어갔으나, 1924년 중퇴하고 중동학교 속성과 1년을 다녔다. 1925년 제일고보(현 경기고등학교)에 들어갔으나 집안 형편이 어려워 그해에 중퇴했는데, 학적부에는 전체 수업 일수 245일 가운데 165일을 결석한 것으로 나와 있다. 당시 주소는 경성 관수동 45번지였다.
현덕은 192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달에서 떨어진 토끼>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일반적으로 현덕의 등단작은 193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가작 입선한 <고무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그의 등단 지면은 ≪조선일보≫ 신춘문예다. 이 무렵 현덕은 수원 발안 근방의 매립 공사장에서 토공 생활을 했고, 이후 현해탄을 건너가 교토, 오사카 등지를 떠돌며 하층민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흙 바구니를 짊어지지 못하고 쓰러지는 통에 공사장에서 쫓겨났고, 그 일을 계기로 문학의 길에 대한 꿈을 현실화하기에 이르렀다. 1936년 막노동판을 떠돌다가 문학에 뜻을 둔 후 작가 김유정을 만나 절친한 사이가 되었으며, 현덕은 <자서 소전>의 말미에서 김유정과의 관계를 “지기 고 김유정 형을 얻어 문학을 향한 뜻을 굳게 하고 그 길을 밟던 중, 금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그 길에 자신 같은 것을 가져보며 현재에 이르렀다”라고 술회하고 있다.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남생이>가 당선되어 정식 등단했으며, <경칩>(1938), <층>(1938), <두꺼비가 먹은 돈>(1938)을 연이어 발표했다. 1939년 1월 월간 ≪조광≫에 실린 <신진 작가 좌담회>에서 현덕은 등단작 <남생이>가 인천에 있을 때 ≪조선일보≫ 신춘문예 사고(社告)를 보고 자신의 역량을 시험해 보기 위해 쓴 작품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이로 미루어 당시 현덕의 거주지는 인천이었고, <남생이>의 배경 또한 인천 해안의 빈민굴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현덕은 1939년 인천에서 서울로 상경해서 동대문 부근의 빈민촌인 경성부 창신정 600의 9번지에 거처를 정했고, 이해에 <골목>(≪조광≫), <잣을 까는 집>(≪여성≫), <녹성좌>(≪조선일보≫)를 발표했다. 이 시기에 발표된 그의 수필과 소설에는 변변한 생업마저 없었던 청춘의 불행한 운명과 극도로 위축된 인텔리의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해방 이후 현덕은 임화와 교제하며 문단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1946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의 소설부, 아동문학부, 대중화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했고, 소설집 ≪집을 나간 소년≫(아문각), 동화집 ≪포도와 구슬≫(정음사) 등을 간행했다. 1947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의 기관지 ≪문학≫의 편집 겸 발행인, 조선문학가동맹의 서울지부 소설부 위원장을 지냈다. 그리고 소설집 ≪남생이≫(아문각), 동화집 ≪토끼 삼형제≫(을유문화사)를 출판했다. 현덕은 1950년 9·28 서울 수복 때 월북했다. 호적부에는 1951년 9월 27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38번지에서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1951년 북한에서 여러 작품을 발표한 것으로 미루어 보면 월북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작품 활동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현덕은 1962년 북한에서 한설야가 숙청될 때 그의 추종 세력들과 함께 숙청되었고, 이후의 삶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없다.
엮은이
고봉준은 1970년 부산에서 태어나 충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9년 부산외국어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1995년 같은 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해 <해방기 전위시의 양식 선택과 세계 인식>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2005년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한국 모더니즘 문학의 미적 근대성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2006년 제12회 고석규비평문학상을, 2015년 제16회 젊은평론가상을, 2017년 제21회 시와시학상 평론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는 ≪반대자의 윤리≫, ≪다른 목소리들≫, ≪모더니티의 이면≫, ≪유령들≫, ≪비인칭적인 것≫, ≪근대시의 이념들≫, ≪문학 이후의 문학≫ 등이 있다.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차례
남생이
경칩(驚蟄)
층(層)
두꺼비가 먹은 돈
골목
잣을 까는 집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호젓한 집 뒤 담 미트로 도라가 노마는 짐즛 시리죽은 표정을 한다. 담벼락의 모래알을 뜨더내며 “아버지는 영 죽엇다” 하고 입 박게 내여 외여본다. 그리고 되도록 우름이 나오라고 슬픈 생각을 만든다. 허나 머리속에는 담배물뿌리를 찻노라 방바닥을 더듬는 아버지가 나타난다. 거미발 가튼 손가락이다. 창박게서 쿵쿵 발을 구르며 먼지를 터는 아버지가 나타난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얼굴은 형용을 잡을 수 업다. 그보다는 오늘 노마가 나무 올라가기에 성공한 그 장면이 똑똑이 나타나 덥는다. 갑작이 노마의 키가 자라나듯시픈 그만큼 보는 세상이 달러지는 감이다. 노마는 부지중 마음이 기뻐진다. 어쩔 수 업는 기쁨이다. 아아 그러나 이것은 아버지에게 죄스런 마음이다. 어떠케 무슨 커다란 착한 일을 하기나 하지 안코는 무얼로 이 마음을 씻슬 수 잇스리요.
−<남생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