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호기우타〉는 1979년 초연 이래 일본 소극장 연극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꾸준히 리바이벌되며 일본 현대 연극의 주요 작품으로 자리매김한다. 핵전쟁 이후 세상을 배경으로 기독교적 모티브를 가미한 부조리극이다. 독특한 세계관, 시적인 극의 흐름에 유머러스한 대사가 어우러져 뛰어난 문학성을 자랑한다.
핵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자연과 황량한 거리가 배경이다. 이름에서 ‘예수’를 연상시키는 인물 야스오(야소)는 무엇이든 물건을 복제하는 능력이 있지만 전지전능한 신의 모습은 아니다. 본래 유랑 극단 단원이었던 게사쿠와 교코는 핵전쟁으로 일행과 헤어져 방황 중이다. 세 사람은 서로의 목적지를 모른 채 길벗이 되어 여행길에 이런저런 일들을 함께 겪는다. 야스오가 두 사람과 헤어져 예루살렘으로 발길을 옮기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가 예수를 모티브로 한 인물이라는 사실이 확연해진다. 그때 잠깐 희망 혹은 구원의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곧 방사능으로 오염된 눈이 대지를 덮고 빙하기가 시작되면서 극은 절망의 분위기로 막을 내린다.
기타무라 소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호기우타〉는 내 인생에 대한 예언과 같은 작품이다. 인물에 대해 설명하자면, 야스오는 이미 핵전쟁이 일어나 멸망해 버린 세상에 나타난 도움이 안 되는 신(神)이고, 교코는 순진무구한 영혼의 소유자로 그런 신(야스오)을 사랑한 소녀, 게사쿠는 딱히 목적 없이 폐허를 떠돌며 광대놀음을 하는 운명을 지닌 사람이다. 게사쿠는 야스오에 대한 신앙은 없지만 그래도 야스오가 예루살렘으로 떠나갈 때 교코로 하여금 그를 좇아가도록 하는데, 그러나 교코는 곧 돌아와 버리고 만다. 그리고 게사쿠가 다시 살아나는 것은 ‘부활’이 아니라 그저 죽었다 살아나는 마술을 보여 준 것뿐이었다. 마지막에 게사쿠는 교코와 함께 ‘그저 갈 수밖에 없는’ 황야로 향하는데, 이는 어떠한 다른 의미 없이 그저 이야기가 그렇게 되어 가는 것이다.”
일본은 핵폭탄을 직격으로 맞은 역사가 있고, 현대에도 1995년에 효고현 남부 지진(고베 대지진), 2011년에는 동일본 대지진을 겪어 ‘황폐한 도시’를 계속해서 마주해 왔다. 1980년대에 유행했던 이 작품이 오히려 동일본 대지진 이후에 더 많이 상연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해 본다면 그 현대적인 보편성과 동시대성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희곡의 제목이자 노래 제목이기도 한 ‘호기우타(寿歌)’는 ‘축가’, ‘축복의 노래’라는 의미다. 세상이 멸망해 가는 와중에 천진난만한 소녀 교코가 뜻도 모른 채 〈호기우타〉를 부르는 역설적인 장면이 짙은 여운을 남긴다.
200자평
〈호기우타〉는 핵전쟁 이후의 세상을 배경으로 기독교적 모티브를 가미한 부조리극이다. 1980년대 일본 내 소극장 연극 붐을 주도하며 200편이 넘는 희곡을 쓴 기타무라 소의 대표작이다.
지은이
기타무라 소(北村想, 1952∼)
일본 간사이 지역의 시가(滋賀)현 오쓰(大津)시 출신인 극작가 겸 연출가다. 시가 현립 이시야마고등학교(滋賀県立石山高等学校)를 졸업한 후 나고야로 이주하면서 주쿄대학(中京大学)에 드나들게 된 것을 계기로 연극 활동을 시작했다. 1979년에 극단 ‘TPO사★단(TPO師★団)’을 창설했다. 극단은 이후 혜성 86, 프로젝트 나비(プロジェクト·ナビ) 등으로 이름을 변경하며 2003년경까지 활발한 연극 활동을 이어 나갔다.
기타무라 소는 이른바 ‘앙그라’(언더그라운드 연극)로 불리던 가라 주로, 사토 마코토 등의 연극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그 역시도 1980년대의 소극장 연극 붐을 이끌어 가던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꼽힌다. 주요 활동 무대는 나고야와 오사카로, 특히 오사카 이타미(伊丹)시에 위치한 시립극장 아이홀(AI·HALL)에서 약 20년간 희곡 강의를 하며 간사이 지역 젊은 극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200편이 넘는 희곡을 썼는데, 한동안은 건강 문제로 활동이 뜸했다. 현재는 희곡뿐만 아니라 소설, 동화, 영화 시나리오, 수필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글을 쓰며 창작 활동을 꾸준히 이어 가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호기우타〉, 〈11인의 소년〉, 〈상고(想稿)·은하철도의 밤〉, 〈악마가 있는 크리스마스〉 등이 있다.
옮긴이
김유빈
김유빈은 고려대학교에서 고고미술사학, 일어일문학 전공 후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대학 대학원 문학연구과에서 일본 근현대 희곡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이후 연극 평론가, 드라마터그로 활동하며 연극 분야의 다양한 통·번역 작업에 참여 중이다. 현재 한일연극교류협의회 운영위원, 공연과이론을위한모임 편집위원이다. 데라야마 슈지의 〈레밍−세계의 끝까지 데려가 줘−〉(2023년 공연)를 번역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제1장 불꽃놀이
제2장 반딧불이
제3장 풍설(風雪)
제4장 석설(惜雪)
해설
지은이에 대해
기타무라 소 연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교코 : (노래) 안개 자욱한 아침은 하얗고 넘실대는 빛은 노랗네
젖은 풀은 푸르지, 나아가는 당신의 그림자는 무슨 색?
기다리는 나, 노래하네 호기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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