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2세
강태경이 옮긴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리처드 2세(King Richard II)≫
이름, 그까짓 것
내가 무엇이 되든, 나 자신이든 아니든, 인간인 바에야 그 무엇에도 만족할 수 없다. 철저하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 이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기 전까지는.
헨리 볼링브로크: 양위에 일말의 불만이라도 있으신지요?
리처드: 없소, 아니 있소. 있고도 없소. 있고도 없는 존재, 그게 나니까. 그러니 있다고 할 수도 없지, 왕위를 그대에게 넘겨주었으니. 자, 내가 어떻게 나를 없애는지 잘 지켜보시오. 내 머리에서 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내 손에서 이 성가신 지팡이도 내려놓는다. 내 마음에서 왕의 긍지도 몰아내고 이마에 기름 부음 받았던 성유는 내 눈물로 씻어 낸다. 내 손으로 왕관을 내어 주고 내 입으로 내게 주어진 신성한 통치권을 부인한다. 신하와 백성으로부터 받은 충성과 의무의 서약들은 한숨으로 토해 내어 모두 없던 것으로 하고, 왕으로서 누리던 모든 영광과 존엄은 남김없이 내려놓는다. 내 영지와 세입과 그 외 모든 소득을 포기할 것이며 내가 세운 법과 칙령과 조례들을 모두 파기한다. 신이여, 내게 한 맹세를 깨뜨린 자들을 부디 용서하소서! 당신께 한 맹세를 깨뜨리지 않은 자들을 보우하소서! 이제 아무것도 없으니 슬퍼할 것 또한 없다. 모든 것을 얻은 그대는 모든 기쁨을 누리길! 리처드의 자리에 올라 그대는 오래 사시길. 리처드는 어서 죽어 땅에 묻히길! 신이여, 더 이상 왕이 아닌 리처드가 비오니 부디 헨리 왕을 보우하사 오래토록 햇빛 쨍쨍한 날들만을 누리게 해 주소서! 자, 내가 할 일이 더 남아 있나?
≪리처드 2세≫,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강태경 옮김, 130∼131쪽
누가 누구에게 말하는가?
영국 플랜태저넷 가문의 마지막 왕 리처드 2세가 랭커스터 가문의 첫 왕 헨리 4세에게 말한다.
둘은 관계는?
사촌이다. 헨리 4세의 부친은 리처드 2세의 숙부이자 랭커스터 공작인 곤트의 존이다. 10세라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리처드를 대신해 섭정을 하기도 했다.
왜 양위하는가?
리처드가 아일랜드를 정복하기 위해 성을 비운 사이 헨리가 반란을 일으켰다. 헨리는 모두 앞에서 양위를 통해 왕으로서 당당히 입성하고자 했고, 전세가 불리해진 리처드는 헨리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반란의 원인은?
리처드가 정쟁에 휘말린 헨리를 해외로 추방했다. 헨리가 없는 사이 그의 부친이 죽자 헨리의 유산까지 가로채려 했다. 아일랜드 원정에 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였다.
양위한 왕은 어떻게 되나?
런턴탑에 유폐되었다가 33세에 감옥에서 사망한다. 이 극에서는 엑스턴이 자객을 동원해 리처드를 살해한 것으로 그렸다.
실제로 리처드 2세는 어떤 인물인가?
역사 기록은 대부분 그를 어리고 연약한 왕이었다가 실정을 거듭하면서 권력에 집착하는 폭군이 되어 가는 인물로 제시한다.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2세는 어떤 인물인가?
군주의 위엄과 진중함 대신 종잡을 수 없는 변덕과 경박함, 섬세한 감수성과 냉정한 무관심이 혼재하며 감정의 극단을 오가는 신경증적 인물로 묘사했다.
그는 역사를 어떻게 재구성했나?
리처드 2세가 폐위되고 살해당하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을 몇 달로 압축해 사건의 인과관계를 좀 더 긴밀하게 구성했다. 또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사회적 이해관계의 역학을 ‘리처드의 몰락과 헨리의 상승’으로 단순화했다. 상반된 두 통치자는 각각 왕권의 정통성과 정치적 정당성을 대변한다.
작가의 역사관은 무엇인가?
셰익스피어 사극 전반을 조망하는 입장에서 현대 학자들은 작가가 왕권의 정통성을 강조한 당대 지배 사관을 작품에 투영했다고 주장한다.
당대 지배 사관이란?
정통의 왕 리처드 2세를 폐위한 일이 이후 한 세기 동안 영국을 참혹한 내란으로 내몬 원죄가 되었다고 보았다. 아무리 실정을 펼친 왕이라도 신으로부터 위임받은 지상의 통치권을 신하가 침탈할 수 없다는 왕권신수설에 따른 입장이다.
정치적 정당성의 입장에서 보면?
이 작품은 왕권신수설의 전복 가능성과 왕위 찬탈의 정당성 측면에서 읽히기도 했다. 이런 사실은 이른바 에섹스 반란에서 잘 드러난다.
에섹스 반란 때 무슨 일이 있었나?
엘리자베스 1세의 총신 에섹스 백작은 여왕의 강제 양위를 목표로 봉기하면서 셰익스피어의 극단에 이 작품의 전 장면을 상연해 달라고 주문했다. 반란의 정당성을 런던 시민들에게 선전하기 위해서다.
에섹스 백작이 헨리에 기댄 것인가?
에섹스 일파의 봉기는 결국 실패하고 백작은 처형당했기 때문에 그가 자신을 ‘떠오르는 헨리’에 비견했을 거라는 사실은 추측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여왕이 자신을 ‘떨어지는 리처드’와 동일시했음을 보여 주는 일화는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속내는?
반란이 평정된 뒤 여왕은 한 측근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리처드 2세임을 정녕 그대는 모르는가?”
이 극의 예술적 성취는 어디서 오는가?
피상적으로 묘사되던 역사적 인물에게 두터운 인간적 부피를 입히고 깊은 심리적 음영을 새겼다. 사료에서 문제적 왕이었던 리처드 2세를 문제적 인간으로 그려 낸 것이다. 리처드 2세의 마지막 독백에는 인간 실존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비극적 인식이 드러난다.
셰익스피어에게 실존이란 무엇인가?
“왕위를 찬탈당해 영락해 버린 나 (…) 내가 무엇이 되든, 나 자신이든 아니든, 인간인 바에야 그 무엇에도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철저하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 이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기 전까지는.”
당신은 누구인가?
강태경이다.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