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생
내가 사건 현장을 탐방하는 과정에서 오직 두 사람만이 ‘사건’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둘은 모두 사이더커인이었고, 마찬가지로 모두 타이베이의 일류 대학에서 교육을 받은 엘리트 원주민이었으며, 마찬가지로 부락에서 상응하는 권위를 갖춘, 마찬가지로 중년에 접어든 사람들이었다. 촨중다오의 사이더커 다야(達雅)인 바간(巴幹)은 역사가 우서 사건의 본질을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건의 본질은 머리 사냥이라는 전통 행위에 있습니다.”
≪여생≫, 우허 지음, 문희정 옮김, 10~11쪽
어떤 사건을 이야기하는가?
우서 사건이다. 1930년 타이완 난터우 현 우서에서 일어난 원주민 타이야족의 반일 투쟁이다.
사건의 계기는 무엇인가?
마허포 마을의 두목인 모나 루다오의 장남과 일본 순사 사이에서 벌어진 다툼이다. 이로 인해 두목의 아들이 곤경에 처하자 가뜩이나 불만에 차 있던 부락 사람들이 들고일어났다. 부족 내의 여러 마을도 뜻을 같이했다.
무엇 때문에 불만을 품었는가?
원주민 노동력 착취, 원주민 여성과 일본인의 혼인 문제, 마허포 두목과 일본 통치자의 갈등이다.
언제 어떻게 들고일어났나?
1930년 10월 27일 우서 지역 최대 규모의 운동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운동회에 참가한 일본인 200여 명을 죽이거나 부상을 입혔다.
일본은 어떻게 대응하나?
현대식 무기와 독가스를 동원해 대규모로 진압했다. 타이야 전사들이 쓰러졌다. 여인들은 자식을 죽인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망자는 총 644명이었다.
사건은 그렇게 종결되나?
다음 해 4월, 2차 사건이 발생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
항복한 타이야인 500여 명이 수용소에 모여 있었다. 일본군은 이들과 원한 관계에 있던 다오쩌인을 동원했다. 수용소에 있는 노약자를 죽이고 머리를 잘라 오면 돈으로 교환해 주었다. 200여 명이 무참히 살해되었다.
살아남은 이들은 어떻게 되나?
촨중다오로 강제 이주를 당했다. 계속되는 감시와 처벌 때문에 인구도 크게 줄었다.
‘나’는 왜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나?
기존 사료는 주로 일본 학자들이 수행한 조사와 평가의 결과물이었다. 뒤이어 대륙에서 온 통치자가 이를 승인하면서 사건의 지위가 확정되었다. 여기에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없었다.
사료는 사건을 뭐라고 정의하나?
일본 통치자의 음모와 선동으로 오랑캐가 오랑캐를 죽이는 참혹한 비극이 일어났다고 한다.
직접 들은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무엇인가?
‘머리 사냥’의 일종이라 생각한다. 다른 부족의 머리를 잘라 사냥꾼이자 전사임을 인정받는 전통 풍습이다. ‘학살’의 관점이 아니다.
우허는 누구인가?
타이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한 명이다. 1975년 등단한 뒤 한창 문단의 주목을 받다가 1979년 늦은 나이로 입대했다. 제대와 동시에 단수이의 작은 마을로 들어가 1991년까지 은둔했다.
문학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천팡밍은 그가 본토파가 아니지만 동년배 작가들보다 훨씬 본토적이고, 사실주의자는 아니지만 동세대 작가들보다 더욱 사실적이며, 모더니즘 작가는 더더욱 아니지만 그의 표현은 모더니즘의 극치라고 평가한다. 예스타오는 타이완 역대 민중의 삶의 맥락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작가라고 한다.
당신이 이 작품을 번역하면서 겪은 어려움은?
복잡한 퍼즐과도 같은 문자 사이를 끝없이 헤맸다. 원문은 단락 구분 없이 첫 글자부터 마지막 글자까지 한 호흡으로 이어져 있다. 문장과 문장은 거의 다 쉼표로만 구분되어 해독에 가까운 읽기를 요했다. 원문의 독특한 문체와 풍부한 함의를 최대한 살리면서 정확성과 가독성을 갖추어야 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문희정이다. 부산대학교 현대중국문화연구실에서 활동한다.
2800호 | 2015년 11월 19일 발행
테러, 인류의 그림자
문희정이 옮긴 우허(舞鶴)의 ≪여생(餘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