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애 동화선집
추석 특집: 가족 1. 대한민국 엄마의 절망과 희망
이미애가 짓고 황혜순이 해설한 ≪이미애 동화선집≫
엄마의 거짓말
아이는 부모의 미래다. 과거나 현재가 아니다. 알 수 없고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진실을 감추면 아이는 부모의 현재가 된다. 어른의 거짓이 아이에게 전염되기 시작한다.
“하영아.”
“예.”
“선생님께 무슨 할 말 없니?”
“없는데요.”
“다이어리는 왜 가져갔니?”
“무슨 다이어리요.”
이왕 이렇게 된 것, 하영이는 처음에 결심했던 대로 딱 잡아떼기로 했습니다.
“인석아. 알잖니? 송희 다이어리 말이다. 네 가방에서 나왔는데 왜 잡아떼니?”
“무슨 말씀이세요. 전 모르는 일이에요. 송희가 몰래 내 가방 안에 넣어 놓은 건지 선생님이 어떻게 아세요.”
“뭐?”
선생님이 기가 찬 목소리로 되물었습니다.
“어쨌든 전 모르는 일이에요. 선생님이 보셨어요? 제가 송희 다이어리 제 가방에 넣는 걸요.”
하영이가 하도 완강하게 나오자 선생님은 오히려 당황해했습니다.
<아이들의 거짓말>, ≪이미애 동화선집≫, 이미애 지음, 황혜순 해설, 45∼46쪽
하영이는 왜 훔쳤나?
순간적인 충동이었다. 꼭 필요하지 않아도 갖고 싶은 건 가져야 한다는 작은 욕심에서 자질구레한 것들을 슬쩍하다 큰 것에 손이 갔다.
갖고 싶은 건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하영이는 엄마와 둘이 산다. 평소 딸에게 못해 주는 것이 많다고 느낀 엄마는 미안한 마음을 보상행동으로 풀려 했다. 하영이가 원하면 무리해서라도 사 주었다. 허영심과 욕심만 키웠다.
허영과 욕심이 자라면 무엇이 되는가?
거짓의 불꽃이 자아를 불사른다. 여기에 엄마의 거짓말이 기름을 부었다.
엄마의 거짓말은 무엇인가?
하영이 아버지는 죽었다. 엄마는 아버지가 미국에 계신다고 하영에게 거짓말을 했다. 하영이는 부자처럼 행동하려 했고 거짓말은 점점 더 늘었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었는가?
엄마가 용기를 낸다. 하영에게 사실을 말하고 부탁한다. 하영은 용기를 내어 친구들에게 진실을 고백하고 사과한다.
당신의 거짓말 연작에는 어떤 거짓말이 등장하는가?
2부 <우람이의 거짓말>에서 우람이는 쪽지 시험 채점을 틀리게 했다는 누명을 쓴 뒤로 엄마 몰래 태권도 학원비를 빼내서 피시방으로 겉돈다. 3부 <유리의 거짓말>에서 유리는 엄마에게 칭찬받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 나머지 시험 답을 고쳐서 성적을 위조한다.
아이들이 왜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인가?
원인은 엄마다. 우람이 엄마는 평소 공부 잘하는 중학생 형과 우람이를 비교한다. 유리 엄마는 학창 시절 공부를 잘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아이에게 투사해서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강했다.
엄마 비판 동화가 어린이에게 받아들여지는가?
지극히 한국적인 어머니들의 전형이다. 아이들이라고 모르지 않는다. 부정적인 모습만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 엄마의 긍정은 무엇인가?
갈등이 표면에 드러났을 때 상황을 직면하고 반성하며 개선하려 노력한다. 현실을 부정하거나 아이들을 혼내는 짓으로 추락하지 않는다.
비판 동화가 해피엔드인 것은 모순 아닌가?
어린이의 거짓말을 소재로 했기 때문에 해피엔드로 가져갔다. 거짓말의 원인이 아이들 자신이 아니라 주위 환경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되었을 때의 순정한 기쁨을 꽃다발처럼 안겨 주고 싶었다.
동화에서 해피엔드의 기능은 뭔가?
모든 동화가 해피엔드여야 할까? 필요하면 현실을 그대로 보여 주는 괴로운 결말도 필요하다. 거기서 배우고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을 동화에 담으면 된다. 다만 아이들에게는 행복한 결말이 더 큰 만족감을 줄 수는 있겠다.
당신의 작품에서 엄마와 할머니의 의미는 뭔가?
모성애다. 아이들이 언제든 뛰어들 수 있는 품속의 느낌을 전하기 위해 엄마와 할머니를 자주 등장시켰다.
엄마와 할머니가 아늑한 모성이 아닌 아이들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서는 어떻게 할지 고민 중이다. 어릴 때부터 넉넉한 모성의 혜택을 받지 못한 아이들에게 또 다른 삶의 빛을 보여 주고 싶다.
동화는 아이들에게 무엇인가?
‘사회적 부모’다. 좋은 동화, 그 속의 주인공과 친구들이 그런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언제부터 글을 썼나?
1987년 대학 2학년 겨울에 ≪조선일보≫ 신춘문예와 ≪대구매일≫ 신춘문예 동시 부문에 동시 당선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초등학교 졸업 무렵 동생의 동시와 내 산문을 엮은 책 ≪꿈초롱 둘이서≫가 나왔다. 텔레비전 다큐멘터리가 되었고 뒤에 최현묵 감독이 찾아와 영화로도 만들었다.
독자는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나게 되는가?
사춘기 직전 아이들의 성장통에 관한 소년소설을 계속 쓸 생각이다. 이성 문제, 사춘기 직전 아이들의 내부 권력 구조, 외모, 우정은 그 또래 아이들에게는 우주와도 맞바꿀 만큼 중요한 문제다. 환경 문제와 대안 찾기도 꾸준히 천착할 주제다. 뭐가 됐든 좀 더 밑으로 내려가고 싶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미애다. 동화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