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현 사집
무산일단운(巫山一段雲)
소상팔경 강천모설(瀟湘八景 江天暮雪)
風緊雲容慘, 바람 급해지고 구름 모습 어둡더니
天寒雪勢嚴. 날씨 차가워지며 눈발이 매섭구나.
篩寒洒白弄纖纖. 보슬보슬 차가움을 체로 쳐 흰 빛을 흩뿌려서
萬屋盡堆鹽. 만 채의 지붕에 모두 소금이 쌓이게 하네.
遠浦回漁棹, 먼 포구에 고깃배 돌아오고
孤村落酒帘. 외로운 마을에 술집 깃발 내려졌네.
三更霽色妬銀蟾. 한밤중 눈 그친 풍경이 은빛 두꺼비를 질투하기에
更約掛疏簾. 다시 성긴 발을 묶어 걸어 놓네.
≪이제현 사집≫, 이제현 지음, 김수희·김지현·김하늬·임도현 옮김, 112~114쪽
이제현은 누구인가?
고려 후기 문신이자 학자다. 호는 익재(益齋)와 역옹(櫟翁)이다. 1287년 태어나 1367년 사망했다. ≪익재난고(益齋亂藁)≫와 ≪역옹패설(櫟翁稗說)≫이 전한다.
소상팔경이란 무엇인가?
중국 후난성 소수(瀟水)와 상수(湘水) 근처의 여덟 가지 명승이다. 송대 송적(宋迪)이 그린 산수화 여덟 폭에 후인들이 제목을 붙이고 이를 ‘소상팔경’이라 한 데서 비롯했다.
무엇이 팔경인가?
평사낙안(平沙落雁), 원포귀범(遠浦歸帆), 산시청람(山市晴嵐), 강천모설(江天暮雪), 동정추월(洞庭秋月), 소상야우(瀟湘夜雨), 연사만종(烟寺晩鐘), 어촌석조(漁村夕照)다.
그림은 어떻게 문학이 되었나?
북송의 시승(詩僧) 덕홍이 율시와 절구로 읊은 이래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읊은 제화시(題畵詩)와 소상팔경을 읊은 시가 수없이 창작되었다.
원나라 때까지도 소상팔경이 계속 인기를 끌었나?
소상팔경은 북송의 문화다. 남송 때는 서호십경, 원대에는 연경팔경이 유행했다.
이제현은 왜 소상팔경을 택했나?
당시 고려에서 소상팔경 문화가 한창 유행했기 때문이다.
고려의 유행은 어떻게 전개되었나?
명종 15년 3월 문신들에게 소상팔경 시를 짓게 하고 그에 따라 그림을 그리게 한 것이 시작이다. 이인로의 7언 절구 <송적의 팔경도(宋迪八景圖)> 8수, 이규보의 7언 절구 <이 평장의 건주팔경시에 차운하다(次韻李平章虔州八景詩)> 16수, <이 상국이 건주팔경에 다시 화답해 보낸 시에 차운하다(次韻李相國復和虔州八景詩來贈)> 8수가 있다.
이제현이 지은 소상팔경 사의 특징은 무엇인가?
제목마다 두 수씩 모두 16수를 지었다. 앞의 8수는 객관적인 풍경을 묘사하고 뒤의 8수는 감정을 드러낸다. “시에 가까운 것”이 되었다는 평을 받는다.
어떤 점이 시에 가까운가?
감정을 표현한 8수는 시의 선경후정(先景後情) 방식을 활용했다. 또한 경물 묘사와 감정 표현이 어우러진다는 점에서 시의 정경교융(情景交融)의 미학을 찾아볼 수 있다.
사는 시와 다른가?
사는 음악이 수반되는 노래가사에서 비롯했다. 성당(盛唐) 시기부터 민간 가요로 유행했다. 송대에 비로소 사대부 문학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노래 제목에 해당하는 사패(詞牌)에 따라 행 수, 글자 수, 평측, 압운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다.
우리나라에는 언제 어떻게 들어왔나?
고려 예종 9년에 송 휘종이 속악의 신악기와 악보를 전해 주었고, 11년에 아악인 대성악(大晟樂)을 전해 주었다. 그 악보에 안수, 구양수, 유영, 소식 같은 북송 사인의 사 작품이 실렸다.
창작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당악 전파보다 조금 먼저다. ≪고려사≫에 따르면 13대 선종이 <하성조(賀聖朝)>를 지었고 16대 예종도 여러 차례 사를 지어 신하들에게 선사했다. 작품은 전하지 않는다.
이제현의 사는 몇 수인가?
모두 54수다. 그중 한 수는 제목만 전한다. 현전하는 고려 사의 절반 이상이다. 활용한 사조도 15조로 다양하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사를 지은 계기는 무엇인가?
연경 시절 만권당(萬卷堂) 활동이다. 요수, 염복, 조맹부, 장양호, 우집 등 유명한 문인들과 교유하면서 사에 익숙해지고 창작의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만권당은 무엇인가?
충선왕이 원나라 수도 연경의 사저에 세운 독서당이다. 양위한 이듬해인 1314년 만권당을 세우고 이제현을 불렀다.
이제현 사에 대한 평가는 어떠한가?
사 비평으로 유명한 청대 학자 황주이는 “북송과 남송 명가의 사 중에 두어도 손색이 없다”고 평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수희다. 서울대 중어중문학과에서 김지현, 김하늬, 임도현과 사 원전을 읽고 번역하고 연구하는 모임을 함께한다.
2828호 | 2015년 12월 22일 발행
김수희·김지현·김하늬·임도현이 옮긴 ≪이제현 사집(李齊賢詞集)≫
강 하늘에 저녁 눈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