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생활자의 수기 천줄읽기
도스토옙스키가 천재인가?
러시아 문학 5-2. 김정아가 뽑아 옮긴 도스토옙스키(Фёдор М. Достоевский)의 ≪지하생활자의 수기(Записки из подполья) 천줄읽기≫
도스토옙스키가 천재인가?
단순한 소설이 아니다.
철학, 종교학, 인류학, 사회학, 심리학의 영원한 연구 대상이다.
세속의 삶에서 신의 세계를 본 천재의 작품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언제나 지금, 이곳에서 부활한다.
“하지만 어쨌거나 2×2=4라는 놈은 참을 수가 없는 존재다. 내 생각에 2×2=4는 정말이지 파렴치한 놈이다. 2×2=4라는 놈은 아주 뻐기는 듯이 양손을 허리에 떡 얹고 여러분을 바라보며, 그렇게 여러분의 앞길을 떡 가로막고 서서 침을 퉤퉤 뱉고 있다. 2×2=4라는 놈이 꽤나 괜찮은 녀석이라는 데는 나도 동의하지만, 뭐, 이렇게 된 바에야 이것저것 아무거나 칭찬을 못할 게 없으니 2×2=5도 때로는 꽤나 사랑스런 녀석이 아닐까 싶다.”
≪지하생활자의 수기 천줄읽기≫,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정아 옮김, 87~88쪽
도스토옙스키에게 ≪지하생활자의 수기≫의 좌표는 어디인가?
전기와 후기를 구분하는 전환점이다. 자신의 과거 작품에 대해서 거부의 태도를 분명히 하고 이후 대작들에 대해서는 철학적 서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이루어진 문학적·철학적·윤리적·세계관적 발견들은 이후 도스토옙스키가 창작하게 될 모든 대작들의 뼈대를 이루는 내적 근거가 되었다.
당신은 언제 이 남자를 처음 만났나?
고등학교 3학년 때다. 학력고사가 끝나고 ≪죄와 벌≫을 읽었는데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무엇 때문이었나?
선과 악에 대한 도스토옙스키 특유의 관념과 악에 대한 치유법이 놀라웠다. 작가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개인사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애착을 일관되게 표현하는 점도 매력이었다.
그의 문학은 무엇인가?
다성악적 소설이다.
다성악이 뭔가?
단성적이고 교훈적인 목소리가 아니라 많은 목소리, 서로 다른 여러 자아들이 작품 속에서 서로 부딪치고 공명한다는 말이다.
그의 대표작은 무엇인가?
4대 장편, ≪죄와 벌≫,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다. 그의 전 작품에서 찾을 수 있는 테마들을 가장 폭넓고 깊이 있게 다뤘다. 이 네 작품이 다른 모든 작품을 아우른다.
4대 장편의 주제는 뭔가?
당대 러시아를 지배한 공리주의나 무신론 등 서구 사상의 위험에 대한 경고다. 러시아 정교와 러시아인에 대한 믿음과 끊임없는 사랑도 있다. 또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켜 내고 살아 내야 하는 삶의 소중함에 대한 신념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어떤 인간인가?
비현실을 넘어서 반현실적인 인물이다. 인간 도스토옙스키는 작가 도스토옙스키와는 전혀 달랐다. 먹고사는 것이 기본인데 돈을 경멸했다. 그의 작품에서 돈을 사랑하는 현실적 인물들이 어떻게 묘사되는지를 보면 알 것이다. 남의 부탁을 거절할 줄 모르고 가짜 빚쟁이들에게도 돈을 주며 책임질 필요 없는 친척을 부양했다. 게다가 심한 간질을 앓았고 ≪도박사≫에도 나오듯 심각한 도박 중독증이었다.
이런 인간이 어떻게 명작을 쓸 수 있는가?
두 번째 아내 안나의 내조 덕이다. 채무자들에게 시달리는 그에게 심리적 안정을 주기 위해 없는 돈을 긁어모아 4년간 외국으로 피신 여행을 보낸다. 이후로도 그가 창작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골치 아픈 경제적, 현실적 문제들은 모두 그녀가 처리했다.
안나의 헌신은 어디서 비롯하는 것인가?
천재의 오라와 현실의 갭 때문이 아닐까? 나는 최근 사르트르에 관심이 생겼다. 시몬 보부아르처럼 예쁘고 똑똑한 여자가 어째서 그토록 못생기고 키도 작고 사팔뜨기에 시니컬한 남자를 평생 사랑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그의 저서를 읽은 후 역시 그것은 천재성이 주는 오라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안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도스토옙스키가 천재인가?
천재다. 작품을 보라. 그 내용의 깊이를 보라. 그만큼 풍부하고 복잡하고 깊은 내용을 다룬 작가가 있었는가? 그는 세속적인 삶에서 신의 세계와 신의 의도를 보았고, 하나의 현상 속에서 다양한 감정과 사고의 격정을 보았다. 신과 인간, 자유 의지, 선과 악, 책임, 추상적 인류에 대한 사랑과 뼈와 살로 된 이웃에 대한 사랑, 사회주의와 무신론, 그리스도교와 신에 대한 사랑, 영원과 불멸, 미, 인간적인 사랑으로서의 열정과 신적인 사랑인 연민, 이 모든 문제가 작품에 담겨 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소설이 아니다. 철학, 종교학, 인류학, 사회학, 심리학 등 모든 학문 분야에서 연구되며, 시간과 공간을 넘어 언제나 현재화한다.
그는 무엇으로 글을 썼나?
상징이다. 그가 사상범으로 감옥에서 지내는 동안 유일하게 허용된 책이 성경이었다. 그의 작품은 방대한 성경적 상징, 또 그 성경적 상징을 개인적으로 발전시킨 묵시록적 상징이 넘쳐 난다.
어떤 상징인가?
≪죄와 벌≫에 드러나는 성경적 상징 중 숫자 4를 살펴보자. 라스콜리니코프는 소냐와 함께 요한복음을 읽는다. 죽은 지 4일 만에 부활하는 나사로 이야기다. 이때 소냐는 이 책을 요한복음이라 하지 않고 제4복음이라 부른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4를 강조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그녀는 이 나흘이라는 단어를 특히 힘주어 읽었다.” 구조적으로도 이 작품은 4장 4부에 있다. 작가는 이 4라는 숫자를 통해 나사로와 라스콜리니코프의 상징성을 강조한다.
라스콜리니코프도 부활한다는 것인가?
그렇다. 정신적으로 부패하고 죽어 있던 그가 시베리아 유형을 통해 정신적으로 부활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 4는 뭔가?
4는 그가 ‘관’이나 다름없는 배덕의 도시 페테르부르크를 떠나 부활의 땅 시베리아로 향하는 데 걸린 시간이기도 하다.
시베리아가 부활의 땅인가?
러시아 종교사에서 시베리아는 상징적인 순교의 공간이며 고통을 통한 구원의 공간이다. 또 서구주의자였던 도스토옙스키가 민족주의자이자 기독교 작가로 거듭난 것도 4년간의 시베리아 수용소 생활을 통해서였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소냐와 함께 시베리아의 길을 선택하는 것처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드미트리도 그루셴카와 함께 기꺼이 시베리아행을 받아들인다.
시베리아의 반대편에는 무엇이 있는가?
서구 문물을 대표하는 아메리카다. 그의 작품에서 아메리카와 연관되는 이는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한다. ≪죄와 벌≫의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아메리카로 도망할 것을 제안하지만 결국 자살한다. ≪악령≫에서 동료들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샤토프와 자살을 종용당하고 결국 그로테스크한 죽음으로 삶을 마감하는 키릴로프, 둘 다 미국에서 여러 달을 살다 왔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드미트리에게 아메리카로 도망가기를 권한 이반은 섬망증에 걸려 죽음을 목전에 둔다.
당신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상징은 무엇인가?
지옥에 대한 상징이다. ≪죄와 벌≫의 스비드리가일로프가 말하는 지옥의 묘사가 매우 독특해 기억에 남는다. 연기가 가득하고 거미줄이 여기저기 쳐진 목욕탕 같은 지옥이다. 바로 이런 곳에서 마지막 장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악마의 자식 스메르댜코프가 태어난다.
당신은 도스토옙스키를 어떻게 번역하는가?
그의 작품은 상징과 비유로 가득하다. 작품을 깊이 이해하지 않으면 번역할 때 이런 심오한 의미들이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번역을 시작하기에 앞서, 작품에 대한 공부를 다시 한다. 머릿속으로 테마와 상징들에 대해 제대로 이해했다고 여겨질 때, 비로소 번역을 하기 위해 원서 앞에 앉는다.
당신에게 도스토옙스키는 누구인가?
영원한 연인이다. 가끔은 지드나 히친스, 쿤데라에 빠지기도 하지만, 언제나 다시 그에게 돌아간다. 아직도 그의 쑥 들어간 두 눈, 움푹 팬 두 볼에 가슴이 사정없이 뛴다. 그를 만나면 그와 그의 작품이 있어 줘서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내 커다란 행복의 원천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정아다. 일리노이대학교에서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 나타난 숫자와 상징>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