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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상록수

z20121225-1

초판본 한국소설, 지만지 한국소설문학선집 신간 ≪상록수≫

요샛말로 이데오르기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를 못살게 구는 적이, 고처 말슴하면 원수가 어디 잇는 줄 아십니까? 하고 나서 무슨 범인이나 찾는 듯한 눈초리로 청중을 둘러본 뒤에 손가락을 펴들어 저의 머리통을 가르치며 그 원수가 이 속에 들엇습니다. 절망과 탄식! 이것 때문에 우리는 두 눈을 벌거니 뜬 채로 피를 뽑히구 잇는 겝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온갖 행동의 원동력이 되는 정신, 요샛말로 이데올로기 문제였다.

“눈 뜬 소경에게 글자를 가르처주는 것은 두말헐 것 없이 필요헙니다. 계몽운동이, 우리에게 잇어서, 가장 시급헌 사업 중의 하나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땅의 지식 분자인 우리들이, 이러헌 기회에 전 조선의 농촌, 어촌, 산촌으로 방방곡곡이 파구 들어가서, 그네들과 똑같은 생활을 허면서 ‘어떡허면 그네들이 그 더헐 수 없이 비참헌 생활에서 벗어날 수가 잇슬까?’ 허는 문제를 머리를 싸매구서 생각해 봐야 헙니다. 지금부터 六七十 년 전 로서아의 청년들이 부르짖던 브·나로드(민중 속으로라는 말)를 지금 와서야 우리가 입내 내듯 하는 것은, 더헐 수 없이 슬프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러치만 우리는 남에게 뒤떨어진 것을 탄식만 할 것이 아니라, 높직이 앉어서 민중을 관찰하거나 연구의 대상(對象)으로 삼으려는 태도를 단연히 버리고, 그네들이 즉 우리 조선 사람이, 제 힘으로써 다시 살어나기 위한, 그 기초 공사를 해야겟습니다! 오늘 저녁 이 자리에 모인 바루 여러분의 손으로 시작해야겟습니다! 물질로 즉 경제적으로는 일조일석에 부활하기가 어렵겟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것을 지배하고, 온갓 행동의 원동력이 되는 정신―요샛말로 ‘이데오르기’를 통일하기 위해서 전력을 기우려야 하겟습니다!”
하고 말끝마다 힘을 주다가 잠시 무엇을 생각하더니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를 못살게 구는 적(敵)이, 고처 말슴하면 원수가 어디 잇는 줄 아십니까?” 하고 나서
그는 무슨 범인이나 찾는 듯한 눈초리로 청중을 둘러본 뒤에 손가락을 펴들어 저의 머리통을 가르치며
“그 원수가 이 속에 들엇습니다. ‘아이구 인젠 죽는구나’ ‘너 나 헐 것 없이 모조리 굶어 죽을 수밖에 없구나’ 하는 절망과 탄식! 이것 때문에 우리는 두 눈을 벌거니 뜬 채 피를 뽑히구 잇는 겝니다. 그런 지레짐작 즉 선입관념(先入觀念)이 골수에 박혀 잇는 까닭에 우리가 피만 식지 않은 송장 노릇을 헌다구 해두 과언이 아닙니다. 그야 천치 바보가 아닌담에야 우리의 현실(現實)을 낙관헐 수야 없겟지요. 덮어놓구 ‘기운을 차려라’ ‘벌떡 일어나 다름박질을 해라’ 허구 고함을 질르며 채죽질을 헌대도 멫백 년이나 앓은 중병환자가 벌떡 일어나지야 못허겟지요. 그러치만 우리가 꼭 한마디 이 머릿속에 새겨둘 말이 잇습니다. 좀 막연허긴 허지만 ‘一개인이나 한 민족이 히망의 정신만 잇으면 결국은 다시 일어나구야 만다!’―이 간단한 표어(標語) 한마디가, 우리보다 못허지 않은 처지에 빠젓든 ‘덴마−크[丁抹]’의 국민을 오늘날과 같이 다시 살려놧습니다!”
하고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며, 혀끝으로 불을 뿜는 듯한 열변에, 회장은 유리창이 깨여질 듯한 박수 소리가 일어낫다. 동시에 여기저기서
“옳소―”
“그럿소―”
하는 고함과 함께
“그건 탈선이오.”
하고 반박하는 소리가 들렷다. 그 소리를 듣자, 동혁은 눈고리가 실쭉해지더니
“어째서 탈선이란 말요?”
하고 눈을 커다라케 부릅뜨며, 목소리가 난 편짝을 노려보는 판에, 사회자는 동혁의 곁으로 가서 무어라고 귓속을 한다.
“중지시킬 권리가 없소―”
“말해라! 말해!”
이번에는 발을 굴르며 사회자를 공박하는 소리로 장내가 물 끓듯 한다.

≪상록수≫, 심훈 지음, 박연옥 엮음, 13~16쪽

소설의 어느 대목인가?
박동혁이 계몽운동 소감을 밝히면서 연설하는 대목이다. 작가의 속뜻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뜻이 이뤄지려면 정치 논리가 어쩔 수 없이 끼어들게 된다. 그러나 계몽운동에 정치 논리가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건 탈선이오”라고 반박한다. 예나 지금이나 “이데오르기(이데올로기)”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보이는 이들은 어디에나 있는 것 같다.

지만지 ≪상록수≫의 특징은?
신문 연재 당시의 맞춤법 그대로다. 소제목들 역시 그대로다.

당시 흔적은 어떻게 남아 있나?
신문사 실수 때문에 등장한 정정 기사를 각주로 실었다.

지금까지 출판되었던 ≪상록수≫와는 무엇이 다른가?
심훈은 신문 연재 종료 후 한성도서주식회사에 기거하며 교정을 보다 1936년 9월 16일 장티푸스로 급서했다. 한성도서 측은 심훈이 남겨 둔 교정 원고로 책을 냈다. 지금 시중에 있는 여러 ≪상록수≫는 이 한성도서판으로 만든 것이다. 지만지에서는 처음 발표된 신문 연재본 그대로 책을 냈다.

옛날 신문 연재 소설을 편집하자면 고충이 적지 않았을 텐데?
신문 텍스트가 오래돼 판독이 힘든 글자가 있다. □□로 처리했다.

시대 상황은?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이다. 문맹 퇴치, 브나로드 운동이 한창이었다.

≪동아일보≫의 역할은?
‘학생 브나로드 운동’을 추진하면서 창간 15주년 기념 현상 소설을 공모했다.

공모 지침은?
‘농어산촌을 배경으로 하여 조선의 독자적 색채와 정조를 가미할 것, 인물 중 한 사람쯤은 조선 청년으로서 명랑하고 전위적인 성격을 설정할 것’이었다. 심훈의 ≪상록수≫가 뽑혔다. 1935년 9월 10일부터 1936년 2월 15일까지 신문에 연재됐다.

상금 500원은 어느 정도 돈인가?
당시 일반 회사원 월급의 10배였다.

비슷한 계열의 당시 작품은 어떤 것이 있나?
민족주의로 이광수의 ≪흙≫과 계급주의로 이기영의 ≪고향≫이 있다.

심훈의 문학은 ‘3·1운동의 기억학’인가?
경성제1고등보통학교 3학년 때 3·1운동에 가담해 6개월 간 옥고를 치르고 퇴학 당했다. 옥중 기억이 반영된 <찬미가에 싸인 영혼>, 광주학생운동 이야기를 다룬 ≪불사조≫, 노동운동 이야기를 다룬 ≪영원의 미소≫ 등은 모두 감옥 체험과 동지적 결합 모티브의 작품들이다.

심훈 계몽작품의 특징은?
‘영웅적 인물의 출현’이라는 다소 낭만적인 해결 방법이다. 예컨대 박동혁은 마을 사람들의 최대 고민인 빚 탕감 문제를 오직 혼자서 해결해낸다.

영웅은 어떤 문제가 있는가?
마을 사람들이 단순한 계몽 대상에 그친다. 고전소설로 후퇴한 느낌마저 든다.

어디까지 후퇴인가?
영웅적인 인물이 평면적으로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중적 성공이 가능했을까?
영화 요소 때문이다. 당시에는 “조선 영화처럼 조선 사람의 애호를 받는 것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화가 대유행이었다.

작품에 나타난 영화 요소는 어떤 것인가?
평행 편집, 곧 몽타주 기법이다. 박동혁·채영신의 활동상과 서로를 향한 연애 감정을 한곡리와 청석골이라는 두 공간으로 분리해서 교차 진행해 나간다. 영화에 어울리는 영웅 과제 수행담, 성공담, 연애담이 담긴 것 또한 성공 요인이다.

심훈과 영화는 어떤 관계인가?
1927년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제작, 개봉해서 꽤 흥행했다.

소설 흥행에 연애담의 기여도는?
심훈의 소설에는 ‘동지적 사랑’이라는 연애담이 자주 등장한다. 이 소설에서는 박동혁과 채영신의 ‘이상적 사랑’이라는 농촌 계몽소설적 윤리성 위에 ‘낭만적 사랑’이라는 당의정을 입혔다.

연애담을 어떻게 형상했나?
두 남녀 사이를 오가는 연애편지 형식의 인용문이 자주 제시된다. 남의 편지를 엿보는 듯한 분위기가 아기자기한 흥미를 유발한다.

연애는 성공하는가?
두 사람의 만남으로 시작된 소설은 한 사람의 때 이른 죽음과 남겨진 ‘최후의 한 사람’의 다짐에서 끝난다. 이들의 사랑은 미완(未完)으로 끝났지만, 역설적이게도 영원한 사랑이라는 신화로 재탄생한다.

검열의 흔적은?
신문 연재 당시 소제목 가운데 ‘반역의 불길’, ‘내 고향 그리워’라는 대목들이 있었다. 이는 나중에 단행본으로 나오면서 ‘이별’, ‘이역의 하늘’로 바뀌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박연옥이다. 경희대학교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한다. 2007년에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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