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란기
이잠부李潛夫의 <<회란기灰闌記>>
가장 오래된 인류의 공통어
<<회란기灰闌記>>는 13세기 당시 중국에서 전해지던 ‘두 여인의 한 아이 다툼’ 이다. <열왕기>의 솔로몬 왕 이야기나 <≪코란경≫의 술레이만 왕 이야기와 같다. 친권 다툼에서 자식의 고통 때문에 권리를 포기한 생모가 결국 승리한다는 줄거리다. 모성애는 시공을 떠나 만인을 움직이는 인류 공통어다. 1848년 브레히트는 <<회란기>>를 각색해 <코카서스의 백묵원>을 상연했다.
포 대제 거기 있는 여인아, 이 아이가 누가 낳은 아이인가?
마 부인 제가 낳은 아이입니다요.
포 대제 거기 이웃과 산파들, 이 아이는 누가 낳은 아이인가?
사람들 정말 큰부인이 낳은 아이입니다요!
포 대제 (…) 이 안건은 이렇게 처리하는 수밖에…. 장림을 불러라!
(손짓을 하자 장림이 나왔다가 퇴장한다.)
포 대제 장천아, 석회를 가지고 와서 섬돌 아래에 동그라미를 그린 다음 이 아이를 그 안에 세우고 저 두 여인이 아이를 금 밖으로 끌어당기게 하라. 만약 자신이 낳은 자식이라면 끌어낼 수 있겠지만 자신이 낳지 않았다면 절대로 끌어내지 못할 것이다!
장천 알겠사옵니다!
(석회로 동그라미를 그리고 아이를 세운다.)
(마 부인이 아이를 동그라미 밖으로 끌어당긴다.)
(장해당은 끌어당기지 못한다.)
포 대제 아예 동그라미 밖으로 끌어당기지 못하는 걸 보니 역시 이 아이가 친자식이 아닌 게로군! 장천아, 장해당을 끌어내려 매우 쳐라!
(장천이 장해당을 때린다.)
포 대제 장해당, 내가 보았더니 너는 아이를 잡아당길 때마다 전혀 힘을 쓰지 않더구나? 장천아, 굵은 몽둥이를 골라서 치렷다!
장해당 바라옵건대 나리께서는 벼락같은 분노를 삭이시고 범, 이리 같은 위세를 거두소서. 쇤네는 마 원외님에게 출가한 후에 이 아이를 낳았나이다. 열 달 동안 아이를 배고 3년 동안 젖을 먹이면서, 쓴 건 삼키고 단 걸 뱉어 먹이고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누이며, 온갖 고생을 다 해서 키워 이제야 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그런 아이를 가운데에 놓고 두 사람이 필사적으로 끌어당긴다면 몸이 상하게 될 게 뻔합니다. 아이가 어려서 팔이 비틀어져 부러질지도 모르지요. (…) 나리께서 쇤네를 때려죽이신다 해도 완력을 써서 무리하게 아이를 동그라미 밖으로 끌어낼 수는 없사옵니다! 그저 나리께서 불쌍히 여겨 주시기만 바랄 따름이옵니다! (노래한다.)
<괘옥구(掛玉鉤)>*
그토록 사랑하는 이 친어미가 차마 어찌 그럴 수가 있겠나이까?
(말한다.) 나리, 보십시오! (노래한다.)
이 아이의 팔은 삼대처럼 가늘답니다.
저년이야 정이라곤 없는 악독한 년이니 무슨 신경인들 쓰겠습니까?
나리는 어째서 그 속을 꿰뚫어 보지 못하십니까?
저년은 요행을 바라면서 억척스럽게 힘을 주지만,
쇤네는 착잡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나이다!
두 사람이 고집을 꺾지 않고 끝까지 앙버틴다면,
이 아이만 다치고 상하게 되고 말 겁니다!
포 대제 형법의 취지와는 거리가 있다 하나 그 심정은 이해가 가노라. 선현께서도 ‘행동을 보고 생각을 살피고 그 만족해하는 바를 관찰한다면 사람이 어떻게 숨길 수가 있겠는가? 사람이 어떻게 숨길 수가 있겠는가?[視其所以, 觀其所由, 察其所安, 人焉瘦哉? 人焉瘦哉?]’**라고 하지 않으셨더냐? 보아라! 석회로 그린 이 동그라미 하나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엄청난 진실을 담고 있었노라! 저 여인은 처음부터 마균경의 재산을 차지하려는 속셈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이 아이를 빼앗으려고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우여곡절을 다 거치고 나니 결국 누가 참이고 누가 거짓인지가 새삼 말하지 않아도 자명해졌느니라! (시를 읊는다.)
재산이 탐이 나서 자식을 빼앗으려 했지만,
석회 동그라미가 참과 거짓을 가려냈도다!
겉모습은 부드러워도 심보가 악독하니,
다정한 것도 따지고 보면 혈육뿐이로구나!
* 괘옥구(掛玉鉤): 곡패(曲牌)라 하는 것으로서, 창(唱: 노래)에 붙여 부르는 기성 곡조의 제목을 가리킨다. 이 대본에서는 창을 고딕체로 표시하여 대사와 구분 지었다. -편집자 주
** 행동을∼있겠는가?: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말. 여기서 ‘행동을 본다는 것[視其所以]’은 행위의 동기를 살피는 것을 말하고, ‘행동의 동기를 본다는 것[觀其所由]’은 행위의 발전 경로를 살피는 것을 말하며, ‘즐거워하는 바를 살핀다는 것[察其所安]’은 평소의 행위를 살피는 것을 말한다.
<<회란기>>, 이잠부 지음, 문성재 옮김, 111-115쪽
이잠부李潛夫, 13세기
중국 원대 희곡 작가. 자가 행도(行道) 또는 행보(行甫)로, 강주(絳州, 지금의 산시성 신장) 사람이다. 그의 생몰년이나 일생의 사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대략 1279년 전후에 창작 활동을 했으며 원나라 세조(世祖) 지원(至元) 연간(1264-94)까지도 생존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종사성(鍾嗣成)이 지은 ≪녹귀부(錄鬼簿)≫에서 그를 ‘선배로서 이미 별세하신 유명한 극작가들’로 분류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원대 잡극 초기에 활동했음을 알 수 있다. 명대 초기의 극작가 가중명(賈仲明)은 만가를 지어 그를 초야에 묻혀 자연과 벗하며 틈틈이 <<주역(周易)>>을 교열하며 먹고 사는 일에 초연한 ‘고매한 은자’로 기렸다. 전하는 작품은 <<회란기>>가 유일하다. 당시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통렬한 비판 정신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세심한 관심 등으로 비추어 볼 때 그가 은둔하기 전에 지은 작품으로 추정된다.
문성재
고려대학교에서 중문학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중국 희곡을 전공했다. 박사과정 이수 후 국비로 중국 남경대학교에 유학해 <<심경 극작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귀국 후에는 근대 중국어, 즉 당·송·원·명·청 시대의 조기백화(早期白話) 및 몽골어로 연구 범위를 확대해 서울대학교에서 <<원간잡극 30종 동결구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와 역서로는 <<중국 고전 희곡 10선>> <<고우영 일지매>> <<도화선>> <<경본 통속소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