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실라소 시전집
2554호 | 2015년 4월 23일 발행
신플라톤주의 사랑, ≪가르실라소 시전집≫
최낙원이 옮긴 가르실라소 데 라 베가(Garcilaso de la Vega)의 ≪가르실라소 시전집(Poesías de Garcilaso de la Vega)≫
신플라톤주의 사랑
가르실라소는 인간을 사랑한다.
플라톤주의는 여인을 멀리하지만
신플라톤주의에서 여인의 육체는
영혼의 아름다움으로 발전된다.
이제 사랑은 천사의 자리에서 내려와 땅을 밟는다
소네트 23
장미와 백합꽃의 색깔이
당신의 얼굴에 피어날 때
그리고 당신의 뜨겁고, 순진한 눈빛이
그 맑은 빛으로 폭풍이라도 잔잔하게 만들 때
당신의 우뚝 솟아오른
아름답고 흰 목덜미 위로 급한 바람이 지나가
금광맥에서 뽑은 당신의 머리칼이
움직이고, 널리 퍼지고, 흩날릴 때
분노한 세월이
그 아름다운 봉우리를 눈으로 덮기 전에
당신의 즐거운 청춘에서 달콤한 열매를 거두시오.
장미는 차가운 바람에 시들게 되고
쏜살같이 지나가는 세월에 모든 것이 변한다오.
오직 변하지 않는 것은 그 세월의 습관이랍니다.
≪가르실라소 시전집≫, 가르실라소 데 라 베가 지음, 최낙원 옮김, 33쪽
세월의 무상인가?
‘젊었을 때 인생을 즐기라’는 메시지다. ‘인생을 즐겨라’는 르네상스 문학의 대표 주제다. 삶을 ‘눈물의 골짜기’로 바라보는 중세와는 확 달라진 시각이다.
이것은 르네상스 시인가?
그런 셈인데, 정확히 말하면 이탈리아 르네상스풍 시다. 1526년 이후 스페인에서는 이탈리아풍 시가 기존 장르인 칸시오네로를 밀어내고 교양시의 대표가 되었다.
스페인 문학에서 1526년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라나다에서 카를로스 1세의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베네치아 대사 나바지에로가 스페인 귀족 후안 보스칸에게 당시 이탈리아에서 유행하던 새로운 형식으로 시를 지어 보라고 권했다. 여기서 스페인 서정시가 이탈리아 서정시를 만난다.
작가 가르실라소는 누구인가?
스페인 시인이다. 1503년경에 톨레도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1536년 죽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를 받아들여 스페인 시로 바꾸었다. 16세기 스페인 시에 이탈리아풍의 시라는 새로운 물줄기를 텄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란?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궁정에서 유행한 서정시다. 한 행에 11개의 음절을 가진 소네트, 칸시온, 서간시, 옥타바가 주류다. 페트라르카가 선두 주자다.
스페인이 이탈리아 시를 전격 수용한 이유가 뭔가?
기존 양식에 식상했기 때문이다. 칸시오네로의 화려함은 어설픈 기지와 비뚤어진 시적 개념, 과도한 현학적 취향을 양산했다. 자연스러운 심미적 감동은 사라졌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는 세련되고 아름답고 자연스러움이 돋보였다.
가르실라소의 수용 방식은 무엇인가?
페트라르카의 시학을 따랐다. 그러나 독창성을 발휘해 자신만의 시적 세계를 구현했다.
페트라르카의 시학이란 무엇인가?
‘사랑의 철학’이라고도 부르는 사랑의 주제다. 사랑하는 여인의 냉담함에서 비롯한 불만족, 우울, 슬픔의 색조를 띠며, 여인을 향한 육체적 욕망과 이를 제어하고자 하는 이성 사이의 복잡한 심리적 갈등이 주류를 이룬다.
가르실라소의 독창성이란?
페트라르카의 시는 사랑하는 여인을 천사의 위치에 놓는다. 그러나 가르실라소의 사랑은 철저히 인간이다. 페트라르카의 시가 화려한 언어유희와 기지, 반어법으로 넘쳐 날 때 가르실라소는 소박하고 진솔하게 노래한다.
그의 시에서 사랑의 철학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목가시 2>를 보라. 알바니오는 자신의 순수한 사랑, 곧 우정이 어떻게 욕망이 깃든 정욕적 사랑으로 바뀌는지 분석한다. 운명의 신이 개입했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괴로워한다.
사랑을 분석하는가?
사랑의 원인과 결과를 분석한다. 이렇게 지고하고 순수한 영혼의 사랑을 꿈꾸는 것은 신플라톤주의 철학의 전형적 모습이다.
신플라톤주의 사랑이란 무엇인가?
신에 대한 사랑에 견줄 만큼 고귀하다. 영혼을 맑게 하는 영성이 충만하다. 플라톤주의는 여인을 배제하지만 신플라톤주의는 여인의 육체적 아름다움을 영혼의 영적 아름다움으로 상승시킨다.
당신은 이 시집에 무엇을 실었나?
가르실라소의 작품을 모두 소개했다. 2010년 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으로 펴낸 ≪가르실라소 시선≫에 싣지 못했던 <애가 1, 2>와 <보스칸에게 보내는 서간시>도 추가했다.
당신은 누군가?
최낙원이다. 전북대학교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