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이 젠조 단편집
추석 특집 가족 3. 아들에게 새우튀김을 사 줄 수 있어?
명성룡이 옮긴 ≪가사이 젠조 단편집≫
생활의 파산과 예술의 성공
예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희생하겠다고 장담했다. 생활은 파산하고 가족은 파괴된다. 눈물이 날 정도로 가정이 그리웠지만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았다. 작품만 남았다.
어느 사이엔가 하찮고 사소한 것에 대해서도 그것을 어떤 숙명적인 암시와 연관 짓는 데 익숙해져 버린 그는, 쐐기의 움직임 하나하나에서도 자연스레 날씨 변화를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느꼈다. 고독한 그의 생활은 그 어디를 가나 변함 없이 외로웠으며,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그는 한 사람의 애절한 아버지였다. 애절한 아버지−그는 자신을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애절한 아버지>, ≪가사이 젠조 단편집≫, 가사이 젠조 지음, 명성룡 옮김, 18쪽
주인공은 왜 애절한가?
끊임없는 빈곤과 병고 때문이다. 그래서 무능한 남편이고 아버지일 수밖에 없다.
얼마나 가난한가?
처음에는 처와 아들 세 식구가 가난하지만 단란한 생활을 보낸다. 하지만 최저 생계비조차 벌지 못하는 무명작가인 탓에 그마저도 여의치 못하다. 결국 처자식을 고향집으로 돌려보내고 장마철의 허름하고 음침한 변두리 하숙방에서 고독한 생활을 한다. 오랜 빈곤으로 그에게 남은 것은 낡은 옷장과 앉은뱅이책상, 이불 한 채가 전부다.
왜 가난한가?
작품의 마지막에 각혈하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은 오랫동안 지병에 시달렸다. 정상적 생활인으로 경제생활을 하지 못했다.
병 때문이란 말인가?
병도 병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비록 무명작가지만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작가의 삶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예술적인 신념 때문이다.
가난은 주인공을 어떻게 괴롭히는가?
처자식과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어 절망과 번뇌에 사로잡힌다.
무엇을 절망하고 번뇌하는가?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그러하듯 아들의 진실한 벗이 되고 삶의 가르침을 주는 교육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했다. 함께 지내지 못하는 자식을 그리워하고 자식의 미래에 드리운 암울한 운명의 그림자를 예상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가사이 젠조의 애절한 아버지는 그의 다른 작품에도 등장하는가?
중기 대표작인 단편 <어린 자식을 데리고>뿐만 아니라 초기, 중기 작품 대부분에 애절한 아버지가 주인공이다. 즉, ‘애절한 아버지’는 가사이 젠조 작품의 중요한 키워드다.
<어린 자식을 데리고>도 어두운가?
암울하고 절망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이 작품에서 암울과 절망은 어떤 모습인가?
주인공은 월세가 밀려 살던 집에서 쫓겨난다. 고향에 돈을 꾸러 간 아내에게는 소식이 없다. 아이들을 데리고 하룻밤 묵을 잠자리조차 마련하지 못한 주인공은 방황 끝에 후미진 술집에 들어가 술잔을 기울인다. 배가 고픈 철부지 아이는 새우튀김이 먹고 싶다고 조른다. 그러자 먹고 싶은 만큼 얼마든지 주문해 먹으라고 호기를 부린다. 처참한 현실의 씁쓸함이 느껴진다.
작가의 경험인가?
가사이는 시가 나오야와 더불어 일본 근대 사소설의 대표적인 작가다. 물론 소설이기에 과장과 허구가 존재한다. 1927년 3월에 발표한 수필 <농담> 속에서 “나는 자화상 같은 것만을 써 왔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라고 고백한다. 그의 소설은 대부분 자신의 생활 경험과 심정을 솔직하게 묘사한 자전 소설이다.
어떤 모습으로 세상과 헤어지는가?
1928년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듯 <사죄>라는 제목의 작품을 발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각혈로 인한 급격한 병세 악화로 41세에 삶을 마감한다.
소설의 주인공처럼 예술의 신념이 투철했는가?
가사이 젠조는 “문예를 위해서는 자신은 물론 자신에게 부수된 그 무엇도 희생하겠다”, “생활 파산과 인간 파산, 그로부터 나의 예술 생활이 시작된다”고 생각하고 산 작가였다. 실생활과 예술이라는 이율배반적인 삶 속에서 절망하고 고뇌한 작가이기도 했다.
그의 신념에 대한 세상의 평가는 무엇인가?
“인생의 상식과 인간 생활의 규약을 무시한 작가”, “가장 철저하게 가정도 현실도 무시한 채 협소한 에고이즘에 살았던 작가”라고 평가되어 왔다.
맞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가사이의 전체를 보지 않고 일부만을 본 평가다. 그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문학도 삶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가능하다면 다시금 가정인(家庭人)이 되고 싶다. 눈물이 날 정도로 가정이 그립다”고 썼다. <약자>라는 작품에서는 자기가 “일본적인 전통주의자이며, 가족주의자”라고 얘기한다.
가사이 젠조는 사실 어떤 사람인가?
일본 근대 문학가 가운데 누구보다도 ‘집’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가족의 정애(情愛)에 찬 생활을 동경했다. 생활에서는 그런 삶을 꾸리지 못했다. 비련의 작가였다. 이런 생활이 그의 문학을 만들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명성룡이다. 한서대학교 일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