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문감
제헌절 특집 고전 1. 정도전이 말하는 총리와 장관의 자격
조기영이 옮긴 정도전(鄭道傳)의 ≪경제문감(經濟文鑑)≫
正己 格君 知人 處事
나를 바로하고 임금을 세우고 사람을 알아보고 일에 능숙하다. 삼봉이 꼽은 재상의 네 가지 업무다. 오늘날 국무총리와 장관 임명이 어려운 이유를 600년 전에 알고 있었다.
임금 아래에서 도덕을 의논해 임금 한 사람을 돕고, 종묘사직의 맨 위에서 도견(陶甄)을 잡아 만물을 주재하니 그의 직임이 어찌 가볍겠는가? 국가의 치란(治亂)과 천하의 안위(安危)가 항상 반드시 그에게서 말미암으니 진실로 그 사람을 가벼이 할 수 없는 것이다.
≪경제문감(經濟文鑑)≫, 정도전 지음, 조기영 옮김, 78~79쪽.
삼봉이 말하는 ‘그’는 누구인가?
재상이다. 위로는 음양을 조화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어루만져 편케 하며 안으로 백성을 평온하고 밝게 다스리고 밖으로 사방의 오랑캐를 진정시키는 인물이다.
재상의 일은 무엇인가?
정기(正己), 격군(格君), 지인(知人), 처사(處事), 이렇게 네 가지다.
무슨 뜻인가?
자기 몸을 바르게 하고 임금을 바로잡고 인재를 볼 줄 알고 일을 잘 처리한다는 뜻이다.
正己란 무엇인가?
몸이 바르면 정당한 도가 처자식에게도 행해지고 바르지 못하면 그러하지 못하다. 육친에게도 그러하니 임금에게는 어떻겠는가?
格君은 무엇인가?
임금이 어질면 어질지 않은 사람이 없고, 임금이 옳으면 옳지 않은 사람이 없다. 한번 임금을 바르게 하면 나라가 안정되는 것이다.
知人은 무엇인가?
요임금과 순임금도 중요하게 여긴 일이다. 그들이 고요(皐陶)와 우(禹)의 뛰어남을 알고 등용하지 못하고, 사방 흉악한 무리의 악함을 물리칠 줄 몰랐다면 비록 인자했더라도 천하가 화평할 수 있었겠는가?
處事는 무엇인가?
한 가지 일이라도 실수가 있으면 재앙과 난리가 생긴다. 옛날부터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은 기미가 있으면 반드시 조심했다. 일을 잘 살펴 처리해 실수에 이르지 않게 할 사람은 기미를 아는 군자가 아니면 안 된다.
삼봉이 든 재상의 업무는 이 네 가지가 전부인가?
임금을 인도해 도덕에 합당하도록 해야 한다는 인군당도(引君當道), 옳은 것을 바치고 그른 것을 바꾼다는 헌가체부(獻可替否) 등 43가지를 더 들었다.
재상이라는 직책은 언제 생긴 것인가?
당우(唐虞) 시대에 요임금이 순을 백규(百揆)로 정한 것이 처음이다. 순임금은 우를 백규로 정했다.
백규가 무슨 말인가?
온갖 정치를 헤아린다는 뜻이다. 정도전은 이때를 재상 제도가 가장 훌륭하게 구현된 시대로 보았다.
우리 역사에서 재상은 언제, 어떻게 나타났는가?
고려 중엽에 당나라와 송나라의 제도와 관직을 예로 삼아 문하시중(門下侍中)이라는 관직을 두었다. 충선왕 때 원나라 제도를 피해 문하시중을 고쳐서 도첨의중찬(都僉議中贊)이라고 했고, 또 이후 중찬을 정승이라고 고쳤다. 공민왕 때 다시 문하시중으로 고쳤다.
조선에서 재상은 언제 나타났나?
초기에는 고려의 관제를 그대로 따랐다. 얼마 뒤 시중을 정승으로 고쳤다.
≪경제문감≫은 어떤 책인가?
1395년 6월 6일에 판삼사사(判三司事) 정도전이 태조 이성계에게 올린 국가 경영 지침서다. 경국제세(經國濟世)에 필요한 거울이 되는 글이라는 뜻이다. ≪삼봉집(三峯集)≫ 4권과 5권에 상·하권으로 나뉘어 실려 있다.
삼봉은 여기에 무엇을 썼는가?
중국의 상고시대부터 원대(元代)까지, 그리고 고려와 조선의 정치제도와 관계있는 사실을 옛날 전적(典籍)에서 가려 뽑아 편집했다.
상하권의 내용은 무엇인가?
상권에는 중국과 우리나라 역대 왕조의 재상의 명칭 및 변천사, 정치적 의의와 잘잘못 등을 기술했다. 하권에는 대관(臺官)·간관(諫官)·위병(衛兵)·감사(監司)·주목(州牧)·군태수(郡太守)·현령(縣令)의 연혁과 직능을 정리했다.
지방 관리의 역할까지 적은 이유는 뭔가?
무릇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고, 군수와 현령은 백성의 근간이 된다는 인식 때문이다. 지방 관리는 백성의 유모(乳母)나 목자(牧者)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탐관오리의 부패와 전횡을 경계하는 마음이 컸다.
삼봉 정도전은 어떤 사람인가?
두 번의 유배와 10여 년의 귀양살이 동안 독서와 성찰로 자신을 연마하고 국가 경영에 필요한 대도를 구상했다. 조선 건국 후 전제(田制) 및 군제(軍制) 개혁은 물론이고 각종 정치 이론을 정립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두뇌라고 할 만하다. 다방면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고 조선왕조 창건에 초석이 되었다.
이 책에 나타난 그의 철학은 무엇인가?
재상을 중심으로 하는 공명정대한 정치, 백성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민본주의, 경제적 물질적 성장과 절약을 강조하는 실용주의, 그리고 부국강병을 이룩하는 정치 이념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조기영이다. 한국고전교육원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