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판 조웅전
조희웅이 옮긴 ≪경판 조웅전≫
땅에서 만들어진 영웅
조웅은 영웅일까? 복수심에 불타고 잔인하다. 하늘의 점지를 받지도 못했고 그 흔한 태몽도 갖지 못했다. 힘은 세고 머리는 좋지만 운명을 타고나진 못했다. 그러나 영웅이다. 19세기 조선은 이미 세상으로부터 영웅을 만들기 시작한다.
차시(此時) 병부시랑(兵部侍郞) 두관은 두병의 아들이라 상을 모셨더니, 상이 슬허하심을 보고 분심(忿心)이 복발(復發)하여 주(奏) 왈(曰),
“조정이 비록 공은 있사오나, 조신(朝臣)이 다 조정만 못하지 아니하오니, 어찌 조정만 이같이 하시리이꼬. 묘호(廟號)를 거두심이 마땅하여이다.”
상이 노(怒) 왈,
“신자(臣子)가 되어 충효가 으뜸이라. 조정은 국가의 큰 공신이거늘, 네 충량(忠良)을 시기하니 어찌 분한(忿恨)치 않으리오.”
두관이 황공(惶恐) 퇴조(退朝)하더라. 상이 환궁(還宮)하시고 승상부에 전교(傳敎) 왈,
“충렬공의 아들이 있거든 빨리 입시(入侍)하라.”
하시다.
≪경판 조웅전≫, 작자 미상, 조희웅 옮김, 5∼6쪽
제목이 ‘경판 조웅전’인데 다른 판본도 있는가?
판각본 경판 3종, 완판 약 15종, 안성판 1종, 필사본 50여 종, 활판본 10여 종으로, 도합 80여 종을 헤아린다.
이본이 많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고전소설의 베스트셀러라는 말이다. 중판과 개판을 거듭했다는 것은 그만큼 오랫동안 많은 수요가 있었다는 사실의 반증이다.
한자말이 많은데 조선조에서 누가 이 작품을 읽을 수 있었는가?
고사성어, 한문구, 한시가 빈번히 나타난다. 한문 식자층이 아니면 읽기 힘들다.
자유연애와 육정 표현이 나타나는데 유교 이념이 수용한 것인가?
독자의 흥미를 돋우려는 작가의 배려다. 소설 작법 기교가 어느 정도 발달한 시기에 상당히 전문적인 작가가 썼을 것으로 생각된다.
완판본에도 한자말이 많은가?
완판본은 분량도 많다. 경판본의 세 배다. 한자말은 여기서도 자주 등장한다. 한문 문장을 소리만 우리말로 바꾸어 놓은 대목이 상당히 많다.
스토리 라인은?
송나라 좌승상 조정은 간신배 두병의 모함으로 자결한다. 조웅은 조정의 유복자다. 얼마 뒤 아홉 살의 태자가 제위에 오르자 두병은 그를 내쫓고 천자를 자칭한다. 조웅 모자는 두병의 횡포가 두려워 고향을 떠나 절로 들어간다. 조웅은 여러 스승을 만나 무기와 재주를 얻는다. 수련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장소저와 인연을 맺는다. 이 무렵 서번이 위국을 침략한다. 조웅은 위왕을 도와 서번군을 물리친다. 두병은 태자에게 사약을 내리려 하나 조웅이 태자를 구한다. 서번의 조웅 살해 음모가 모두 실패한다. 이제 조웅은 위왕의 협조를 받아 대군을 거느리고 중원으로 향한다.
조웅은 두병을 어떻게 응징하는가?
두병은 조웅 군대를 막지 못한다. 측근이 두병 부자 여섯을 사로잡아 바치고 항복한다. 조웅은 그들을 직접 처단하고 태자를 제위에 올려 왕조를 바로잡는다. 위왕은 장녀를 태자의 비로, 차녀는 조웅의 첩으로 들인다. 조웅의 명성은 천하에 떨치고 자손은 번창했다.
조웅에게 두병이란 어떤 존재인가?
유복자인 조웅과 간신 두병의 적대관계는 선천적이다. 두병은 후환이 두려웠고, 조웅 제거를 도모한다. 복수에 대한 불안 심리 때문에 이 대립은 직접, 필연으로 치닫는다.
조웅이 두병을 죽이는 과정은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칼을 들고 내달아 찔러 죽이고 간을 씹으며, 태자께 드릴 고기를’ 따로 포장한다. 원수 역적의 말로를 인육화(人肉化)로 표현한 것이다.
조웅과 장 소저의 관계는 자유연애라고 볼 수 있는가?
다른 고전소설처럼 숙세(宿世)의 인연으로 만나지 않는다. 자유결혼의 형식을 보인다. 작가는 유교 이념에 충실하면서도 혼전 정교를 대담하게 묘사한다. 배리(背理)로도 보인다. 이것이 작품의 인기 요소였다.
영웅 소설인데 태몽이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조웅전≫은 주인공 탄생에 기자(祈子) 정성이나 태몽, 천상인의 하강과 같은 모티브가 보이지 않는다. 보통 군담소설에서는 주인공의 신분이 고귀하고 그 능력이 초월적임을 예시하기 위해 천상 선관 또는 어느 별이 지상세계로 내려왔다고 쓰기도 한다. ≪조웅전≫에는 이것이 없다.
영웅이 평범하게 태어날 수 있는 것인가?
작가의 의도다. 조웅의 비범한 능력이 선천성이 아니라 후천성이라고 강조한다. 독자에게 일종의 희망을 주려는 뜻 같다.
≪조웅전≫이 다른 군담소설과 비슷한 점은 무엇인가?
고전소설은 보통 복선화음(福善禍淫)·권선징악으로 끝난다. 선한 인물은 지극히 선하게, 악한 인물은 극악하게 대조적으로 표현한다. ≪조웅전≫도 그렇다. 조웅은 철저히 충효사상을 실천하는 인물로, 두병은 정반대로 그려졌다.
태조 이성계를 미워한 사람이 썼다는 주장은 속설일 뿐인가?
이성계의 역성혁명을 증오한 사람이 이를 풍자할 목적으로 지은 것이라는 속설이 있다. 이성계를 두병에, 이방원을 두관에 비유했다는 것이다. 속설은 어디까지나 호사가의 그럴 듯한 허구다.
속설이 허구라는 증거는 무엇인가?
≪조웅전≫ 정도로 발달된 소설은 19세기나 되어야 나타난다. 속설이 사실이라면 이 작품이 조선 초기에 나왔다는 것인데 그럴 가능성은 낮다. 19세기 이전 창작을 확증할 수 있는 이본이 전하지 않을 뿐 아니라 관계 문헌기록도 없다.
책의 간기에는 출판일이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가?
현전하는 ≪조웅전≫ 이본 중 간기가 남아 있는 네 종에는 각각 병오개간(丙午開刊), 계묘중간(癸卯重刊), 무술신판(戊戌新版), 임진신간(壬辰新刊)이라고 적혀 있다.
병오년이면 1726년인가?
18세기에 ≪조웅전≫ 수준의 소설이 나왔을 가능성은 낮다. 소설 작법 발달을 고려하면 병오년은 1846년으로 추정된다.
≪조웅전≫의 한자말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는가?
이 책은 경판본 ≪조웅전≫의 결정판이자 첫 주석서다. 옛말·한자말 뜻풀이로 각주 695개를 붙였다.
혼자 이 작업을 마쳤나?
몇몇 난해한 어구 해결에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 금세기 최고의 한학자 우인 조규철 선생과 포명 이강로 선생의 가르침이 큰 몫을 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조희웅이다. 국민대 국문과 명예교수다. 2012년에 전 25권 규모의 ≪고전소설 등장인물 사전≫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