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2508호 | 2015년 3월 25일 발행
진정한 초현실주의자,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전기순이 옮긴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ía Lorca)의 ≪관객(El Público)≫
연극에서 가짜의 진짜
연극은 가짜다. 실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짜가 되려면? 배우는 죽어야 한다.
주검은 연극인가?
아니다. 연극의
진실은 어디 있는가?
관객에게 있다.
그들은 죽고 불타고 피 흘리기 때문이다.
요술사: 도대체 지하 극장에서 무슨 연극이 나올 수 있다는 거죠?
연출가: 모든 연극은 유폐된 습기에서 나오는 법이오. 진정한 연극은 모두 과거의 달[月]이 지닌 깊은 악취를 풍기는 법이지. 의상들이 말을 하면 산 사람들이 뼈로 만든 단추가 되는 그런 연극. 내가 터널을 만든 이유는 의상들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였소. 의상들을 통해 숨은 힘의 윤곽을 가르쳐 주고 싶었으니까. 그러면 그때 관객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연기에 복종하면서 집중하는 것 말고는 다른 수단이 없게 되오.
≪관객≫,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지음, 전기순 옮김, 85쪽
연출가는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것인가?
아레나, 곧 무대 밑에서 펼쳐지는 지하 연극이 진정한 연극이라고 주장한다.
뭐가 진정한 연극인가?
가짜 연극이 아니라 진짜 연극을 말한다.
뭐가 진짜 연극인가?
등장인물이 무대에서 죽는 척하다 막이 내리면 헤헤거리며 일어나는 연극은 진짜 연극이 아니다.
그럼 배우가 정말 죽어야 진정한 연극인가?
그렇다. 진짜 연극은 막을 불태우고 배우가 관객들 앞에서 진짜로 죽는다. 연출가는 그것이 예술의 진실을 전하는 연극이라고 주장한다.
왜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인가?
재현 예술이 취하는 외면적 사실주의 때문이다. 이것으로부터 벗어나 인간 내면에 숨어 있는 진정한 실제를 드러내고 싶기 때문이다. 초현실주의 연극이 그랬다.
<관객>이 초현실주의 연극인가?
그렇다. 로르카는 이 작품으로 진정한 초현실주의자가 되었다. 1920년대 유럽 연극을 장악했던 초현실주의, 피란델로와 브레히트가 제기한 연극론과 일맥상통하는 작품이다.
피란델로, 브레히트와 로르카의 일맥상통은 무엇인가?
이 셋은 모두 “잠자는 관객, 수동적인 관객, 무대와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관객”을 깨우려 한다. <작가를 찾아다니는 여섯 명의 인물들>을 발표한 피란델로, 서사극을 제안한 브레히트, 초현실주의 연극을 주장한 장 콕토의 공통된 관심사가 바로 이것이었다.
관객을 어떻게 깨우는가?
그들에게 “공연 불가능한” 연극을 감상하도록 요구한다. 전위의 무대다. 무대와 관객 사이를 벌려 놓고 관객이 무대의 내면과 그 내면에 잠재한 ‘숨은 힘’을 직시하도록 내몬다.
숨은 힘으로 관객을 내몬 이유가 뭔가?
1920년대 스페인에서는 입센과 버나드 쇼의 계보를 잇는 부르주아 연극이 지배적이었다. 젊은 극작가들이 반발한다. 이 사이에서 사실주의 연극의 환영을 깨뜨리려는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연극 조류가 형성되었다.
“공연이 불가능한” 연극이 받은 비판은 뭔가?
작가 폴 오스터는 전위주의 예술가들이 의식적으로 실험성 짙은 작품을 선보이는 태도를 비판했다. 실험을 위한 실험이 안고 있는 위험성을 거론한 것이다.
로르카는 누구인가?
스페인 시인이자 극작가다. 전통에 뿌리를 둔, 자전적인 문학적 재료를 모더니즘 언어와 결합하며 신화적 매력을 갖춘 문학작품을 선보였다.
전통은 어디서 얻었나?
안달루시아 지방 그라나다에서 보낸 유년기 경험이었다. 유모는 로르카에게 집시에 얽힌 신화를 들려주거나 인형극을 함께하곤 했다. 안달루시아 전통음악인 칸테혼도는 그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는 원천이었다.
모더니즘은 어디서 만났나?
스무 살이 되던 1918년부터 10년간 레시덴시아라고 부르는 마드리드 국립대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후안 라몬 히메네스, 다마소 알론소, 라파엘 알베르티, 살바도르 달리 등이 비슷한 시기에 레시덴지아를 거쳐 갔다. 이들과 교감하며 모더니즘을 흡입했다. 이후 뉴욕에서 몇 달을 보내며 생애 후반부를 결정짓는 변화를 겪는다.
어떤 변화인가?
유럽과는 다른 현대 도시의 날카로움을 경험했다. 새로운 도시 분위기가 그의 내면에 초현실주의에 대한 강한 욕구를 불어넣었다. 이 시기에 발표한 시집 ≪뉴욕의 시인≫과 희곡 <관객>은 초현실주의에 사로잡혀 써내려간 것이다.
그 이후의 삶은?
1936년 마드리드에서 파시스트의 활동이 본격화하면서 동성애자, 집시 옹호자였던 로르카는 위험한 상황에 놓였다. 내전이 발발하자 피신했다가 우파 국민전선 사령관에게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작품은?
시집 ≪집시 로만세≫와 안달루시아를 배경으로 쓴 3대 전원 비극 <피의 결혼>, <예르마>,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등이 대표작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전기순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 교수이고 외국문학연구소 소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