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철학이 질문을 공유하면
북레터 [주간 인텔리겐치아]입니다.
안녕하세요. 북레터 인텔리겐치아입니다.
‘기술 비평’은 서울대 이재현 교수가 새롭게 개척하고 있는 분야입니다. 기술과 철학을 접목하고 질문을 공유해서 기술 수용의 합리적 토대를 마련해보려는 시도죠. 인공지능, 사물 인터넷과 같이 특정한 기술 대상이나 그 앙상블의 속성과 원리를 주관적으로 논의하고 평가합니다. 이번에 사물 인터넷을 주제로 또 한 권의 책이 출간되어 소개합니다.
사물 인터넷은 빅데이터, 인공지능과 더불어 현대의 기술 지형을 만들어 가는 세 개의 중심축 중 하나입니다. 이 책은 그 사물 인터넷을 ‘사물 철학’의 관점에서 비평하는 책입니다. 그럼 ‘사물 철학’이란 무엇인가. 이 용어는 저자가 만들었습니다. 현대 기술 사회를 탈인간중심주의의 관점에서 보려는 철학적 입장들을 이 범주로 묶었죠.
저자가 이 책에서 지향하는 기술 비평은 사물 인터넷이라는 기술적 대상과, 사물의 본질을 해명하려는 철학 사이의 만남입니다. 예를 들어 사물 인터넷은 기술적 대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란 무엇인가, 사물들 사이의 관계란 무엇인가, 사물이 연결될 때 인간의 관계, 나아가 인간의 지위는 어떻게 되는가? 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이 책은 두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1부는 사물 인터넷의 구체적인 기술을 제시하고 그 기술과 공명한다고 생각하는 철학 이론을 제시합니다. 2부에서는 사물과 그들 사이의 관계 변화를 다루는 고유한 철학적 논의를, 사물 인터넷을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로 삼아 철학적 통찰을 전개합니다. 저자는 이러한 철학적 통찰이 기술중심 관점보다 사물 인터넷의 함의를 이해하는 데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기술 비평 관점에서 인공지능에 접근한 책입니다. 인공지능의 기술 원리에 주목하면서도 철학적 질문을 제기해요. 철학에서 사회과학, 저널리즘에 이르는 다양한 영역에 걸친 탐색을 하고 있습니다.
장 제목과 같이 저자는 알고리듬, 기계번역, 객체인식 등 인공지능 기술의 원리와 철학을 결합하고 있습니다. 각 장은 세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기술 원리를 소개한 부분, 연관되는 철학적, 이론 논의를 설명한 부분, 그리고 양자 사이의 연계 내지 공명을 모색하고 추가 이슈를 다룬 부분입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기술과 철학이 별도로 제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기술과 철학, 특히 인공지능 기술 자체에 대한 세세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저자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독자들은 저자가 잘 정리해서 제시한 기술과 철학을 먼저 읽은 후, 이 둘이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를 순서대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전문적인 기술 문헌을 읽지 않더라도 해당 응용 체계의 기본 원리를 파악할 수 있어요. 2020년 한국언론학회에서 희관언론상 저술상을 수상했습니다.
고대 수메르인들은 점토로 손바닥 크기의 태블릿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파노라마는 1세기경 등장해 19세기까지 대중적인 시각 미디어로 인기를 끌었어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새로운 미디어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의 역사 속에서 변화 발전해온 것들입니다.
저자는 디지털 미디어의 기술적 장치나 요소들과 유사해보이는 과거의 장치나 관념을 찾아 양자 사이의 공명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공명’이란 관점으로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를 더해주는 책이에요. 목차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용어사전과 같은 성격도 있어서 관심이 있는 항목을 출발점으로 삼아 읽으시면 좋습니다. 고전적인 철학 개념으로 모바일 문화를 읽었습니다. 모바일 미디어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문화 현상을, 현대와 고전 철학에서 시간성과 공간성, 사회적 관계에 어떠한 변화를 초래했는지 모색하는 개념들을 통해 접근했습니다.
2013년에 출간된 책인데 이재현 교수가 요즘 활발하게 작업하는 기술 비평의 씨앗을 이 책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산보자’, ‘스펙터클’, ‘리듬 분석’, ‘비장소’, ‘시선의 이동성’ 등 10개의 고전 철학 개념을 모바일 문화를 읽기 위한 키워드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하이테크를 제대로 관찰하려면 그것이 멈춰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멈춰 세우는 길은 우리가 먼저 멈춰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멈춤을 위해 저자가 사용한 방법이 바로 ‘고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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