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떠나는 가족
김의경의 ≪길 떠나는 가족≫
예민한 양심
전쟁, 불타는 강산, 찢겨진 가족, 살상, 피의 보복, 굶주림, 인간의 소중한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하는 지옥. 가족은 안전지대 일본에서 손짓했지만 이중섭은 타인의 고통과 헤어질 수 없었다.
구상: 환자 이중섭은 이 병원에 들어올 때 실은 과도한 영양실조였습니다. 황달에다가 간장염에 만신창이가 된 뼈만 남은 귀신 이중섭. 그는 모든 것을 거부하는 환자였습니다. 식사 거부, 링거 거부, 수혈 거부, 기를 써서 고통을 반려자로 삼았습니다.
중섭: 그리고 사랑 거부! 그림 거부! (울음이 터진다.) 남덕아, 난 결국 지고 마는 거야? 내 그림 내 사랑은 어디 갔지? 내 소 내 땅은 어디 갔지? 메피스토를 불러 줘. 내 영혼을 담보해서 마지막 한 장의 그림을 그리게 해 줘. 그게 안 되면 나는 최후의 재산권을 행사할 거야. 나의 자유를 행사하겠어. 더 살지 않을 자유를!
중섭, 나뭇등걸처럼 침대에 쓰러진다. 침대는 쏜살같이 하수로 달려나간다.
배우 1: (기자 역) 만 40이 된 중섭에겐 친구도 많았다지만, 그의 죽음이 세상에 전해진 것은 그가 죽은 지 석 삼 일이나 지나서였다. 1956년 9월 6일 11시 40분, 서울 적십자병원에서의 일이었다. 그는 결국, 순도(殉道)의 길을 걷고 만 것이었다.
그의 그림 ‘길 떠나는 가족’이 정적 속에서 무대에 재현된다.
벌거벗은 중섭
소가 끄는 달구지 위엔
그의 아들 태현, 태성과
아내 남덕이
혹은 비둘기와 희롱하고
혹은 천도(天桃)를 먹으며
천천히, 천천히 움직여 간다.
그들은 아마도 천국의 여정(旅程)에 올랐을 것이다.
무대 전면에 세 쪽의 ‘길 떠나는 가족’이 위에서, 좌우에서, 떨어지거나 달려 나와 탕 소리와 더불어 만나서, ‘그림’을 만들어 낸다.
막이 내리는 동안 짧은 종곡(終曲).
≪길 떠나는 가족≫, 김의경 지음, 100∼102쪽
화가 이중섭 이야기인가?
한평생 끈질기게 소를 그리며 민족 미술을 지향했던 삶을 극화했다.
그의 마지막 순간이 정말 이랬는가?
그는 정신분열과 거식증으로 고통받다 1956년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생을 마쳤다.
정신분열과 거식, 이상 증상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나?
밥 먹을 자격이 없다며 거의 먹지 않았다. 여관에서 기거할 때는 빗자루를 끼고 살며 첫 새벽부터 대문 밖 행길까지 쓸어 댔다. 자신의 국부에 소금을 뿌려 대는 기행으로 주변을 놀래키기도 했다.
그의 정신을 분쇄한 당대의 현실은 무엇인가?
고향 원산에 어머니를 남겨두고 남으로 피난했고, 가난 때문에 아내와 두 아들은 일본에 있는 처가에 보내야 했다. 소설가 구상 등의 도움을 받아 몇 차례 개인전을 가졌지만 이마저도 실패했다.
개인전으로 돈을 벌지 못했나?
작품을 팔고 받아야 할 돈을 제때 받지 못했다. 게다가 은종이에 그린 그림이 춘화라는 이유로 철거되기도 했다.
그는 왜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가지 않았나?
구상 선생의 말대로 “전화(戰禍)의 조국과 그속에서 허덕이는 이웃들을 등지고 먹을 것과 처자식을 찾아” 일본으로 떠날 만큼 그의 감각이 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의 고통에 대한 인식을 나의 행복과 바꿀 수 없는, 예민한 양심이 이중섭이다.
예민한 양심은 이 작품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가?
전시회에서 그림이 팔리면 “공부가 덜 된 그림이니 나중에 다시 그려 주겠다”고 약속한다. “보지 못한 것, 모르는 것은 못 그린다”며 신문 연재 소설 삽화 그리기를 거부한다.
이중섭에게 그림이란 무엇인가?
자유다. “누가 내 손을 잡고 붓질을 하게 한다면 난 차라리 내 손을 꺾을 거야. 내 손으로, 내 붓으로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릴 수 없다면, 내 땅에서 내 뜻대로 말할 수 없는 그림이라면, 이중섭이여, 명목하라!” 그의 대사다.
빈곤한 시대에 자유의 길은 어디로 이어지는가?
순도의 길을 택한다. 식사 거부로 인한 극도의 영양실조, 황달, 간염 증세를 보인다. 40세에 요절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의 작품, ‘길 떠나는 가족’을 재현한 이유인가?
원래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그린 그림이다. 자신이 가족을 실은 소달구지를 끌고 따뜻한 남쪽나라로 가는 모습이라고 아들에게 설명했다.
이 작품이 초연 된 것이 1991년인가?
이윤택 연출로 문예회관 대극장 무대에 올랐다. 원래 뮤지컬로 기획했으나 무산되고 정극으로 초연했다. 그해 서울연극제에서 작품상, 희곡상, 연기상을 수상했다.
당신은 어떤 작품을 쓰는 작가인가?
역사적인 인물이나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 주요 작품으로 <식민지에서 온 아나키스트>, <남한산성>,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를 꼽고 싶다.
누구인가?
김의경이다. 1976년 극단 ‘현대극장’을 창설했고 현재 ‘현대극장’ 고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