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순 단편집 초판본
독립 만세 3. 김명순의 <나는 사랑한다>
사랑하여라, 또 사랑하여라
신여성 작가 김명순은 그렇게 쓰고 또 썼다. “애정 없는 부부 생활은 매음”이라며 자유연애를 주창했고, 동료 문인에게 “불순 부정한 혈액을 지닌 히스테리”로 매도당했다. 그래서였을까? 소설 속 여주인공은 책장마다 이렇게 적는다. “너희들 엇더케 곤난하더라도 희망하여라.” 1920년대, 무언가를 희망하기 곤란하던 시절, 연애지상주의야말로 그녀가 흔들 수 있는 유일한 깃발이었을지 모른다.
“앗차 저 색시다! 내가 칠 년 전에 남대문 역에서 보앗던 그이다!” 하고 영옥이와 순희가 사람 몰내 의론하고 잇던 곳을 처드러온 괴한 이 명이 잇섯다.
“영옥이는 어데 갓슴니?” 하고 한 명이 말하엿다.
순희는 무엇을 결심한 듯이 올매즌 적은 얼굴을 맑앗케 하여 가지고
“서 선생 미안함니다만은 이후로는 다시 영옥이를 찻지 마십시요. 그는 영원히 선생님의 겻흘 나버리엿슴니다. 부대 저 하날 나는 적은 새에게 자유를 주는 자연의 마음과 가치 영옥에게도 자유스럽게 하여 주십시요. 그는 한 가난한 녀자로써 얼어죽는 것을 데 죽는 것보담 무섭게 알엇든 녀자임니다. 그는 불행한 경우에 선생님의 열정에 속앗든 것임니다. 아니 그이의 마음속 밋헤 잇든 동경조차 일시 그를 이젓든 것임니다. 그러나 인류의 영원을 계통해 온 우리의 리상이 을을 하게 이어오는 것가치 외부의 사정으로 실현 못 되든 일들도 내부의 반항으로 불순한 연결은 어버리고 다시 순화(純化)되여서 목뎍디를 향하야 싸와 나가라고 수단을 다하여 봄니다” 하엿다.
이 광경을 본 풍채 조흔 청년은 좌우 손을 맛잡고 깃붐과 두려움이 서로 어우러지는 듯이 손을 비비엿다. 영옥이는 돌아와서 숙인 머리를 들지 못하고 잇섯다. 서병호는 노긔등등하여서
“무어요. 영옥이가 나를 버리고 가겟슴니. 밋고 갈 데가 업서서 내게로 왓든 영옥이가 병으로 나를 실혀하면 햇지 당신이어낸 것이구려” 하고 순희에게 도전하엿다.
“이것 보십시요” 하고 순희는 음성을 놉히면서 “사람은 언제든지 자긔를 밋고 사는 것임니다. 외롭고 갈 데 업는 사람일수록 자유를 구하는 마음은 더욱 커지는 것임니다. 내가 여냇다는 그런 말삼을 하시는 당신은 적어도 영옥이와 나와의 두 사람의 인격 외에 세긔와 시대도 자긔도 모욕하신 것입니다” 하고 더 갓케 되엿다. 서 씨는 도전하듯이 “아니오” 하고 부르르 다가
“녀자된 버릇이 남자 압에서 어려운 문구를 느러놋는다고 장한 것이 아니요. 어서 내 안해를 차자내시오. 설마 저긔 돌아섯는 저 거지 게집이 서영옥이는 아니지오” 하엿다.
순희는 부르쥐엇든 적은 주먹을 더히 쥐고 다시 리는 입살을 열어
“여긔 섯는 처녀는 박영옥이라는 저− 칠 년 전에 남대문 역에서 만주를 팔다가 외국 가던 학생에게 구원을 밧은 거지 게집애임니다. 서(徐) 무엇이라는지 독한 청혼에 속아서 몸을 팔고 그 종이 된 이는 결코 아니지요” 하고 순희는 번개가치 그 몸을 움즉이며 영옥을 돌려세우며
“자− 저긔는 칠 년 전에 너와 맛난던 어른이 게시다. 너는 지금 저 어른에게 네 생사를 무러라” 하엿다. 청년은 용맹스럽게
“얼마나 오래 고생하섯슴닛가. 저는 공부하는 것만 목뎍이 아니엿것마는 약한 종족의 하나이엿스닛가 공부할 책임도 커서 귀국하기지 지체되엿슴니다.
저는 그에 불란서에서 조선서 오는 ××일보를 보고 당신이 박영옥이라는 재원인 줄을 알엇지요. 실례되지만은 당신은 내게 여내지 못할 무엇을 주시엿슴니다. 그러나 나는 수학하는 신세인 고로 당신의 처디를 분명히 몰낫섯슴으로 이런 난경에 서게 되엿슴니다. 영옥 씨 아니 가장 아름다운 이! 붕상한 당신을 나는 사랑함니다. 그럼으로 나는 어제밤과 오늘 아츰에 당신을 괴롭힌 것임니다. 자− 지금은 그 소올을 버스시요” 하엿다. 영옥은 도라서서 소올을 벗고 최 씨에게 정면하고 섯섯다. 그 얼골은 깃분 설음에 질니여 잇다.
“이 음란한 것들 나가거라!” 하고 청년의 태도를 이상하게 보던 서병호 씨는 광인가치 소리첫다.
“여긔는 최종일의 집은 안입니다. 여긔 모힌 사람들 중에는 당신밧게 이 집을 속히 나가야 할 사람은 업슴니다” 하고 우스면서 “저 일흠도 모르던 처녀는 내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가장 아름다운 말삼들을 다 드려야 할 내 영원한 동경임니다. 자 왕녀 가튼 처녀가 아님니가. 저이더러 누가 정조 일흔 처녀라 하겟슴니가. 더군다나 저이의 팔 개월 간 사람을 금전으로 사는 줄 아는 누구와의 부부생활이 더 저이를 하게 하엿슬 것임니다. 그것은 디옥에진 자들에게 하날 놉히가 뵈여지듯이 일코 우는 어린 녀자에게는 직히고 깃버하는 일이 한 부러웟슬 것입니다” 하고 최종일 씨가 말을 맛츨 지난날의 흰 목단 가탯슬 영옥의 얼골이 여디업시 수척하야 혹보석 가튼 눈을 달고 사랑 초초한 처녀의 얼골이 분명하엿다. 그 이튼날 눈이 점점 흐리여 고만 거운 눈물을 흘리엿다.
서병호 씨는 밋기를 일흔 동물가치 중얼거리며 욕심에 흐린 눈으로 영옥을 보고
“흥 너도 스물다섯이나 되여서 말나진 하고” 하엿다. 영옥은 입을 비죽비죽하면서
“나는 당신을 불상히 녁이여서 사람 하나 살니는 줄 알고 당신을 부조하엿든 것임니다. 저 최종일 씨가 내가 가리킨 정온(溫情)이엿슴니다” 하고 비로소 말하엿다. 한참 가만 잇든 순희는 서 씨를 보고 비웃는 듯이
“흥 사람은 생명 잇는 유긔톄(有機體)라나” 하엿다.
그들은 서로 생명을 걸고 오래 싸왓섯다. 서 씨는 실패할 수밧게 업섯다.
이날 저녁에 동숭동 최종일의 산뎐에는 큰불이 이러낫다. 조흔 집이 탄다고 사람들은 서러하엿다. 그러나 그 불덤이 속에 소래 들리여 이르되 “사랑하는 이여 아름다운 말 전부는 너의 일홈이다” 하고
“나는 사랑한다!”
“나는 사랑한다!”
하더라.
<나는 사랑한다>, <<김명순 단편집>>, 송명희 해설, 162~1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