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공전
최운식이 현대어로 옮긴 ≪김학공전≫
계급사회의 자유
주인과 노예는 일생을 함께한다. 노동은 노예의 것이고 자유는 주인의 것이다. 자유는 노동에서 소외되고 노동은 자유를 갈망한다. 불이 타오르고 피가 흐른다.
노자 중 박명석이라 하는 놈이 한 흉계를 생각하고, 저의 동료를 청하여 의논 왈, “우리가 매양 남의 종노릇만 한단 말인가. 지금 상전이 부인과 어린아이뿐이라. 이때를 틈타 상전을 다 죽이고, 세간 재물을 다 수탐하여 가지고 무인 계도 섬에 가 양반이 됨이 어떠한고?” 한대, 모든 노복이 일시에 응낙했다. 박명석이 제인에게 허락을 받은 후 하는 말이, “그대들 뜻이 이러할진대 모월 모일에 잔치를 배설하고 그날로 계교를 행하자.” 하고, 각각 돌아갔다.
≪김학공전≫, 작자 미상, 최운식, 29~30쪽
노비들이 반란을 꾀하는 장면인가?
주인인 김태가 죽었다. 새 주인은 아들인 김학공인데 나이 다섯 살이었다. 이 기회에 자유의 몸이 되려는 것이다.
김학공이 누구인가?
집안 대대로 벼슬을 한 김태의 아들이다. 자식이 없던 김태 부부가 백일기도를 드리고 낳았다. 사랑받으며 자라지만 갑자기 김태가 병을 얻어 죽으면서 노비의 반란에 직면하게 된다.
노비들의 반란 방법은 무엇인가?
주인을 살해하고 재물을 훔쳐 도망하는 것이다.
살인이 유일한 방법이었나?
합법적 방법으로는 납속수직(納贖授職)과 면천첩(免賤帖)이 있었다. 그러나 돈이 필요했다.
노비가 돈이 있겠나?
노비는 돈이 없다. 그러므로 합법적 방법으로는 신분 해방이 불가능했다.
노비이거나 죽거나 택일만이 가능한가?
그렇다. 이러한 구조가 노비와 주인의 죽음을 불렀다.
언제 이야기인가?
이 작품은 조선 후기 사회가 배경이다. 당시에는 농업기술이 발달하고 상품화폐경제가 진전되면서 부농, 상업자본가가 등장한다.
사회계층 분화가 시작되었다는 말인가?
그렇다. 이때 국가는 재정 확보를 위해 납속수직, 면천첩을 발행한다. 신분제가 크게 흔들렸다.
학공은 죽는가?
노비들의 말을 엿들은 유모 덕분에 학공의 어머니는 그들의 계획을 알게 된다. 땅을 파 학공을 숨기고 자신은 딸과 도망친다.
학공의 오디세이는 어떻게 전개되는가?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유랑하다 어느 부잣집에 의탁해 성장한다. 이후 가족의 원수를 갚기 위해 길을 떠난다. 계도라는 섬에 가서 김 동지의 딸 별선과 혼인한다.
벌써 해피엔딩인가?
인생이 그리 간단하겠나? 그 섬이 하필 도망간 노비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학공은 그들에게 신분이 탄로 나 죽을 위기에 처한다.
이번에는 어떻게 살아나는가?
학공의 처 별선이 나선다. 그와 옷을 바꿔 입고 대신 죽임을 당한다. 학공은 탈출한다.
살아남은 학공의 복수극은 어떻게 벌어지는가?
과거에 급제해 강주 자사로 부임한다. 가던 길에 어머니와 여동생을 만난다. 계도에 가 노비들을 처형한다. 별선의 시체를 빠뜨린 바닷가에서 수륙재(水陸齋)를 올린다. 별선이 살아난다.
이 작품은 신분 해방에 반대하는 것인가?
모반을 일으킨 노비들은 처형당하지만 충성을 다한 유모, 옥향, 춘섬은 속량된다.
선택적 처형과 속량은 양반 이데올로기의 확인인가?
모반에 의한 신분 해방은 용서하지 않지만 정당한 절차에 따른 신분 해방은 지지한다는 뜻이다.
≪김학공전≫은 백성들 사이에 떠도는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 하더라도 이야기를 한문 단편으로 기록하거나 소설로 꾸민 것은 당대의 문학 지식인들이었다. 양반에게 끝까지 충성을 다한 노비만 신분 해방을 맞는다는 결말은 계급 이해의 당연한 귀결이다.
기록자는 누구인가?
처음에는 떠도는 이야기를 이야기꾼들이 재밌게 꾸며 사람들에게 들려줬다. 이어 한문을 아는 지식인들이 한문 단편으로 기록했고 그 후 한글 소설 작가에 의해 ≪김학공전≫으로 구성되었다.
노비의 신분 해방의 욕망을 다룬 우리 고전소설은 또 무엇이 있나?
≪신계후전(申繼後傳)≫은 ≪김학공전≫을 개작한 것이다. ≪삽교별집(揷橋別集)≫ 권6 만록(漫錄)에는 ≪김학공전≫과 유사한 내용이 실렸다. ≪청구야담(靑邱野談)≫ 권2에 실린 <봉환상궁유면사(逢丸商窮儒免死)>에서도 상전을 죽여서라도 신분을 해방하려 했던 노비들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봉환상궁유면사>는 어떤 이야기인가?
가난한 선비가 밀린 신공(身貢)을 받으러 섬으로 노비들을 찾아간다. 노비들은 선비를 환대해 안심시킨 뒤 죽이려 한다. 힘센 철환 장수가 장정들을 데리고 선비를 죽이러 와서 보니 형님으로 모시던 사람이었다. 선비는 목숨을 건지고 신공도 받아 돌아간다.
이야기는 모두 양반의 편인가?
어떤 역경이 오든지 행복한 결말은 양반의 것이다. 이 틀은 변함이 없다.
노비 모반 이야기가 계속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은 뭔가?
자유에 대한 갈망은 끊이지 않았다. 모반을 제약하는 양반의 관리 장치 역시 끈질기게 이어졌다.
1912년에 발표된 이해조의 신소설 ≪탄금대≫는 ≪김학공전≫의 리메이크인가?
이해조는 20세기 초의 지식인답게 권선징악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주인공 만득은 자신을 죽이려던 적이 밀양 군수에게 처형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사면을 부탁한다. 원수에게 관용을 베풀고 개과천선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성숙한 자세를 보인다.
당신은 누구인가?
최운식이다.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