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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보러 와요

z20140703-s

여름 희곡 특집 3. 왜 못 잡나?

김광림의 ≪날 보러 와요≫

범인은 분명히 있다
살해되었으니 살해한 자가 있다. 그러나 찾지 못한다. 진실은 있지만 찾을 수 없고 찾아도 알 수 없고 그래서 진실은 알기 어렵다는 생각에 김광림은 이 작품을 썼다. 그래도 범인은 분명히 있다.

김 형사: 잘 생각해 봐, 정인규. 바로 며칠 전 일이야. 비 오던 날 말이야. 네가 신청한 곡이 나온다. 미현이 얼굴을 떠올린다. 넌 서서히 흥분되기 시작한다. 시계를 보니까 8시 20분. 넌 마음이 급해졌어. 8시 반이면 미현이가 뚝방을 건너니까. 라디오를 끄고 방 불도 끄고 넌 몰래 집을 빠져나온다. 빗속을 있는 힘을 다해 달린다, 뚝방까지. 뚝방 아래 숨어 미현이를 기다리고 있다, 숨을 헐떡이며. 뚝방 저쪽 끝 어둠 속에 미현이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인다. 우산을 받고 오고 있다. 빗소리에 섞여 찰박찰박 미현이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가슴이 뛴다. 숨이 가쁘다. 하지만 이 벅찬 가슴을 눌러야 한다. 그 순간을 맛보기 위해서는. 드디어 미현이가 머리 위로 지나간다. 이때다. 뛰어올라 뒤에서 미현이를 덮친다. 미현이는 너무 놀라 소리 한번 질러 보지 못하고 너의 포로가 된다. 미현이를 뚝방 아래 미리 봐 둔 장소까지 끌고 간다. 제대로 반항도 못 하면서 허우적거리는 미현이의 명치 부분을 정확하게 가격한다. 비를 맞으며 땅바닥에 누워 숨을 몰아쉬는 미현이의 모습에 참을 수 없는 충동을 느낀다. 난폭하게 옷을 벗긴다. 어둠 속에서 미현이의 알몸이 뽀얗게 빛난다. 실신한 상태에서도 미현이는 버둥거리며 몸을 웅크린다. 얼마간의 반항은 괜찮지. 오히려 즐거움을 더해 주니까. 미현이의 여린 살을 혀로 핥아 낸다. 속살의 따스함과 빗물의 차가움이 동시에 혀로 전해 온다. 이 쾌감! 아직 다 여물지 않은 젖꼭지. 이빨로 꽉 깨물어 주고 싶지만 치흔을 남겨서는 안 된다. 허리띠를 끄르고 바지를 내린다. 그리고 네 물건을 미현이의 거기에 문질러 댄다. 힘껏 더 힘껏. 그렇게 안간힘을 쓰지만 절정의 그 순간이 오기도 전에 망할 놈의 물건이 쪼그라들고 만다. 추위도 공포도 아닌 어떤 기억 때문에. 너를 괴롭혀 오던 열등의식. 미현이가 두 팔로 밀쳐 내는 순간 그놈의 기억이 되살아난 것이다. 두 팔로 따뜻하게 감싸 안아 주기를 바랬는데… 빌어먹을! 손을 더듬거려 스타킹을 찾는다. 검정색 스타킹이 미현이의 흰 목을 감는다. 세게 당긴다. 아주 세게. 있는 힘을 다해서. 미현이는 사지를 버둥거리다가 이내 축 늘어지고 만다. 차갑게 식어 가는 시체를 눕혀 놓고 다시 한 번 해 본다. 안 된다. 화가 난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미현이의 가방을 뒤져 필통에서 연필깎이 칼을 꺼낸다. 미현이의 가슴에 엑스 자를 긋는다. 한 번 두 번 세 번. 배에도 허벅지에도 미친 듯 엑스 자를 그어 댄다. 비가 미현이의 살갗을 계속 씻어 내리는데도 벌써 미현이의 몸은 시뻘건 피로 범벅이 되어 있다. 나쁜 년! 나를 밀쳐 내? 그까짓 구멍이 뭐라구? 넌 우산을 들어 그걸 미현이의 몸 깊숙이 밀어 넣는다.

(김 형사가 이 말을 하는 도중 정인규는 이를 계속 부인하다가 나중에 가서 그 부인은 범행을 시인하는 혹은 참회하는 듯한 울음으로 바뀐다.)

(음악을 끄며) 자, 이제 말해 봐. 어차피 넌 못 빠져나가. 혈액형은 이미 B형으로 확인이 됐고 이제 DNA 감식 결과가 나온다. (울고 있는 정인규에게) 다 털어놔, 사실대로. 털어놓고 나면 시원할 거야.

≪날 보러 와요≫, 김광림 지음, 132∼135쪽

강간 살해 사건인가?
그렇다, 연쇄 살인이다. 가장 절망적인 장면이다. 열네 살 소녀가 잔인한 방법으로 강간, 살해당했다.

정인규가 용의자인가?
살인이 있던 날 밤마다 한 라디오 프로에서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내보냈는데, 모두 정인규가 신청한 것이었다.

혈액형과 유전자는 어떻게 획득했는가?
박 형사가 사건 현장에서 흙을 채취해 왔다. 모두가 매달린 끝에 모근이 붙어 있는 체모를 찾아냈다. 범인의 것으로 추정한다. DNA 감식 결과만 확인하면 된다.

잡았나?
못 잡는다. 정인규와 체모의 DNA가 일치하지 않았다.

또 다른 용의자는 누구인가?
이영철은 범행 일체를 자백했지만 증거 부족으로 풀려났고, 남현태는 꿈과 현실을 혼동하는 것 외에 별다른 혐의점이 없다.

목격자가 있을 것 아닌가?
첫 번째 용의자였던 이영철이 목격자일 확률이 높았다. 진범이 아닌데도 자신이 저지른 일처럼 범행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 관음증이 있었다던 친구의 증언도 그가 목격자일 확률을 높여 준다.

이영철이 범인을 봤을 것 아닌가?
심문 이후 완전히 미쳐서 동네를 휘젓고 다니다가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어 죽었다.

이 연극은 세 용의자를 같은 배우가 연기하도록 설정했다. 왜 이랬나?
같은 사람이 용의자로 등장해도 형사들이 이를 알아채지 못한다는 연극적 패러독스다.

당신은 이 작품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
수사극인데 끝까지 범인을 못 잡았다. 죽은 사람이 있으니 범인이 있을 것이다. 범인이 진실을 상징한다면 ‘진실은 있지만 찾을 수 없다, 찾아도 알 수 없다’라는 철학적 명제를 떠올렸다. 결국 ‘진실은 알기 어렵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인가?
그렇다. 작품을 쓰기 위해 취재를 시작했을 때는 화성경찰서에 여전히 수사 본부가 남아 있었다.

그때는 사정이 어땠나?
오랫동안 범인이 잡히지 않아 막막한 때였다. 실제로도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DNA 검사에서 범인이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나 형사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제목이 왜 <날 보러 와요>인가?
중의법이다. 우선 당시 하도 연극 관객이 없어서 나 김광림이 하는 연극 좀 보러 오라는 뜻이었다. 또 혹시 범인이 객석에서 이 공연을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그런 제목을 붙였다.

연극 보고 형사들이 뭐라고 했나?
엘리트로 나오는 김 형사는 가공의 인물이고, 박 형사와 김 반장은 실제 형사를 모델로 했다. 이들이 초연을 보고 자신들의 애환을 잘 표현했다며 배우들에게 술을 샀다.

언제 초연했나?
1996년에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직접 연출을 맡아 공연했다. 이 공연으로 제20회 서울연극제 작품상, 연기상, 인기상을 수상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광림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교수다.

어떤 작품을 썼나?
놀이의 여러 형식을 연극적으로 표현한 작품을 비롯해, 실험정신이 충만한 작품을 다수 썼다.

대표작은 무엇인가?
<홍동지놀이>, <사랑을 찾아서>, <우리나라 우투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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