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양근 동화선집
최명표가 엮은 ≪노양근 동화선집≫
소년의 마음에 불을 심다
그의 주인공은 하나같이 빈농출신이다. 그래서 가난을 겁내지 않는다. 형편을 탓하지 않고 환경에 꺾이지 않는다. 노양근은 조선 소년의 가슴에 꺼지지 않는 불, 자존과 긍지를 심었다.
귀득이는 멋적어서 머언히 바라보고 섯다가
“시− 고까짓 거! 난 우리 집이 가서 포두 먹겟다.”
한마디 불숙하고 휙 도라섭니다.
만돌이 들어 보란 소립니다.
하지만 만돌이도 지지 안코 중얼거립니다.
“포두− 고까짓 거! 난 우리 아버지가 인제 또 과자 사다 준댓는데−”
“무어야 너이가 무슨 과자야−”
귀득이는 열이 벌컥 나서 다시 휙 돌아섯습니다. 그러나 귀득이는 그전에 늘 지가 먹을 것을 가지고 나와서 만돌이에게 자랑만 하고 혼자 먹은 것을 생각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아까보다두 더 큰 소리로 말합니다.
“과자− 고까짓 거− 그럼 우린 요담 공일날 화신식당 가서 점심 먹는다나−”
“애− 고까짓 거!”
만돌이는 이러케 큰소리는 해 놧으나 그 아래 말을 무슨 말을 해야 귀득이 말을 이길가− 하고 생각하다가
“너이 집이 인력거 잇어?”
장한 듯이 말합니다. 만돌이 아버지는 인력거꾼입니다.
“애− 고까짓 인력거− 우리 아버진 자동차만 늘 타고 다니는데−”
“시! 그까짓 자동차− 우리 아버진 마라송 선순데−”
이번에는 귀득이가 말문이 매켜서 쩔쩔 매다가 바싹 닥어스며
“고까짓 거! 너 유천(유치원)에 다녀?”
만돌이 앞에 팔을 내밀어 삿대질을 합니다. 저는 유치원에 다닌다는 자랑이지오.
만돌이는 유천 소리만 들으면 언제나 골을 벌컥 냅니다.
아니나 다를가 지금도 벌서 밸이 불뚝 일어나서
“그까짓 유천에나 다니문 제일(第一)이야 임마− 그럼 우리 뛰기 내기 해 봐−”
<고까짓 것>, ≪노양근 동화선집≫, 노양근 지음, 최명표 엮음, 91~93쪽
표기는 초판본(≪동아일보≫, 1938. 10. 2)을 따랐습니다.
둘이 주고받는 ‘고까짓 거’는 어떤 역할을 하는 장치인가?
내용상으로는 상대에게 지지 않으려는 충동을 자극한다. 자신의 계급적 속성을 드러내거나 감추려는 욕망의 모순을 나타낸다. 표현상으로는 놀이의 물질성을 강조해 동일어의 반복을 부추긴다. 내용과 표현이 복합적으로 대립하며 갈등을 조성하고 그 틈으로 웃음을 산출한다.
이 작품에서 작가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아버지가 인력거꾼인 열등한 조건조차 우격다짐으로 극복하는 만돌이의 오기를 강조한다. 만돌이는 더 이상 귀득이를 당할 재간이 없자 결국 뛰기 내기를 제안한다. 뛰기 내기에서는 만돌이가 이긴다. 가난할지라도 기죽지 않고 크기를 바라는 부모의 심정이 드러난 동화다. 노양근의 동화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이기도 하다.
노양근 동화의 주인공은 어떤 성격의 인물인가?
작품에 두루 출현하는 소년들은 한결같이 빈농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들은 집안 형편을 탓하지 않고 환경에 굴복하지 않는다. 소년들은 가난을 힘들어하지 않는다. 도리어 자신에게 부여된 물질 조건을 이용해 어려움을 헤쳐 나간다.
‘빈농 출신 소년들’은 시대 조건인가, 작가의 선택인가?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지만 당시 상황을 고려해 보면 동화의 문법에 충실한 것이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지라도 아이들은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단순한 믿음이야말로 동화가 지닌 미덕이다. 노양근의 동화는 그 시대의 사정을 충실히 반영한다. 그는 작가적 신념에 더해 작품에 아이들을 향한 기대감을 장치했다.
노양근의 궤적은 어떤 것인가?
193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왕성하게 활동했다. 1900년 황해도 금천군 백마면 명성리에서 태어났다. 개성의 송도고보를 졸업한 뒤 금천, 개성, 철원 등지의 보통학교에서 교원으로 재직했다. 1940년부터 해방 전까지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만주 등지를 유랑하면서 보냈다. 해방 후 이북에서 활동한 것은 확실하나 사망 연도는 불분명하다. ≪동아일보≫의 현상문예에 당선되었을 당시, 당선자 소개에 자술한 내용으로 짐작한다. 행적이 자세히 알려지지 않아 아직도 출생지를 경북 김천으로 잘못 알고 있는 연구자들이 있다.
이력이 확실치 않은 사연이 무엇인가?
일제강점기 때부터 주로 이북에서 교직에 종사했다. 해방 후에 남하하지 않은 탓이다. 고향이나 인접 고을에 파묻혀 작품 활동을 한 탓도 있다.
한국아동문학사에서 노양근의 중요성은 무엇인가?
1925년 신춘문예에 시가 선외작으로 뽑힌 이후 여러 신춘문예에 당선했고 1930년대에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이 시기는 아동문단이 제도화해 가던 중이었다. 그의 문학 활동은 아동문학의 장르 형성 과정을 살피기에 알맞다.
그의 신춘문예 당선 이력은 어떤가?
1925년 3월 ≪동아일보≫에 시 <거짓 말슴>이 선외작으로 뽑힌 것이 시작이다. 1930년 1월 ≪중외일보≫ 신춘문예 말의 전설 부문에 <의마>가 당선되었다. 193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요 <단풍>이 가작으로, 동화 <의좋은 동무>가 2등 당선되었다. 1934년 ≪동아일보≫에 동화 <눈 오는 날>이 가작으로 선정되었으며, 1935년에는 동화 <참새와 구렝이>가 선외가작으로 뽑혔다. 1936년 ≪동아일보≫에 동화 <날아다니는 사람>이, 1937년에는 ≪매일신보≫의 신년현상문예에 동요 <학교길>이 병(丙)에 당선됐다.
노양근 작품의 특징은?
식민지 현실을 적극으로 반영했다.
1930∼1940년대 식민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은 어떻게 전개되나?
일제의 강점으로 농토를 수탈당한 농민들이 만주 등지를 유랑하거나 도시 빈민층으로 편입되었다. 이런 시국 상황은 노양근의 작품에 그대로 삼투됐다. 그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농촌을 배경으로 삼았다.
카프의 영향을 받았나?
당시 문단은 카프가 주도하고 있었다. 카프는 문학대중화론의 일환으로 농민문학에 논의를 집중하는 한편, 아동문학을 새로운 영지로 선정해 공을 기울이던 중이었다. 이런 안팎의 상황이 노양근의 작품 활동에 영향을 끼쳤다.
<울지 마라 순남아>에서 식민지 상황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일제가 전쟁 국면을 조성하며 농산물의 수탈에 혈안이 되었던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했다. 빈농 현상은 일제의 강점 직후부터 촉진됐다. 농민은 시국 상황 악화로 일용할 양식조차 구하지 못하고 유이민으로 전락했다. 이 작품에서 앞뒷집 사는 정동이와 순남이가 헤어지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노양근은 동화로 무엇을 이루었나?
웃음을 행간에 마련했다. 주권을 빼앗긴 소년들이 웃지 못할 상황에서 웃도록 만든다. 독자들이 웃고 난 뒤에 씁쓸한 기분을 느끼는 이유다. 그 배경에 식민지적 상황이 자리하고 있는 줄 알게 될 즈음 작가는 전언을 남기고 떠나간다.
이 책에 실린 <참새와 구렝이>의 첫 대목이 바로 그런 행간인가?
그렇다. 동물 나라 이야기인줄 알고 읽다 보면 조선 반도와 식민지 주권 침탈 문제의 한가운데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날마다 날마다 노래와 춤으로 아무 근심 걱정도 없이 즐거웁고 평화스럽게 살아가는 참새나라에 하로는 뜻밖에 아조 심술궂은 구렁이 한마리가 어슬렁어슬렁 찾아와서는 퍽 점잔은 말씨로 참새들을 보고
“나는 뱀나라에서 당신 나라에 유람을 온 길이올시다. 드르니 당신들 나라는 경치도 조코 인심도 후하다니 얼마 동안 잘 구경하고 도라가게 해 주시면 대단히 고맙겟습니다.”
이러케 간청햇습니다.
구렁이의 점잔은 이 말을 들은 마음씨 고운 참새들은 아모 의심도 없이 오히려 한편으로 고마운 생각까지 나서
“참 이러케 아무 볼 것도 없는 나라에 먼 길에 유람을 와 주니 매우 감사합니다. 경치야 별로 볼 것이 없지마는 얼마 동안 잘 노시다 가십시오.”
하고 환영하는 말을 하얏습니다.
그래서 그날부터 구렁이는 참새나라의 경치 조흔 곳은 다 찾어다니며 마음대로 구경하기를 시작하엿습니다.
다른 나라의 점잔흔 손님이라고 구렁이는 가는 곳마다 참새 떼들이 노래를 부른다. 맛난 음식으로 대접한다 하야 매우 후한 대접을 받엇습니다.
그러케 하기를 하로 이틀 사흘− 날이 가는 동안 한 달이 훌적 가고 또 두 달째 지나가도 구렁이는 아직 저리 비−ㅇ빙 돌아다니면서 자기 나라로 돌아갈 생각조차 잊은 모양이엿습니다.
그때에야 참새 떼들은 비로소
“인젠 그만하면 웬만한 덴 거진 다 구경햇을 터인데 웨? 아니 갈가 그 구렁이가….”
걱정하기를 시작하엿습니다.
더구나 날이 가고 달이 갈스록 하구한 날 무엇으로써 대접할가− 하는 것이 큰 걱정거린 데다가 조곰만 대접을 좀 잘못해도 구렁이 손님의 기색이 대단히 조치 못한 것을 볼 때에는 참새들은 그만 속이 타서 못 견딜 지경이엿습니다.
그의 이름이 문단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언제인가?
장편 소년소설 ≪열세 동무≫(한성도서, 1940)의 출간과 시기를 같이한다.
≪열세 동무≫는 왜 주목받았나?
1936년 ≪동아일보≫에서 두 달가량 연재하면서 독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마무리가 안 된 상태에서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신문이 정간되면서 연재도 중단되었다. 그 후 작가가 뒷부분을 마무리하고 발간해 세상에 자신의 문명(文名)을 알렸다. 이 작품은 한국 아동문단에 본격적인 장편소설의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도 의의가 있다.
주인공 시환은 어떤 인물인가?
박흥민은 “현실이 요구하는 가장 지도적 농촌인물로서 우리는 춘원의 ≪흙≫ 속에서 허숭을 발견했고, 이제 다시 ≪열세 동무≫의 주인공 시환을 얻었다”고 했다.
≪날아다니는 사람≫은 어떤 작품인가?
1939년에 출판된 동화집이다. 조선기념도서출판관에서 펴냈다. 김태오는 “동화의 본질적 사명인 문학적 가치와 종속적 사명인 교육적 가치가 상반되어 있어 아동은 물론, 어른이라 하더라도 일독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추천했다.
노양근에 대해 아직 자료 정리도 안 되었다는 것이 사실인가?
그렇다. 중복 발표한 것들이 있어서 서지 확정 작업이 시급하다. 원문 대조가 필요하나 재북 작가여서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중복 발표라면 시조 <사향>이 세 번 발표된 것과 같은 사례를 말하는가?
그렇다. 노양아란 필명으로 ≪사해공론≫ 1936년 4월호에 발표한 시조 <사향>은 1939년 1월 웅계사에서 창간한 ≪웅계≫ 제1호에 본명으로 재발표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원래 1936년 ≪조선문단≫ 1월호에 처음 발표된 것이다. 원문 중에서 ‘사천여 리’가 ‘오천여 리’로 달라진 것 외에 내용은 같다. 한 작품을 세 번 발표한 것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최명표다. 계간 ≪문예연구≫와 계간 ≪아동문학평론≫의 편집 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