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세상의 끝
프랑스 희곡 ≪단지 세상의 끝(Juste la fin du monde)≫
그렇다고 끝나는 건 아니야
프랑스에서 2007년은 장뤼크 라가르스의 해였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임혜경은 독특한 독백체 희곡 ≪단지 세상의 끝≫을 한국 독자에게 소개한다. 죽으면 그의 세상은 끝나겠지만 그렇다고 모든 세상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루이: 정확히 이렇게 되었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되었다,
하루가 끝날 무렵,
하고 싶은 말은 하나도 하지 못하고
−그냥 생각만 했던 거고 그건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들을 고통스럽게 하지 않고,
난 길을 나섰다,
역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떠나게.
다시는 이렇게 오래 걸려서 오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거짓말을 한다,
여기, 다시, 조만간 다시 오겠다고 약속한다,
그런 말들.
또 몇 주가 가고, 아마 몇 달이 지나가고,
전화를 하고, 소식을 전한다,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는다, 들으려고 노력해 본다,
내가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걸 내비치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단지 세상의 끝≫(장뤼크 라가르스 지음, 임혜경 옮김), 107~108쪽
루이 독백 장면인데 전후 맥락은?
시한부를 선고받고 10년 만에 가족에게 돌아갔지만 자기 얘기는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다시 집을 떠나야 했다고 고백한다.
세 번이나 개작한 작품 맞나?
라가르스가 1988년에 쓰기 시작해 2년 만에 탈고한 뒤 1995년까지 세 번이나 고쳐 썼다. 특별한 애착이다.
세상의 끝은 어디인가?
10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큰아들 루이를 만나기 위해 어머니, 여동생 쉬잔, 동생 앙투안 내외가 모였다. 불치병으로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루이는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돌아왔지만 식구들은 그에게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식구들이 쉼 없이 쏟아내는 비난과 원망을 그는 제대로 대꾸조차 않고 가만히 듣기만 한다. 루이는 결국 그들에게 하려 했던 말을 가슴에 품은 채 다시 집을 떠난다.
루이는 에이즈로 죽은 작가의 분신인가?
아마도. 그는 자기가 보고 느낀 가족 이야기를 독백체로 들려준다. 지적이고 섬세한 성격이며, 글 쓰는 사람으로 암시된다. 가족에게 이방인 취급을 당하는 비극적인 인물이다.
집을 떠난 이유는 가족으로부터의 소외인가?
어려서부터 자신이 가족들에게 이해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며, 그것이 큰 불행이라고 여긴 듯하다. 명시되지는 않지만 “형은 그 누구도 자기를 좋아한 적이 없다고 여겼다”는 앙투안의 대사로 짐작할 수 있다. 그를 작가의 분신으로 본다면 남과 다른 천성이나 호모섹슈얼리티도 한몫했을 것이다.
루이의 부재는 가족에게 어떻게 나타나는가?
특히 앙투안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형을 대신해 식구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살아온 것이다. 그에 반해 큰오빠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 쉬잔은 루이에게 환상과 호기심을 갖고 있다. 누구보다 루이를 사랑하고 잘 이해하는 어머니는 그런 애정을 아들에게 직접 표현하지 않는다.
루이와 앙투안의 관계는 사랑인가?
애증의 관계다. 앙투안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형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으며 연민을 느낀다. 하지만 형이 떠난 데 대한 죄책감과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 형만큼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한 자격지심이 루이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나타나기도 한다.
등장 인물이 정확히 말하려고 애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루이에 대한 자격지심, 열등감의 결과다. 루이는 많이 배운데다 육체노동에 종사하지 않고 글 쓰는 일을 한다. 식구들은 이런 점을 의식해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 표현을 동원하고 고상하게 말하려 애쓴다. 문법에 맞지 않게 말하다가도 잘못을 인식하면 수정해서 정확히 말하려 한다. 앞에 했던 말을 부연하고, 반복 설명하는 대사에서 이런 노력이 드러난다.
희곡인데 소설 냄새가 난다. 이유는?
지문 없이 짧은 문장과 긴 문장이 섞인 운문체 희곡이다. 잦은 쉼표 사용, 문장 반복은 독특한 리듬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앞에 했던 말을 수정, 보완, 반복하면서 좀 더 정확히 말하려는 인물들의 의식적 노력을 보여 준다. 그 밖에 독백체가 많은 것도 큰 특징이다.
독백체의 기능과 효과는?
언어 자체가 극의 흐름과 극적인 행동을 만들어 내는 작품이다. 대사 언어 중심으로 인물 내면 심리를 묘사하면서 주제를 부각하기 위해 지문도 최소화했다.
주제는 가족 소통인가?
가족 간 소통 부재다. 그 밖에도 죽음과 고독이라는 주제가 두드러지며 신화와 성경에서 탕자 아들의 귀환, 카인과 아벨, 율리시스 같은 주요 테마를 차용했다.
극의 전체 구조는 어떻게 짜였는가?
1부와 2부 사이에 환상적인 장면으로 이루어진 막간극을 넣었다. 프롤로그, 에필로그처럼 루이의 독백체로 이루어진 장면들은 선형적인 시간 흐름을 끊어 놓는다. 그 때문에 각 장면은 연결되는 듯하지만 독립적인 텍스트, 콜라주로도 읽힌다. 이런 현대적인 극작 요소가 프롤로그, 에필로그, 막간극이라는 고대 그리스극, 고전극 양식 안에 녹아 있다.
“단지 세상의 끝”이 무슨 말인가?
이 작품에서 ‘세상’은 루이의 세상이다. 죽음으로 루이의 세상은 끝나겠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끝나는 건 아니야”, “별것 아니야” 하는 식의 아이러니한 뉘앙스가 풍긴다.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면서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작가가 스스로를 달래는 위로의 말, 최면의 말로 읽을 수 있다.
장뤼크 라가르스는 누구인가?
프랑스에서 현재 가장 많이 공연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지난 2007년이 ‘장뤼크 라가르스의 해’였다. 현재까지도 프랑스 전역에서 그와 관련한 학술 대회, 전시회, 낭독 공연, 연극과 오페라 공연이 진행 중이다. 그의 작품들은 코메디프랑세즈 레퍼토리에 들어 있을 뿐 아니라, 바칼로레아, 교수자격시험 등에도 출제된다.
그의 인생은 어떤 것이었나?
1957년 오트손 지방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브장송으로 간다. 석사를 마친 뒤 브장송 국립연극원에 등록한다. 연극원 동기들과 아마추어 극단 ‘마차극장’을 만들어 배우로 활동하는 동시에 연출, 극작에 관여했다. 1990년 빌라 메디치에서 제정한 ‘레오나르도다빈치상’을 수상한 이래로 그의 작품이 소개되기 시작해 희곡 작가로서 주목받았다. 1988년 에이즈 진단을 받고 1995년 37세 나이로 요절하기까지 희곡 25편 외에 소설, 시나리오, 에세이 등 많은 작품을 써서 남겼다. 특히 희곡 작품은 사후에 더욱 유명해져서 현재는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언어로 공연된다.
라가르스 작품의 특징은?
언어의 무의미와 부조리에 도전했던 베케트, 이오네스코의 현대극 경향에 서사와 시적 요소를 더하면서 무의미 속 의미를 탐색했다.
당신은 그를 어떻게 만났나?
프랑스에서 안식년을 보낼 때 우연히 <난 집에 있었지 그리고 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지> 낭독 공연을 보게 되었다. 라가르스에 대해 전혀 몰랐던 당시, 홍보 전단에 적힌 ‘전화 예약 필수’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낭독 공연을 배우들이 앉아서 책을 읽어 주는 정도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료 낭독 공연에 예약이 필요할 만큼 관객이 든다고? 그러나 공연 당일, 극장 앞에 길게 늘어선 관객과 밀도 높은 공연을 보고 낭독 공연에 대한 선입견을 떨쳤다.
낭독 공연은 어떤 공연인가?
무대장치, 음향, 조명을 최소화한 가운데 배우들의 소리와 약간의 움직임만으로 관객에게 작품을 전달한다. 단순히 작품을 읽어 주는 것만은 아니고 연출을 통해 다양한 형태로 무대화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자주 공연되는가?
외국 번역 작품을 낭독 공연을 통해 소개하기도 하고 요즘엔 소설 같은 비공연 텍스트를 무대화한 경우도 종종 있다.
번역 계기는?
2007년 ‘라가르스의 해’를 맞아 <난 집에 있었지 그리고 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를 번역, 출간했고 그 인연으로 브장송에 초대되어 세계 각국에서 모인 라가르스 작품 번역자, 연출가들과 교류할 기회를 가졌다. 그때 행사를 주관한 프랑스 출판사가 한국에 라가스를 소개해 달라며 그의 책을 여러 권 선물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이 작품에 매력을 느꼈다.
당신은 누구인가?
임혜경이다. 숙명여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다. 프랑스어로 쓴 현대 희곡을 번역해 공연하는 극단 프랑코포니 대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