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통의 죽음
<4·19특집> 혁명 이야기 5. 신은 혁명을 몰랐을까?
임호일이 옮긴 게오르크 뷔히너(Georg Büchner)의 ≪당통의 죽음(Dantons Tod)≫
세상은 얼마나 나쁜 것인가?
굴종과 억압, 수탈과 질곡, 몸과 마음의 예속을 거부하는 혁명. 악을 처단하고 동지를 처형하고 반혁명과의 길고 긴 싸움. 신은 더 나은 세상을 몰랐을까?
당통: 보시오, 저 비열한 살인자들을! (중략) 여러분은 빵을 원하는데 저들은 여러분한테 사람 머리를 던져 주고 있소. 여러분은 목이 마른데 저자들은 여러분을 보고 단두대의 피를 빨아 먹으라 하오.
≪당통의 죽음≫, 게오르크 뷔히너 지음, 임호일 옮김, 153∼154쪽
당통은 지금 어디 있는가?
반역죄로 체포되어 혁명재판소 피고석에 섰다. 자신을 고소한 “저 비열한 살인자들”을 탄핵하고 무죄를 주장한다.
“저 비열한 살인자들”이 누구인가?
공안위원회 위원들이다. 로베스피에르와 그의 추종자 생쥐스트, 쿠통 등이다.
당통과 로베스피에르의 투쟁인가?
그렇다. 한때 프랑스대혁명을 이끈 동지였지만 이젠 원수가 되었다.
동지는 어쩌다 원수가 되었나?
9월 학살 때문이다.
9월 학살이 뭔가?
당통의 주도로 1792년 9월 2일부터 사흘간 반혁명 혐의를 받은 귀족과 성직자 등 1600명가량을 학살한 사건이다.
1600명의 학살을 뒤따른 것은 무엇인가?
당통은 자신의 책임을 곱씹으며 가난과 죽음이 만연한 혁명에 회의를 품는다. 로베스피에르는 루이 16세를 처형하고 공포정치를 실시하면서 혁명을 극단으로 몰고 간다.
<당통의 죽음>은 무엇을 말하는가?
당통과 로베스피에르가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다가 로베스피에르 일파가 당통 일파를 처형하기까지 10일 남짓한 기간을 그린다.
대립의 논리는 무엇인가?
쾌락주의와 자유주의 대 도덕주의와 공화주의의 구도다.
어디서부터 사단이 시작되었는가?
로베스피에르는 당통을 “혁명과업을 반밖에 이룩하지 못한” 기생적 이데올로기의 대변자로 규정하고 당통은 로베스피에르를 “나보다 남을 더 나쁘게 보겠다는 고약한 심보”를 가진 위선자라고 비판한다. 로베스피에르는 당통의 비난에 심리적 타격을 받는다.
당통의 비난에 로베스피에르는 어떻게 대응하는가?
자신의 정치 행보에 방해가 되는 당통 일파를 제거하기로 결심한다.
당통은 눈치채지 못하는가?
그는 로베스피에르 진영이 감히 자신을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 믿었다. 로베스피에르보다 자신의 명성이 더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동료들과 함께 체포된다.
혁명재판에서 당통의 연설은 효과가 있었는가?
그의 달변에 청중은 박수를 보내고 로베스피에르 타도를 외치는 등 역전의 기미를 보인다.
그래서 이겼는가?
당통과 비슷한 시기에 반역죄로 투옥된 디용 장군의 탈옥과 모반 음모가 발각되어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든다. 디용은 당통의 부인에게 받은 돈으로 간수를 매수한 뒤 당통과 함께 탈옥해 로베스피에르를 축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라플로트의 밀고로 실패하고 만다.
작가 뷔히너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당통과 로베스피에르 모두로부터 비판적 거리를 유지한다. 양자가 주장하는 논리 이면에는 이기주의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논리 뒤에 숨은 그들의 이기주의는 무엇인가?
당통의 쾌락주의는 국민의 행복을 보장하지 못하고 로베스피에르의 도덕주의는 국민의 허기를 달래지 못한다. 민중 대다수가 굶주리는 불평등한 사회에서 “혁명으로 배불린” 당통이 특권층만 누릴 수 있는 쾌락을 내세우는 것은 소수의 특권 수호를 위한 이기주의일 뿐이다. 로베스피에르의 도덕주의는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채우는 수단으로, 공포 곧 폭력과 결탁함으로써 비도덕이 된다. “사적인 증오심이나 감정 때문에” 당통을 체포했다는 르장드르의 발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가 이 작품을 쓴 계기는 무엇인가?
<헤센 급전>을 배포해 정치범으로 쫓기자 망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1835년 1∼2월에 썼다.
<헤센 급전>이 무엇인가?
프랑스대혁명의 영향을 받아 만든 정치 전단이다. 굴종과 억압, 수탈 등 온갖 질곡 속에서 육체적 정신적 자유를 박탈당한 채 노예처럼 살아가는 민중을 선동한다. 뷔히너의 문학작품은 전단에 담긴 사상의 예술적 형상화다.
당대 문단은 <당통의 죽음>을 뭐라고 보았는가?
혹평을 쏟아냈다. 독창성이 부족하고 구성이 엉성하다는 둥, 등장인물들의 언어가 비속하다는 둥, 너무 외설적이며 부도덕하다는 둥 말이 많았다.
독창성 시비의 근거가 있나?
작품의 6분의 1이 티에르와 미네의 역사 기록에서 발췌한 인용문이었다. 특히 로베스피에르와 생쥐스트의 국민의회 연설, 당통의 혁명재판소 연설은 원문을 거의 그대로 옮겼다.
문단의 혹평에 대한 뷔히너의 반응은?
양친에게 보내는 편지에 “극작가란 역사가와 다를 바 없”으며 “하나님께서는 분명 이 세상이 어떻게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이미 다 아시고 이 세상을 만드셨을 텐데, 그런 하나님보다 더 좋은 세상은 만들고 싶지 않노라”고 했다.
24세에 요절한 이 천재 작가의 삶은 어떤 것이었나?
1813년 독일 헤센 공국에서 태어났다. 의사인 아버지의 강요에 못 이겨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해 <물고기 신경조직에 관하여>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희곡 <당통의 죽음>, <레옹스와 레나>, <보이체크>와 단편소설 <렌츠>를 남겼다. 독일의 시적 리얼리즘 문학을 대표하는 켈러는 <보이체크>가 “에밀 졸라의 ≪나나≫보다 사실성이 더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이후 뷔히너는 독일문학의 이단아가 아닌 총아로 부활한다. 오늘날 독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이 그의 이름으로 수여된다.
당신은 누구인가?
임호일이다. 동국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명예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