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철학 천줄읽기
늦었지만 고맙다. 지만지 국내 최초 출간 고전 15. <<동물 철학>>
인간은 왜 돌이 아닌가?
사람이 변하여 돌이 되고 돌이 다시 사람이 되는 이야기는 거의 모든 민족 설화와 신화의 단골 메뉴다. 지금 우리는 그것을 이야기일 뿐이라 치부하지만 그때 그 사람들에게는 사실이었고 진리였다. 언제부터 우리는 사람이 돌이 되거나 돌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을까? <<동물 철학>>은 그것이 라마르크 이후였음을 증언한다. 그가 자신의 생명 연구를 ‘생물학’이라고 부르기 전까지 돌은 나무와, 나무는 개와, 개는 사람과 정말 무엇이 다른지 입증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노작을 골라 옮긴 이정희에게 라마르크와 생물학에 대해 물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연세대학교 미디어아트연구소 HK 연구원 이정희다.
<<동물 철학>>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가?
생물학의 역사와 철학을 전공했다. 근대 생물학의 시조격인 라마르크를 만났다. 그의 역작인 <<동물 철학>>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근대 생물학의 그 어떤 이론도 <<동물 철학>>의 사유를 밟지 않고는 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단한 책인가?
19세기 초에 출간되었다. 그때까지 생리학이나 해부학에서 단편적으로 이루어졌던 생명 연구를 생물학이라는 독립된 분과 학문으로 통합하고 체계를 세운 책이다. 무기계와 구분되는 생명체의 본질과 메커니즘을 밝혀내려 했다.
내용은 무엇인가?
모두 3부로 구성되었다. 제1부는 생물체의 분류와 진화론을, 제2부는 무기물질과 본질적으로 차별화되는 생물체의 조직화를, 제3부는 물리화학적 생물학의 연장선상에서 물리화학적 심리생리학을 다루고 있다.
저자, 라마르크는 어떤 사람인가?
우리에겐 흔히 기린의 목으로 상징되는 용불용설과 획득형질 유전설의 제창자로 알려졌다. 그러나 무척추동물 분류학자, 고생물학의창시자, 생물학(biologie)의 초안자, 현대적 의미의 화석(fossile) 용어의 고안자, 진화론(transformisme)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생물학의 창시자인가?
그렇다. 생물학사에서 그가 남긴 가장 큰 족적은 단편적 연구들로 이루어졌던 이전의 생명 연구를 독립된 분과 학문으로 체계화하고 여기에 ‘생물학’이라는 명칭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어떻게 그런 엄청난 일을 해냈는가?
당시 보편적이던 동물, 식물, 광물의 3계 구분을 동식물이 합쳐진 생물계와 이를 제외한 나머지 무기계로 이분했다. 린네의 분류에 따라 구분되었던 동물계와 식물계는 이후부터 생명계라는 하나의 장으로 재편된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동물과 식물을 광물과 분리하고 이를 생물계로 인식함으로써 생명이 있는 것에 대해 일관된 물리화학적 체계를 근거로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무슨 뜻인가?
동물과 광물은 쉽게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식물은 동물과 광물 사이에 있는 어떤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상식으로 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식물과 광물은 결코 혼동되어서는 안 되는 물질 구조의 차이가 있다. 이것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생물과 무기물을 혼동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생물에 대한 과학 연구는 혼동에 빠지게 된다.
그가 다윈보다 유명하지 못한 이유는?
라마르크의 이론은 지금까지 진화 메커니즘 관련 이론만 소개되었다. 오해도 많았다. 생물학의 창시자로서는 아쉬운 일이다.
까닭이 무엇인가?
권력과 이데올로기로 점철되었던 생물학 역사상의 복잡한 사연들이 얽혀 있다. 동시대 퀴비에와의 대립, 다윈주의 등장과 더불어 19세기 중반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진화 메커니즘 논쟁은 라마르크의 이론을 왜곡하거나 부분적으로만 수용하는 경향을 유도했다. 또 라마르크주의는 신라마르크주의로 흡수된다. 이 과정에서 이데올로기 논쟁에 휘말리게 되고 결국 과학 영역으로부터 밀려나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현대에 라마르크의 위상은?
학문의 업적을 당대에 인정받지 못한 비운의 학자였다. 프랑스 대혁명기의 격동적인 정치 상황과 연관된 복잡한 이유들이 작용한 결과였다. 하지만 라마르크의 지지자들이 맥을 이어 왔고, 과학사가들은 라마르크를 재조명하고 있다.
획득형질 유전설은 어떤가?
20세기까지만 해도 과학 영역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최근 후성유전학 연구가 활발히 진행됨에 따라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추세다.
지금 한국에서 <<동물 철학>>의 의미는?
과학 연구 역시 한 시대를 풍미하다가 사라지곤 한다. 생물학에서는 20세기 초반의 집단유전 연구가 그랬고 20세기 후반의 유전자결정론이 그랬다. 그러나 그냥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니다. 다음 연구가 대를 잇는다. 20세기 후반 전성기를 이루었던 게놈프로젝트가 일단락지어졌지만, 그 성과에 힘입어 후성유전학 연구의 전성기가 찾아왔다. 당분간 활발한 연구가 전망되는 후성유전학은 생명체 현상을 환경과의 상호 관계의 결과로 설명한 19세기 초 라마르크의 이론을 지지한다. 현대 학자들이 의식하든 못 하든 생물체의 근원적 원리를 폭넓게 조망한 라마르크의 <<동물 철학>>은 생명 현상에 대한 다양한 연구들의 굴곡진 성쇠를 면면히 뒷받침하고 있는 토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고 또 해 나갈 것이다.
생명 존재에 필수적인 조건들은 가장 단순한 조직화에서 가장 뚜렷이 나타나며, 또한 가장 단순한 조직화로 환원된다. 동물 사다리의 전반을 관찰하면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이 단순한 조직화가 어떻게 점진적으로 복잡한 조직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 어떻게 일정한 변화 원인에 의해 여타의 복잡한 동물로 유도될 수 있었는지 알아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관찰을 통해 뒷받침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고찰을 사용하여 내가 주목했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 확신하게 되었다.
첫째, 알려진 여러 사실들은 한 기관이 지속적으로 사용되면 그 기관의 발달, 강화, 성장 자체가 촉진되고, 반면에 한 기관을 사용하지 않는 상황(défaut d’emploi)이 습관화되면 그 기관의 발달이 저해되고 훼손되어 점진적으로 축소되며, 만일 이러한 불용이 여러 세대에 걸쳐 이어지는 모든 개체들에서 오랫동안 유지될 경우 결국 그 기관은 소실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환경의 변화가 한 동물 종족 개체들의 습성을 변화시킴으로써 덜 사용된 기관들은 점차 쇠퇴하게 되는 반면, 많이 사용된 기관들은 개체들이 그 기관들을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빈도에 따라 더 발달되고 활력을 얻는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둘째, 동물 신체의 세포조직을 둘러싼 매우 부드러운 부위에서 일어나는 유체 운동이 만들어내는 힘에 관해 숙고한 끝에, 나는 유기체의 유체가 운동을 더해감에 따라 그 신체의 세포조직 내에서 움직이면서 길을 열어 다양한 통로를 형성하며 신체의 세포조직을 변형시켜, 결국 이 유체들이 위치하고 있는 조직화의 상태에 따라 다양한 기관들을 만들어낸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 두 가지 고찰에 따라 나는 동물 내부의 ‘유체 운동’과 새로운 ‘환경의 영향’이 현존하는 상태대로의 다양한 동물을 만들어낸 두 가지 일반적 원인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여기서 유체 운동은 조직화의 구조가 복잡할수록 가속화된다. 또한 동물들은 그들이 서식할 수 있는 모든 장소에 널리 퍼져 존재하므로 새로운 환경의 영향을 받게 된다.
나는 이 책에서 가장 단순한 조직화 동물에서 나타나는 생명 존재의 기본 조건들을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장 불완전한 동물에서 가장 완전한 동물에 이르기까지 조직화의 구성이 복잡화되는 원인들을 밝혀내고자 한다. 또한 동물이 지니는 ‘감정(sentiment)’의 물리적 원인에 대해서도 알아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이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결코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동물 철학>>, 장 바티스트 드 라마르크 지음, 이정희 옮김, 35~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