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기
청옥당(靑玉堂)이 편찬하고 정용수가 역주한 작자 미상의 ≪동상기(東廂記)≫
연암은 반성했을까?
정조는 이옥과 박지원에게 반성문을 쓰라 명한다. 그들의 문체가 문제였다. 명말·청초의 패사소품체의 영향 때문이었다. 군자의 풍모는 사라지고 개인의 감정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쁜 일인가?
둘째 아전: ‘총각 때는 더벅머리더니, 갑자기 관을 썼도다(總角艸兮, 突而弁兮)’라더니 자네 오늘 모습이 ‘물고기가 용 된 격’일세.
셋째 아전 : 우리들이 오늘 사또를 뵙고 환상(還上)도 탔으니, 자네! 사백 년 내려온 풍습은 알겠지?
김 도령 : (웃는다.)
큰 아전 : 우리들 세 사람 중에 내가 당상(堂上)이니, 내 마땅히 문목(問目)을 내고 공초(供招)를 받겠네. 자네는 하나하나 사실대로 공초를 올려 보세. 집장자(執杖者)는 누가 하겠는가? 법에 따라 시행하라!
둘째 아전 : (큰 소리로 ‘예이’ 한다. 띠를 풀어 오랏줄을 만들어 김 도령 앞에 펴 놓는다.) 어느 쪽 발이 자네가 미워하는 발인가? 속히 미워하는 발을 내놓아 보게.
김 도령 : (일어나서 부득이 발을 내민다.)
둘째 아전 : (띠를 걸치고 돌아선다.)
셋째 아전 : 꼬마야! 너는 빨랫방망이를 가져오너라.
아이 종 : (방망이를 바친다.)
셋째 아전 : (때린다.) 이게 장맛비처럼 족쳐야[足鐵也] 떨어질 겐가.
김 도령 : 아야! 아야! 무슨 죄를 졌다고 이렇게 심한 매를 치시오?
큰 아전 : (웃는다.) 네 죄를 네가 정말 모르겠느냐? 다들 서 있는데 너만 자빠져 누워 발을 하늘로 향하고 있으니 이것이 죄가 아니더냐? 네 장가들기 하루 전날 무슨 물건을 먼저 보냈는가?
김 도령 : 혼서지와 채단만 보냈소.
큰 아전 : 또 무슨 물건을 보냈는가?
김 도령 : 함을 보냈소.
큰 아전 : 그 함(函)을 장에서 사 온 것인가? 집에서 만든 것인가? 어떻게 보냈는가?
김 도령 : 호조에서 보냈고 기럭아비가 지고 갔소.
큰 아전 : 호조에서 마련해 보낸 것이니 아마 특별하게 만든 것이렷다. 노도령 장가니 지고 가면 무거워서 당연히 고달플 거라고 생각했겠지? 네 장가갈 때에 길가에는 구경꾼이 하나도 없더냐? 무엇이든 하는 말이 있더냐?
김 도령 : 늙은이, 젊은이, 사내[似羅海], 여편네[如平萊], 구경꾼은 자못 많았으나 하는 말은 듣지 못했소.
큰 아전 : 간악하구나! 매우 쳐라!
≪동상기≫, 청옥당 엮음, 정용수 옮김, 109~111쪽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고전 희곡인가?
1791년 6월, 정조는 한성 오부에 칙령을 내려 혼기를 넘긴 백성들의 혼인을 주선하고 혼수까지 보조한다. <동상기>는 이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발바닥을 맞는 김 도령은 누구인가?
김사중의 서손인 희집이다. 정조 덕분에 장가갈 기회를 얻었지만 가난해서 파혼당했다. 하지만 맞선을 담당한 경조윤과 예부는 이미 국왕에게 하명을 시행했다고 보고한 뒤였다. 다행히 같은 이유로 시집가지 못한 신덕빈의 딸이 있었다. 그래서 책임을 맡은 이승훈과 윤형이 나서서 두 사람의 혼인을 성사시킨다.
당시 신부의 차림은 어떠했는가?
신부 차림을 묘사한 대목을 보자. “흰 모시 깨끼적삼[角歧赤衫]에 구슬처럼 빛나는 명주 쌍침 허리띠요, 흰 모시 네 폭 잠방이·가는 세모시 붕어 잠방이에 진홍빛 주름 비단 겹치마·쪽빛 가는 명주 홑치마·청모시 보통 치마요. 웃옷 삼작(三勺)은 초록색·송화색·보라색[寶羅色]에 갑사·숙초·광월사 등이요, 자주색[紫的色] 삼회장 저고리에 오합무지기·삼합무지기요, 가는 무명 버선에 푸른 바탕에 붉은 무늬 비단 당혜요, 낭자머리는 육진다래[六鎭月矣]·족두리[簇頭里]에 은죽절(銀竹節)이외다.”
≪동상기≫는 어떤 책인가?
<동상소지(東床小識)>, <김신부부전(金申夫婦傳)>, <동상기(東床記)>로 구성되었다. <동상소지>는 작품을 읽기에 앞서 독자들에게 간단히 전하는 말이다. “사건이 혹시 와전되었는지도 묻지 말고, 문장이 무슨 체인지도 묻지 말며, 또한 지은이가 누구인지도 묻지 말라”고 했다. <김신부부전>은 김희집과 신덕빈의 딸의 혼사를 소설로 쓰라는 정조의 명을 받고 이덕무가 쓴 작품이다. <동상기>는 <김신부부전>을 희곡으로 각색한 작품인데 작가가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다.
그렇다면 청옥당은 누구인가?
조선 후기의 이름 모를 인물이다. 작품을 창작한 것이 아니라 엮었다. <동상기>의 저자로는 이덕무, 문양산인, 이옥 등이 지목된다. 문양산인은 이덕무와 동일 인물로 추정하기도 한다. 이옥은 가람문고본 ≪청구야담≫에서 <동상기>의 저자로 나온다.
<동상소지>에서 아무것도 묻지 말라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문체 때문이다. 조선에서는 오랫동안 ≪논어≫나 ≪대학≫ 같은 책에서 볼 수 있는 고문투만을 글로 인정해 왔다. 그러나 18세기가 되면서 명말·청초의 패사소품이 들어오고 감정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패사소품체가 널리 퍼졌다. <동상기>에서 나타나는 “멍멍아! 내가 만약 너에게 거짓말을 하면 네 딸이다” 같은 문장은 조선 사회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문장이었다. 그러니 아무것도 묻지 말라는 것이다.
이덕무와 이옥이 정조에게 견책당한 이유도 문체 때문인가?
백화투 때문이다. ≪동상기≫에서는 속자, 탈자, 축자, 오자뿐만 아니라 표기법에서도 오류가 두루 나타나는데 이것은 백화투로 인한 현상이다. 언어의 혼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패관잡기의 영향으로 박지원, 이옥, 이덕무, 김려처럼 개성적인 문체를 사용하는 문인들이 등장했고 정조의 문체반정을 초래했다.
문체반정이 무엇인가?
정조가 감정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패사소품체를 쓰는 것을 금지한 사건이다. 그는 문체가 시대를 반영한다며 문체를 바로잡으려는 정책을 펼쳤다. 그리하여 패사소품체를 썼던 이옥과 박지원을 비롯한 몇몇 인사들에게 반성문을 쓰도록 명하고 고문투를 쓰지 않으면 과거에서도 붙지 못하도록 했다.
백화투가 언어의 혼란을 가져온 이유는 무엇인가?
백화투는 구어를 글로 표현한 것인데 고문투와 어순이 다르다. 단어의 표현에서 대명사를 다양하게 사용하고, 동사의 과거형에는 ‘了’라는 접사를 붙이고, 명사의 관형형에는 ‘的’을 붙였다. 그래서 당송·진한 고문에 익숙한 작문가들에게 매우 불편한 느낌을 줬다. 옛 자료 중에서 가장 오·탈자가 많이 나타나는 고소설 자료보다 ≪동상기≫에서 더 많은 오·탈자가 나타나는 것은 단순히 필사자들의 실수라기보다는 사용된 문체가 고문가들이 사용한 기존 문체와 다른 결과다.
문체 문제가 심각했는데 ≪동상기≫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이 작품은 중인 계층 사이에서 널리 퍼졌다. 작품에 이서(吏胥)가 등장할 뿐만 아니라 관아의 실무자들이 사용하는 물품까지 세세히 등장해서 공문서를 작성해야 할 계층에게 매우 유용한 자료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공식적 언어인 고문투와 함께 실무용으로 쓰는 이두를 습득하는 것이 필수였다. 또한 조선 후기에 중국 서적이 대량으로 유입되면서 백화투에 대한 인식마저 바뀌어 폭넓은 한문 습득을 위해서 백화투 학습이 더욱 절실했다.
조선 후기 중인은 누구인가, 어떤 책을 읽었나?
중인은 관장과 백성의 중간에서 실무적 작문법에 통달한 신흥 지식층으로 대두되었다. 관아에서 실무를 담당해 이두부터 고문, 경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독서물을 소화해 냈기 때문이다. 이들은 실무적 필요에 따라 기존 고문 작법보다 더욱 정감을 나타낼 수 있는 실질적인 한문 작법이 필요했다. 패사소품이든 고문이든 보다 현실적인 독서물이 필요했다. ≪전등신화≫ 같은 문어투의 고문보다 ≪동상기≫ 같은 백화투를 선호한 이유다.
중인들은 문체반정에서 자유로웠나?
정조의 문체반정은 주로 고위 관료들에게 국한된 문제였다. 중인 계층에게 문체는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이전부터 이두라는 토속적인 문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으므로 ≪동상기≫에 나타난 표현이 문제될 것은 없었다.
≪동상기≫의 특성은 무엇인가?
여러 작품을 엮은 재자서라는 것이다. ≪동상기≫는 애초부터 <동상소지>, <김신부부전>, <동상기>가 함께 묶인 책이 아니라 희곡 <동상기>로 창작되고, 나중에 독서층의 요구에 따라 작품집으로 편찬되었다. 현재 전하는 여러 이본들이 대체로 그런 편찬 방식을 보이고 있다. 가람문고본의 제명에 보이는 ‘청옥당’은 그런 독서층의 요구로 등장했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서 고문투의 관습을 벗어나 자유롭게 여러 자료를 섭렵하며 그것을 묶어 제책할 수 있었던 자유로운 독서층의 문화를 찾을 수 있다. 그 정도로 백성의 수준이 높아졌던 것이다.
당신이 번역 텍스트로 가람문고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타본에서 찾을 수 있는 심각한 오·탈자 문제를 해결하기에 가장 적합한 이본이기 때문이다. 가람문고본에 타본을 대비하는 방식으로 모든 글자의 변동이나 체제까지 일일이 표시하고, 의미가 달라진 경우에는 주석을 달아 차이점을 밝혔다.
당신은 누구인가?
정용수다.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