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영화 미학
미디어, 영화, 미학 신간, <<디지털 영화 미학>>
머티리얼과 코드의 갈등
저자 로드윅과 번역자 정헌의 생각은 비슷하다. 방법이 바뀐다고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믿음이다. 그러나 인간은 본질에 의해서가 아니라 방법에 의해서 더 근본적으로 변한다는 주장도 있다. 복제 불가능한 물질과 복제 가능한 부호 사이에서 영화는 유일성을 상실한 대신 편재성을 얻는다. 우리가 환영에 기대하는 것은 과연 어느 쪽일까? 사실일까, 믿음일까?
원제가 <<The virtual life of film>>이다. 무슨 말인가?
‘영화의 가상적 삶’이다. 저자는 이 말로 필름 시대와 디지털 시대의 연속성과 불연속성 모두를 이야기한다.
어떤 연속성인가?
필름이건 디지털이건 영화 예술의 본질은 가상성, 다시 말해 버추얼리티다. 영화는 꿈과 환상의 예술이고 창조적으로 재구성된 이미지다.
불연속성은?
필름 영화가 현실의 모방과 재현에 주력한다면, 디지털 영화는 현실의 합성과 재구성에 더욱 주목한다. 21세기 영화는 컴퓨터 그래픽의 시각 이미지와 상상적, 마술적 세계에 매혹된다. 영화는 자연의 시간을 따르지 않는다.
로도윅의 저술 의도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그는 극장에서 상영되는 35mm 필름 이미지 시대의 종말을 아쉬워한다. 선생이자 애호가인 저자는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야기하는 영화 예술의 변화를 이해하고 분석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어떤 관점인가?
디지털 시네마 시대에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균형을 유지한다. 필름 시대는 끝날지언정 시네마의 역사는 계속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누구인가?
하버드대학교 시각환경학과 교수다. 세계적 영화학자다. 영화 역사와 이론, 이미지 미학, 현대 시각문화가 연구 분야다. 최근 뉴미디어 시대 영화 예술의 변화를 연구한다.
어떤 성과가 있었나?
그의 책 <<정치적 모더니즘의 위기(The Crisis of Political Modernism: Criticism and Ideology in Contemporary Film Theory)(한국어 제목: 현대 영화 이론의 궤적>>(한나래, 1999), <<질 들뢰즈의 시간기계(Gilles Deleuze’s Time Machine)>>(그린비, 2005)가 한국에 번역 소개됐다.
누구를 위한 책인가?
디지털 매체와 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은빛 스크린의 필름 이미지를 사랑해 온 시네필들. 오늘의 영화를 고민하는 영화 연구자들. 한마디로 하면 움직이는 이미지에 매료된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미래의 영화를 사유할 수 있을 것이다.
로도윅의 메시지가 뭔가?
오늘날 영화의 육체는 셀룰로이드에서 디지털로 변한다. 이 책은 영화의 정신, 영혼, 미학의 변신을 탐구한다. 독자는 영화 예술의 본질과 정체성을 고민하게 된다. 답변이 아니라 질문을 위한 책이다.
필름에서 디지털로 바뀌는 것이 그렇게 심각한 문제인가?
영화는 기술적 예술이다. 역사적으로 두 차례 중요한 기술 변화를 겪었다. 하나는 1927년 이래 유성영화의 시대다. 둘째는 1950년대 이래 본격화된 컬러 영화의 시대다. 둘 다 필름이라는 물질적 기반 위에서 전개된 변화였다.
디지털 시네마는?
현재 진행 중인 세 번째 변화의 물결이다. 이번에는 필름 자체가 사라진다. 영화 매체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
대중에게도 중요한가?
디지털 시네마는 영화의 소비 형태, 수용 양식을 바꾼다. 디지털 파일이 된 영화는 극장 문턱을 넘어 컴퓨터 네트워크와 모바일 가상공간을 통해 소비된다. 오늘날 관객은 극장보다 컴퓨터와 인터넷, 휴대용 디스플레이 장치, 홈시어터 등을 통해 더 많은 영화를 관람한다.
채널의 문제인가?
그것만이 아니다. 영화는 점점 더 컴퓨터게임의 쌍방향 서사를 모방하는 길로 나아간다. 관객은 보다 능동적으로 영화에 개입하게 된다. 3D, 4D 영화가 이미 대중화되었고,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 홀로그램 영화가 시도되고 있다.
사진적 존재론이란?
영화가 필름과 카메라의 기계적 복제술에 기초하고 있음을 말한다. 이미지뿐만 아니라 사운드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영화는 현실의 이미지와 사운드를 기계 장치를 통해 기록하고 재생한다. 발터 벤야민의 말처럼, 영화는 기술 복제 시대의 대중예술이다.
오토마티즘은 어떻게 해석되나?
자동기법은 미학적 개념이다. 음악, 미술, 연극, 문학, 건축, 사진, 영화 등 모든 예술은 자신만의 고유한 매체와 특성을 갖는다. 예술가들은 해당 예술의 고유한 매체 특성을 통해서 작업한다. 그러므로 해당 예술은 자신만의 고유한 자동기법을 갖는다.
그것이 창조일 수 있는가?
로도윅은 스탠리 카벨의 자동기법 개념을 재해석한다. 자동기법이 창조적일 수 있는 이유는 예술의 매체와 특성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 발전하기 때문이다. 음악가, 미술가, 영화감독 등은 때때로 매체의 한계와 특성을 뛰어넘는다.
어떻게 뛰어넘는가?
그들은 실험하고 시도한다. 이를 통해 예술의 자동기법은 진화한다. 영화 예술의 자동기법 또한 진화해 간다. 영화는 사운드와 컬러 기술의 도입에 이어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통해 창조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필름 이미지와 디지털 이미지의 존재론적 차이는?
디지털은 0과 1의 불연속적 데이터 신호체계에 기반한 기술적 개념이다. 아날로그가 형태를 지닌 물질성으로 자신을 드러낼 때 디지털은 무형의 코드로 스스로를 표현한다. 아날로그가 필름이라는 감광물질에 기초하고 있다면 디지털 이미지는 부호화된 컴퓨터 데이터에 의존한다. 필름 이미지의 형성과 변형은 매체의 물질성에 손상을 가해야만 하는 매우 힘들고 불편한 작업인 반면, 디지털 이미지의 형성과 변형은 데이터의 교체와 프로그래밍의 수정에 의해 항상적이고도 일상적으로 가능한 쉬운 작업이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숫자와 픽셀 단위에서 손쉽게 이미지를 변환할 수 있다. 필름 이미지는 대상과의 유사성, 지시성, 연속성, 인과관계를 갖지만, 디지털 이미지는 대상과의 불연속성, 합성, 변형의 특징을 갖는다.
간단히 말하면?
로도윅에 따르면, 아날로그에서는 입력값과 출력값은 동일한데 디지털에서는 입력값과 출력값이 달라진다. 필름 이미지는 사건과 대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반면, 디지털 이미지는 숫자적 상징을 통해 사건과 대상을 변형하고 합성한다. 필름 이미지가 사진적 복제 기술에 의존한다면, 디지털 이미지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만들어진다.
디지털 시네마에서 리얼리즘은 불가능한가?
영화는 리얼리즘의 예술이다. 현실을 ‘그럴듯하게’ 복제하고 모방한다. 영화는 필름의 사진술을 통해 리얼리즘의 예술을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디지털 시네마 시대에 필름의 사진적 존재론은 무너진다.
불가능한가?
디지털 영화는 컴퓨터 합성의 미학을 발전시킨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은 한편으로 영화 내러티브의 지각적 리얼리즘을 강화하는 데 이바지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실재 현실을 뛰어넘는 허구적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디지털 시네마는 리얼리즘의 존재론적 모순과 역설을 심화시킨다.
뉴미디어는 없다는 주장은 무슨 뜻인가?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컴퓨터, 인터넷, 모바일 같은 뉴미디어는 독립 매체라기보다는 올드미디어의 디지털 변환, 트랜스코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컴퓨터 테크놀로지를 도입하더라도 영화는 여전히 가상적 삶을 살아가는 올드미디어다. 디지털 시대에도 영화의 고유한 예술적 가상성과 스펙터클 이미지는 바뀌지 않는다. 둘째, 디지털 시네마의 시대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로도윅은 레프 마노비치의 뉴미디어론이 지닌 묵시록적 관점에 반대한다.
어떤 관점인가?
디지털 영화 이론가 레프 마노비치는 미래의 영화가 데이터베이스 영화 혹은 네트워크 영화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하지만, 로도윅은 시네마 예술의 연속선상에서 디지털 혁명의 역사적 과정을 신중히 지켜보자는 균형적 입장을 취한다.
영화는 어디로 갈까?
세 가지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먼저, 영화 매체의 변화다. 필름의 소멸은 영화를 디지털 매체 예술로 재정립한다. 영화는 멀티미디어로 진화한다. 텍스트, 이미지, 사운드는 동일한 디지털 수치 개념으로 변환된다. 실사 촬영분과 컴퓨터 시뮬레이션 이미지는 디지털 포맷을 통해 서로 합성된다.
두 번째 방향은?
영화 소비 행태의 변화다. 디지털 영화는 더이상 극장에서의 집단적 상영에 의존하지 않는다. 컴퓨터, 인터넷, 모바일폰, 홈시어터 등 개인용, 휴대용, 가정용 디스플레이 장치의 발달은 영화의 상영 공간을 다변화한다.
세 번째 방향은?
영화 미학의 변화다. 기록성과 가상성이라는 영화 리얼리즘의 모순은 격화된다. 특히 영화의 상상적, 환상적, 마술적 성격이 더욱 강화된다. 영화 이미지의 창조적 재구성이 보다 중요해진다.
영화 연구의 방향은?
앞으로 영화 연구는 디지털 매체로서 영화 예술에 대한 연구를 의미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영화는 영화일까?
필름의 소멸이 영화 예술의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영화는 이미지를 통해 현실을 기록하고 변형하는 예술이다. 영화 매체가 필름에서 디지털로 바뀐다하더라도 영화의 예술적 본성은 그대로다.
영화의 예술 본성이 뭔가?
영화는 계속해서 두 바퀴로 굴러간다. 영화는 여전히 사실성과 허구성, 기록성과 재구성, 리얼리즘과 표현주의의 두 측면을 모두 갖는다. 디지털 변환과 합성의 미학을 통해 시네마의 예술은 새롭게 진화해갈 것이다.
번역이 쉽지 않았을텐데?
무엇보다 나의 한국어 실력을 개탄했다. 엉망인 문법과 부족한 표현들, 영어보다 한국어가 더 중요했다. 또한 행간에 많은 의미를 숨겨두고 있는 로도윅의 간접화법은 때로 나를 절망케 했다. 한 단어, 한 문장을 하루종일 곱씹으면서 다층적 의미와 싸워야 했던 길고 지루한 시간들이었다. 출간을 앞둔 지금, 나는 혹시 숨어 있을지도 모를 오역과 실수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번역 작업은 불가능한 완벽을 향해 나아가는 묘한 중독성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또 다른 번역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새롭게 도전하고 싶다.
책 내용과 가장 가까운 영화는?
<매트릭스> 시리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창조하는 가상적 세계의 일상적 의미를 생각케 한다. 형식에서는 철저하게 할리우드의 관습적 내러티브를 반복한다. <아바타>는 디지털 기술의 매혹이 할리우드의 폐쇄적 영화 미학과 어떻게 결합하는지 잘 보여준다.
당신이 좋아하는 영화는?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를 좋아한다. <2001년 우주 오딧세이>를 통해 영화가 인류학, 그리고 시공간의 철학과 연결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시계태엽오렌지>는 영화의 사회 정치적 의미에 대한 깊은 울림을 주었다. 스탠 브래키지의 실험영화도 좋다. 영화의 환영주의를 떨쳐내고 현실의 미디어로 영화를 사고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를테면, <도그 스타 맨(Dog Star Man)>, <나방불(Mothlight)>, <윈도 워터 베이비 무빙(Window Water Baby Moving)> 같은 영화들이다.
당신에게 영화는 뭔가?
나에게 영화는 현실의 끈이자 사고의 도구다.
당신은 누구인가?
정헌이다. 호주 시드니대학교 영화학 박사과정이다. 학위 논문 <디지털 버추얼리즘과 새로운 영화의 미학(Digital Virtualism and New Cinema Aesthetics)>을 제출한 뒤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영화 연구자로서 나의 주요 관심사는 ‘움직이는 이미지의 미학’으로서 영화 예술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연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