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종교 사상사 1 천줄읽기
2369호 | 2014년 12월 22일 발행
러시아 종교사상의 제일 원리
성탄절 특집 1. 김상현이 옮긴 게오르기 페도토프(George P. Fedotov)의 ≪러시아 종교사상사 1(The Russian Religious Mind Vol. I) 천줄읽기≫
케노시스
자기를 비우고
고통을 스스로 받아들인다.
가난·겸손·희생·사랑·동정을
긍정한다.
영광을 멀리하고 고난을 선택한다.
바로 예수가 했던 일이다.
“고대 러시아의 성자 가운에 가장 위대하고, 교회에 의해서 가장 먼저 시성(諡聖)된 성자가 ‘자기 비움(kenotic)’이란 이름으로 특징되는 러시아의 독특한 민족적 가치 범주에 속한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러시아 종교사상사 1≫, 게오르기 페도토프 지음, 김상현 옮김, 83쪽
가장 위대한 성자의 이름은?
보리스와 글레프다. 988년 콘스탄티노플에서 기독교를 들여온 블라디미르 대공의 두 아들이다.
왜 성자인가?
케노틱을 실천했다.
케노틱이 뭔가?
‘자기 비움의 사랑’, ‘고통의 자발적 감내와 수용’이다. 페도토프가 꼽은 러시아 종교사상의 특징이다. 천상의 성스러운 영광을 강조하는 비잔티움의 ‘승리주의(triumphalist)’와 대조되는 개념이다. 가난·겸손·희생·사랑·동정을 긍정한다.
그들은 케노틱을 어떻게 실천했는가?
아버지가 죽자 열두 왕자는 처참한 싸움을 벌인다. 대공을 이어 키예프를 지배한 자는 첫째 아들 스뱌토폴크였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보리스와 글레프를 살해한다. 그들은 죄가 없었지만 저항하지 않고 죽는다.
그냥 죽는 것이 케노틱인가?
페도토프는 여러 성자전의 기록을 토대로 그들이 더러운 정치 모략과 살해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 죽었다고 해석한다.
성자전의 기록은 어떤 것인가?
보리스는 죽기 전날 밤 성스러운 순교자들의 고난과 열정을 묵상한다. 살해 당일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 “오, 우리의 죄를 위해 스스로 고난을 달게 받으시고 십자가 위에서 손에 못 박히기를 각오하셨으며 이 땅 위에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오신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여! 제가 그 고난을 받을 수 있도록 굽어살펴 주소서.” 글레프도 순교자들의 수난에 깊은 감명을 받고 형 보리스의 뒤를 따른다.
케노틱은 또 어떤 것이 있었는가?
러시아 금욕주의의 아버지 테오도시우스의 사례가 있다. 그는 성 안토니우스와 함께 키예프 동굴 수도원을 세웠다. 대수도원장이 되어서도 남루한 수도복을 입어 조롱과 천시를 받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수도원을 바깥세상에서 떼어 놓는 한편 수도원에 쌓인 물자를 세상에 되돌려 주었다. 수도원 근처에 ‘거지와 장님, 절름발이와 병든 자’를 위한 집을 짓고 수도원 수익의 10분의 1을 이 같은 숙소 운영에 사용했다. 매주 토요일에는 도시의 감옥에 수감된 죄수들에게 빵을 보냈다.
≪러시아 종교사상사 1≫은 어떤 책인가?
러시아의 영적인 삶에 대한 역사서다. 제1권은 키예프 루시 시대부터 몽고-타타르의 침입을 받기 전까지 약 300년간 러시아 기독교의 초기 모습을 기록했다. 기독교로 개종하기 전의 이교 신앙, 개종한 뒤의 교회 조직과 종교사상, 신과 세계에 대한 종교 엘리트와 민중의 태도를 담고 있다.
게오르기 페도토프는 누구인가?
슬라브파와 서구파 논쟁의 연장 선상에 있는 ‘역사·철학 공론’의 마지막 대표 주자다. 지난 세기 러시아 종교철학자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슬라브파와 서구파 논쟁이 무엇인가?
19세기 중반 러시아의 국운과 정체성을 놓고 벌인 논쟁이다. 호먀코프와 도스토옙스키 등 슬라브파는 종교·민족성·역사 등 러시아의 특수성을 강조하며 서구와 다른 길을 찾았고 게르첸과 체르니솁스키 등 서구파는 서구의 방법을 이용해 러시아의 후진성을 벗어나자고 주장했다.
페도토프의 입장은?
기본 인식은 슬라브파에 가깝지만 이분법을 자제했다. <러시아 인간>이라는 에세이에서 제3의 러시아 인간형, 곧 창조자로서 러시아인 형상을 제시했다. 이 인물은 러시아의 과거 역사에서 긍정적인 원칙과 잠재력을 발견해 미래 사회 건설에 참여하는 시민이다.
그는 어떻게 살다 갔는가?
1886년 러시아 사라토프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 공학을 공부했으나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유학하며 역사로 방향을 바꾸고 1914년 러시아로 돌아와 대학에서 유럽사를 가르쳤다. 러시아혁명과 소비에트 러시아를 파시즘의 또 다른 형태로 보고 1925년 파리로 떠났다. 파리의 러시아 신학대학에서 러시아 교회사를 강의하면서 ≪동시대인의 수기(Современные записки)≫, ≪길(Путь)≫, ≪날짜(Числа)≫, ≪신도시(Новый град)≫ 등의 잡지 발행을 도왔다. 1941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성 블라디미르 신학교의 교회사 교수를 지내다 1951년에 세상을 떠났다.
이 책은 원전에서 얼마나 어떻게 뽑아 옮겼나?
가장 중요한 대목을 중심으로 40%를 옮겼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상현이다. 성균관대학교 러시아어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