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도귄
프랑스 희곡, 순수비극, 코르네유 신간 <<로도귄Rodogune>>
불행의 공식
주인공 클레오파트르는 권력을 좋아한다. 그것을 추구한다. 여기까지 문제는 없다. 문제는 정념에서 시작된다. 감정에 따라 일어나는, 억누르기 힘든 생각, 불꽃처럼 일어난다. 권력을 얻는데 실패한다면 스스로를 멸망시켜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 공식이므로 예외는 없다.
로도귄이 누구인가?
파르티아 공주다. 클레오파트르의 남편 데메트리우스와 결혼했다가 그가 죽자 쌍둥이 아들의 동시 구애를 받는다.
어떤 이야기인가?
남편이 죽자 섭정으로 시리아를 통치하게 된 클레오파트르는 왕위를 넘겨주지 않으려고 쌍둥이 아들들 중 누가 장자인지를 밝히지 않는다. 권력을 지키기 위해 어떤 대가든 치르겠다고 결심한 클레오파트르는 아들을 살해할 계획을 세우고, 음모가 탄로 나자 살해를 위해 준비해 둔 독을 마시고 자살한다.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 얘긴가?
아니다. 시리아 여왕 클레오파트르 얘기다. 작가는 그런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클레오파트르가 중심이 되는 작품인데도 제목을 ‘로도귄’으로 했다.
클레오파트르는 실존 인물인가?
그녀뿐만 아니라 로도귄, 셀레우쿠스, 안티오쿠스 모두 역사 인물이다. 코르네유는 그리스와 로마 역사가의 저술은 물론 구약 <마카베오기>를 참고해 이 작품을 썼다. 그리스 역사가 아피앙의 저술에서 영감을 얻어 줄거리를 세웠고 인물명도 그에 따르고 있다.
역사는 극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
극적 효과를 위해 적절히 변용된다. 코르네유가 참고한 사료에는 클레오파트르가 남편이 로도귄과 결혼했다는 사실에 분노해 시동생과 결혼한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작품에서는 남편이 죽은 걸로 오해해 시동생과 결혼한다.
극의 전개는?
클레오파트르와 로도귄이 쌍둥이 형제를 사이에 두고 간접적으로 대결을 펼친다. 클레오파트르는 로도귄을 죽이는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약속하고, 로도귄은 클레오파트르를 죽이는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선언한다.
클레오파트르는 어떤 인물인가?
지배욕에 사로잡혀 권력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파멸할 수 있는 인물이다. 권력을 얻는 데 실패한다면 기꺼이 스스로를 멸망시킬 준비가 되어 있다.
로도귄을 죽이려는 것은 질투 때문인가?
권력욕 때문이다. 두 여인은 데메트리우스를 동시에 남편으로 섬기기 때문에 연적 관계인 것처럼 비쳐지지만, 사실 권력을 두고 경쟁하는 사이다.
권력 다툼은 어디서 비롯되나?
로도귄은 시리아 왕과 정략결혼하기로 돼 있기 때문에 데메트리우스가 죽은 상황에서 그녀가 선택한 왕자는 시리아 왕으로 군림해야 한다. 섭정을 계속하려는 클레오파트르와 자연히 대립할 수밖에 없다.
로도귄의 전략은?
쌍둥이 형제 중 안티오쿠스를 사랑하지만 선택권을 포기한다. 그게 왕을 선택하는 행위가 될 것이며, 이는 클레오파트르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주이기 때문에 국익에 속박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수동적인 존재로 안전하게 남아 있으려고 애쓴다.
클레오파트르를 죽이라고 요구하는 이유는?
죽기를 진심으로 바란 것이라기보다 형제들에게 어머니를 죽여야 한다는 시련을 부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시련의 의미는?
누군가는 어머니를 죽이길 거부하고 모든 것을 단념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쌍둥이 형제 중 셀레우쿠스가 로도귄과 왕좌를 모두 포기한다.
어떤 작품인가?
피에르 코르네유가 쓴 순수 비극 작품 중 하나다.
순수 비극이란?
비극적 요소만으로 쓴 희곡을 말한다. 프랑스 아카데미를 창설한 리슐리외는 문학 창작에서 ‘순수성 법칙’을 강조했는데, 그 결과 이런 ‘순수 비극’, ‘순수 희극’ 장르가 생겨났다.
비극성은 어떻게 조성되는가?
순수한 정념이 인간을 가혹하고 난폭하게 이끌어 가는 데서 비극성이 두드러진다.
이 작품의 새로운 비극 요소는?
정략결혼이다. 왕조의 이익 때문에 자기 마음과는 상관없이 결혼하는 공주, 말하자면 ‘왕족의 잘못된 결혼’이라는 요소가 나타난다. 한마디로 <로도귄>과 함께 정략결혼 비극이 탄생한 것이다.
피에르 코르네유는 누구인가?
라신, 몰리에르와 함께 프랑스 3대 고전주의 극작가다. 그는 특히 ‘고전극의 아버지’라 불린다.
고전주의를 정의하면?
그리스 고전을 본보기로 그리스 문학에서 이어져 오던 전통적인 법칙들을 수용한 문학 사조다.
무엇이 전통인가?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에 요약되어 있다. 예술의 기원을 밝힌 모방 충돌설, 예술의 효용을 밝힌 카타르시스설 외에 희곡 작법과 관련한 삼일치설이 있다.
삼일치설의 요체는?
연극에서 행동, 시간, 장소를 통제하기 위해 내세웠던 원리다. 첫째는 극에서 줄거리를 일관해야 한다는 행위의 통일, 둘째는 극 중 시간이 하루 24시간 이내여야 한다는 시간의 통일, 셋째는 사건이 전개되는 5막이 동일한 장소에서 행해져야 한다는 장소의 통일이다.
이 작품에도 적용되나?
장소의 일치는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대체로 원칙들을 존중하고 있다.
코르네유는 어떤 사람인가?
1606년 프랑스 루앙에서 태어났다. 법학을 공부해 변호사로 개업한 이력도 있지만 연극이나 시에 더 관심을 갖고 있었다. 1629년 희극 <멜리트>를 시작으로 극작품 30여 편을 남겼다. 1652년에 발표한 <페르타리트>가 흥행에 참패하면서 침체기를 겪다가 1660년대 중반 이후 라신에게 자신의 명성을 완전히 넘겨주고 유복하지 않은 만년을 보냈다. 1684년 10월 1일 생을 마감했다.
극문학사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상은?
비극은 물론 희극, 비희극, 영웅 희극 등 다양한 장르 작품을 남겼다. 생애 전반에 발표된 비극들은 오늘날에도 걸작으로 인정받는다. 특히 동시대 비극 작가인 라신과 쌍벽을 이룬다.
라신과 비교하면?
라신은 현실적인 인간을 그린 데 반해 그는 이상적이고 영웅적인 인간상을 취급했다.
당대 평가는?
대표작 <르 시드>가 발표됐을 당시에는 ‘르 시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몰리에르는 그를 자기 스승이자 가장 빼어난 극작가로 인정했다. 라신은 아들에게 코르네유가 자신보다 백배는 더 아름다운 운문을 지었다고 말했다.
이 작품의 한 대목을 소개한다면?
클레오파트르:
가거라, 내 생명을 소생시키려 해 봐야 소용없다.
내 증오는 너무나 충실해서 제대로 봉사했지만,
너무 일찍 드러나 너를 나와 함께 죽일 수 없었다.
군림하라. 많은 죄악을 지나 결국 네가 왕이 되었구나.
나는 네게서 아버지, 형제 그리고 나를 없앴다.
나는 바란다. 하늘이 너를 희생물로 만들어 주시기를,
내 죄악의 처벌이 너희에게 떨어지게 해 주기를.
나는 바란다. 너희를 결합시킴으로써
너희에게는 공포, 질투, 혼란만이 있기를,
너희가 모든 불행을 지니기 위해서는
나와 닮은 아들을 갖게 되기를.
안티오쿠스:
아, 이 증오를 사랑으로 바꾸기 위해서 살아나십시오.
클레오파트르:
만일 내게 생명을 되돌려준다면 신들을 저주할 것이다.
여기서 나를 데려가 다오. 나는 죽어 간다, 라오니스.
≪로도귄≫, 피에르 코르네유 지음, 박무호 옮김, 121∼122쪽
어떤 장면인가?
안티오쿠스를 살해하려던 클레오파트르가 음모가 드러나자 준비했던 독을 마시고 죽음을 택하는 장면이다.
왜 이 장면을 추천하는가?
군림하고자 하는 정념에 사로잡혀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는 클레오파트르에게서 숙명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당신은 누구인가?
박무호다. 울산대학교 프랑스어프랑스학과 교수다. 서울대학교에서 불어불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루앙대학교에서 수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