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펠로 시선
윤명옥이 고르고 옮긴 ≪롱펠로 시선(Selected Poems of Henry Wadsworth Longfellow)≫
겸손하고 평범한 미국인의 시
롱펠로는 정직하다. 당대의 성실한 삶을 산다. 민주주의와 상식, 교훈과 격려를 전한다. 시인이 이렇게 통속이어도 되는 것일까? 현대의 많은 질문이 있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은 인간일 뿐이다.
인생은 진실한 것! 인생은 진지한 것!
무덤이 그 종말이 될 수는 없다,
그대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이 말은 영혼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즐거움도, 슬픔도, 우리의 운명적인 목표나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니다,
내일이 오늘보다 낫도록 행동하는 것이
저마다의 목표며, 저마다 가야 할 길이다.
세상의 드넓은 싸움터에서,
‘인생’의 야영지에서,
말없이 쫓기는 짐승이 되지 마라!
싸움에 이기는 영웅이 돼라!
≪롱펠로 시선≫, 헨리 롱펠로 지음, 윤명옥 옮김, 19-20쪽
<인생 찬가>인가?
젊은이들을 위해 쓴 시다. 용기와 교훈을 준다. 영문학도들이 널리 애송한다. 롱펠로의 시는 읽기 쉽고, 이해하기도 쉽다. 그의 시가 가진 대중성 때문이다. <인생 찬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대중성을 의도한 것인가?
미국 국민문학을 열망했다. 월트 휘트먼과 유사하다. 대중적이고 국민적인 시로 자신이 깨달은 모든 것을 표현하려 했다.
그의 시가 대중성을 획득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민주주의, 그리고 겸손하고 평범한 미국인의 삶과 이상을 시로 썼다. 교훈성과 맞물리면서 대중성을 획득한다.
교육자들이 해야 할 일을 시인이 했는가?
그는 하버드대학교 교수였다. 시인은 보통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인지하고 그것을 더 깊이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예지자라고 여겼다. 독자들에게 교훈을 주어 많은 사람들을 계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대 사람들은 롱펠로의 계몽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반응이 좋았다. 미국에서 대단한 인기를 얻고 많은 영광을 누렸으며, 해외에 알려지기까지 했다.
당대의 명성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나?
아니다. 20세기에 오면서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현대 비평가들은 롱펠로가 사물을 진지하게 탐구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창작의 끈기가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무엇이 달라진 것인가?
현대 시는 주제나 기교가 좀 더 복잡하고 독창적이어야 작품성과 예술성을 인정받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대중성과 교훈성은 통속이라고 비판되었다.
그의 작품이 모방적이라는 비판은 또 뭔가?
유럽 스타일을 따랐다는 지적이다. 작위적이고 모방적이라는 비판도 가해졌다.
이런 비판은 모두 정당한 것인가?
일리 있는 비판이다. 하지만 당대에는 가장 진지한 시인이었다.
가장 진지한 시인이 작위적이고 모방적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평가 기준이 달라졌고 독자 취향도 바뀌었다. 엄밀히 말하면 비평가와 독자의 취향 변화가 원인이다.
롱펠로를 좋아하는 독자는 어떤 사람인가?
인간은 각기 취향과 삶의 여정이 다르다. 인간의 범주 안에서 공통으로 느끼고 겪고 이해하는 것이 있다. 롱펠로는 바로 이런 삶의 공통분모를 찾아 시로 잘 표현했다. 얼핏 통속으로 보이지만 희로애락을 겪으며 언젠가 죽을 운명인 인간에게 공통점은 중요한 진실이다.
그의 사생활은 불운하지 않았나?
불운을 많이 겪었던 시인이다. 불운하고 감상적이며 애수적인 감정도 주저 없이 표현했다. 그러나 결코 부정적이거나 염세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롱펠로는 낙천주의자고 이상주의자다.
우리가 롱펠로를 만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언제인가?
울적하거나 지쳤을 때 그의 시를 읽어 보라. 단순한 시가 의외로 우리 마음을 풀어 줄 것이다. 마음에 잔뜩 끼었던 구름이 시를 읽는 동안 어느새 환하게 걷힐 것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윤명옥이다. 인천대학교 초빙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