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샵들렌
강한 바람과 햇볕에 타서 검게 그을린 이 사람들 중에서, 그는 가장 많이 탔고 피부가 가장 검었다. 그의 옷은 안 찢겨 나간 곳이 없었다. 찢긴 양털 조끼 자락이 어깨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가 봄에 신는 장화가 모카신으로 바뀌었다. 인디언과 큰 짐승들이 안전한 피난처처럼 틀어박혀 있는 강 서쪽의 원시 자연에서 그 무엇인가를 가져온 것 같았다. 그리고 마리아, 자연과 거의 붙어 있어서, 그 인생살이로 인해 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없게 된 마리아는 그럼에도 마법이 그녀의 두 콧구멍 안으로 불어넣은 미약에 도취된 느낌을 받았다.
≪마리아 샵들렌≫, 루이 에몽 지음, 정상현 옮김, 81쪽
마리아는 왜 미약에 도취된 느낌을 받는가?
그녀에게 “세상과 삶은 무미건조한 것”이다. 그런데 프랑수아 파라디가 마음에 들어온다. 봄이 찾아온다.
삶이 무미건조한 이유가 뭔가?
자연의 온화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어두컴컴한 숲의 가장자리에서 가족과 살기 때문이다. 보는 이라고는 이웃인 외트로프 가뇽뿐일 정도다.
프랑수아 파라디는 누구인가?
당시 퀘벡 주민들 사이에는 개척자와 정착민의 알력이 있었다. 파라디는 개척자의 전형이다. 땅을 일구며 살 수 있는 체질이 아니기 때문에 광활한 퀘벡의 숲을 누비며 장사와 노동으로 부를 꿈꾼다.
마리아에게 봄을 선사하나?
그녀 집에서 연말연시를 보내려고 한겨울에 작업장을 떠난다. 폭풍우와 눈보라 속에서 숲을 헤매다 죽는다.
마리아는 연인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나?
그저 불행으로 여긴다. 자신의 삶이 끝났다거나 이 세상이 고통스러운 사막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슬픔이 지속되는 동안은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두 번째 청혼자가 나타난다.
그건 누구인가?
미국 대도시로 간 로렌조다. 그는 “가난한 마을과 숲 사이에 있는 땅에서 사는 것”을 혐오하며, 퀘벡 소유지를 프랑스인들에게 매도한다. 권태로운 일상사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리아에게 “세속적인 쾌락, 안락함이나 허영심을 채워 주는 그저 그런 이점들”을 약속해 욕망을 부추긴다.
마리아는 그에게 어떤 감정을 품나?
사랑은 아니다. 하지만 거듭된 구혼을 받으며 마음속에 상반된 목소리가 일어난다. 정착민의 삶과 개척자의 삶 사이에서 고민한다.
어떤 결정을 내리나?
이웃 농부 가뇽을 배우자로 정한다. 프랑수아와 로렌조에 비해 외모나 물질적 조건은 떨어진다. 그의 ‘삶의 방식’을 선택했다.
가뇽의 방식이 정착민의 삶인가?
‘옛것’의 가치와 종족의 정체성, 초창기 공동체의 이상을 온전히 지키려 한다.
마리아가 그를 택한 계기가 있나?
어머니의 죽음이다. 어머니는 평범한 여자들은 이겨 낼 엄두도 내지 못할 역경을 헤쳐 나갔다. 자신도 어머니와 같이 이 고장에서 자기 종족과 함께 개간된 땅 위에 우뚝 서겠다고 결심한다.
≪마리아 샵들렌≫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
프랑스계 캐나다인의 삶의 진지하고 깊은 의미를 정체성 추구의 관점에서 그렸다. 이민자들에게 공동체성을 불어넣었다. 프랑스−가톨릭−땅의 종족이라는 오래된 개념이 옛 명망을 되찾았다.
이 작품은 어떤 평가를 받았나?
퀘벡과 프랑스계 캐나다인의 삶을 아주 생생하게 그려 냈다는 평을 받았다. 반대 의견도 있다. 6개월 남짓 퀘벡 농촌 체험을 한 프랑스 작가가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의 영혼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그들의 실상을 비참하게만 묘사했을 뿐 아니라 퀘벡을 헐뜯었다는 평이다.
루이 에몽은 어떤 삶을 살았나?
1880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소르본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1904년 단편소설 <강(La Rivière)>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1911년 캐나다로 가 일을 하면서 유럽에 캐나다를 알리기 위한 글을 썼다. 1912년 사뮈엘 샵들렌의 모델이 되는 사뮈엘 베다르를 만나 ≪마리아 샵들렌≫을 집필했다. 1913년 불의의 기차 사고로 죽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정상현이다. 숙명여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다.
2818호 | 2015년 12월 10일 발행
프랑스 사람, 대지의 영혼
정상현이 옮긴 루이 에몽(Louis Hémon)의 ≪마리아 샵들렌(Maria Chapd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