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 산 천줄읽기
윤순식이 옮긴 토마스 만(Thomas Mann)의 ≪마의 산(Der Zauberberg) 천줄읽기≫
교양 소설의 진화
998쪽의 지면에 정치 철학 교육이 넘친다. 빌헬름 마이스터의 전통이 숨 쉰다. 인생을 소란케 하는 거의 모든 사유의 모순이 곳곳에서 충돌한다. 그러나 아직 그 끝은 알 수 없다.
나프타의 견해에도, 제템브리니의 견해와 마찬가지로 물들지 않도록 하자. 이들은 둘 다 수다쟁이에 불과해. 한 사람은 음탕하고 불경스러우며, 다른 한 사람은 언제나 이성의 호각이나 불면서 미친 사람들도 각성시킬 수 있다고 큰소리치지. 그야말로 황당무계한 소리야. 오히려 속물근성이고 단순한 윤리이며 비종교적인 것에 불과하지. 틀림없어. 난 키 작은 나프타에게도 동조할 수 없어. 신과 악마, 선과 악이 온통 뒤범벅이 된 그의 종교에도 당연히 동조할 수 없고 말이야. 사실 그의 종교는 개인이 거꾸로 추락하여 공동체 속으로 신비스럽게 침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저 두 사람의 교육자! 저들의 논쟁과 대립 그 자체가 뒤범벅에 지나지 않고 싸움터의 혼란한 소용돌이에 불과한 것으로, 머릿속이 조금이라도 자유롭고 마음이 경건한 자라면 아무도 현혹되지 않을 거야. 귀족성에 대한 두 사람의 논쟁, 고귀함에 대한 토론! 죽음과 삶, 병과 건강, 정신과 자연, 이런 것이 서로 모순되는 것일까? 나는 묻고 싶어, 과연 문제가 되는 것인지 말이야.
≪마의 산 천줄읽기≫, 토마스 만 지음, 윤순식 옮김, 113∼114쪽
저 두 사람의 교육자는 누구인가?
제템브리니는 합리주의자이며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는 인문주의자다. 나프타는 육체를 타락한 것으로 생각하고 병과 죽음을 찬양한다.
두 사람은 어디서 부딪치는가?
육체와 정신의 관계다. 제템브리니는 ‘육체는 바로 정신’이라는 일원론자다. 나프타는 ‘육체란 자연이며, 자연은 정신과 대립된다’고 하는 이원론자다.
이 둘에 물들지 않으려는 나는 누구인가?
함부르크 출신의 23세 청년 한스 카스토르프다. 사촌 형제의 병문안을 겸해 다보스로 여행을 간다. 그곳에서 폐결핵의 징후를 발견해 요양원에 머물면서 이들을 만난다.
그의 생각은 무엇인가?
죽음과 삶, 병과 건강, 정신과 자연이 모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인간은 선과 사랑을 위해 결코 죽음에 자기 사고의 지배권을 내주어서는 안 된다”는 합명제를 끌어낸다. 착하고 올바르게 살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삶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선과 사랑은 같은 말이다. 바로 인류애의 개념이다.
인류애에서 끝나는 이야기인가?
깨달음은 잊혀지고 다시 그에게 영향을 미치는 두 인물이 나타난다. 요양원을 떠났던 쇼샤 부인이 돌아온다. 관능적인 외모를 소유한 그녀는 질병과 죽음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녀와 함께 건강과 삶을 긍정하는 디오니소스적 인물, 페페르코른이 등장한다.
페페르코른은 어떤 인간인가?
외적으로는 종합적 인간상을 표방하지만 내적으로는 새로운 시대 이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무기력한 인간이다.
이들이 섞이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가?
페페르코른은 카스토르프와 쇼샤 부인의 에로틱한 관계와 자신의 성적 무기력을 괴로워한 나머지 자살한다. 쇼샤 부인은 요양원을 떠난다. 나프타는 제템브리니와 자유에 대한 논쟁을 벌이다 결투 끝에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쏜다.
카스토르프의 다음 행선지는 어디인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그는 마의 산에서 내려와 참전한다. 포탄이 난무하는 전장에서 ‘보리수’ 노래를 흥얼거리며 어스름한 혼란 속으로 사라져 간다.
교양소설인가?
여러 연구에서 교양소설로 자리매김했고, 토마스 만 자신도 그렇게 밝혔다. 한 편지에서는 “정치적·철학적·교육적인 생각을 광범위하게 펼쳤으며, (…) 다시금 ‘교양소설’을 부활시키려는 시도를 했다”고 썼다. 또 <괴테에 대한 환상>에서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전통이 (…) ≪마의 산≫에까지 이르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전통 교양소설에서 비껴 나는 지점들이 있다.
어디인가, 그 지점들이?
인물의 발전 단계가 뚜렷하게 설정되어 있지 않다. 주인공의 내적 성장이 조화로운 이상에 가닿지 않는다. 휴머니즘적 전망을 보여 준 카스토르프가 결말에서는 전장에 발을 들인다. 주인공의 내적 자아와 사회적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이 깊어진 결과다.
≪마의 산≫이 토마스 만의 문학 인생에서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1924년, 그의 나이 49세에 출간한 작품이다. 초기의 대립적 세계관을 극복했다. 이원론을 지배하고 전진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할 생활 방식임을 보여 준다. 작가의 도정에서 큰 전환점을 이루었다.
토마스 만이 유명세에 비해 독자가 적은 이유는 무엇인가?
문장이 건조하고 만연체인 데다가 함의가 많다. 재미도 없는 편이다. 그의 해박한 지식에 보통 독자는 기가 눌리고 만다.
이 책, ≪마의 산 천줄읽기≫는 얼마나 발췌했는가?
원서가 998쪽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의 책이다. 줄거리를 파악하는 데 필수적인 10%를 발췌 번역했다. 다만 ≪마의 산≫의 축약판이라고 할 수 있는 6장의 ‘눈[雪]’의 장면은 원문의 80%가량을 옮겼다.
당신은 누구인가?
윤순식이다. 덕성여자대학교 교양학부 초빙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