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눈이 내릴 때
마지막 눈이 내릴 때
첫눈이 내릴 때 연인들은
만날 약속한다 공원에서
카페에서 서점에서 뮤직 홀에서
인생은 연극이니 극장 앞에서
만나 연애를 하고 더러는
헤어지고 가볍게 그래
마지막 눈이 내릴 때
우리는 만날 수 있을까
허연 머리칼 위로 떨어지는 눈송이 눈송이
눈송이는 떨어질까
차가운 손 마주 잡고 눈물 글썽이며
우리는 만날 수 있을까 말없이
눈 내리는 공동묘지 근처
아니면 인생은 연극이니 극장 앞에서
아니면 이제 없어진 뮤직 홀에 앉아
나직이 드비쉬나 들으며
마지막 눈 소리나 들으며
문충성의 육필시집 <<마지막 눈이 내릴 때>>에 실린 마지막 시다. 첫눈 내리는 날, 원인 모를 흥분과 기대의 뒤켠 멀찍이서 마지막 눈송이를 바라본다. 드뷔시가 아니라도 좋겠다. 1938년 제주에서 났다.